- 중식 조리사는 내 인생의 가장 멋진 삶
목란의 이연복, 진진의 왕육성, 루이의 여경래와 같이 10대 때부터 웍을 잡고 뜨거운 불앞에서 청춘을 불살랐던 고인은 대만 화교로 역시 중식 요리를 업으로 했던 아버지 덕에 요리업계에 발을 들였다.
19세에 당시 중화요리의 중심지였던 서울 명동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었던 기산각의 주방장 자리를 꿰찼던 곡금초(曲錦超·취진초) 사부는 왕육성 사부와는 신촌의 유명 중식당이었던 만다린에서 만났다. 왕 사부는 “3층 이상 되는 만다린 같은 곳을 자기도 차리고 말 거라고 포부가 대단했다”며 “남과 다른 구석이 많았다”고 전했다.
동탄에 위치한 ‘상해루’ 곡금초(曲錦超·취진초) 사부는 27살의 나이로 서울 신촌 ‘만다린’에서 12명의 조리사를 거느린 총 주방장이었다. 42년 전이라면 상당히 파격적인 대우였음이 분명하다. 어떤 이들은 좋은 스승을 만난 결과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재능이 없었다면, 뛰어난 요리솜씨가 아니었다면 그런 일이 가능이나 했을까? 하지만 그에 대한 곡금초(曲錦超·취진초) 사부의 대답은 간단하고 명료했다.
“물론 재능, 요리하는 솜씨가 있어야겠죠. 하지만 솜씨는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아요. 솜씨가 5%라면 나머지 95%는 재료가 좌우하는 겁니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겸손이 묻어나는 판단이라 여겨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렇게 5%의 솜씨로 50여 년간 한 자리에서 명성을 쌓는다는 건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문득 50여 년을 중식을 요리하고, 68세에도 불과 씨름했던 그는 매일 요리 하나하나를 직접 맛을 보고 검증했고 짜장면이 가장 맛있다고 전했었다.
성공의 노하우는 치열함이라던 그는 치열(熾烈)은 성찰 熾와 매울(세찰) 烈이 합쳐진 단어로 세력이 불길 같이 맹렬하다는 뜻이라 평소 입버릇처럼 후배들에게 충고했다. 공교롭게도 곡금초(曲錦超·취진초) 사부는 자신을 불(火) 같은 성격이라 말했다. 그러고 보면 불(火)을 다뤄야 하는 중식 요리사로서 그는 불(火)과의 인연이 있고, 궁합도 잘 맞는 인생을 살았다.
곡금초(曲錦超·취진초) 사부는 강한 불(火)과 약한 불(火)을 다루면서 요리를 만들 때 말할 수 없는 성취감을 느꼈고, 불(火)에 대한 매력에 빠졌다고 한다. 자신이 살아왔던 중식 조리사의 길을 걸을 수 있던 것도 불(火)에 미쳐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제 자식에게도 말합니다. 꾸준히 성장하길 원한다면 이 일에 미쳐라. 성공하겠다는 욕심보다는 치열한 시간을 보내라고 말이죠.”
“다른 어떤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중식 역시 인생과 비슷합니다. 누구나 성공을 위해 자신을 던지지만 성공이 그리 쉽게 얻을 수 있는 열매는 아니죠. 치열한 과정을 즐겁게 견뎌야 합니다. 누구나 실수를 하고, 그 실수를 통해 교훈을 얻게 되죠. 그러면 어느 순간 자신이 원하던 성과가 눈에 보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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