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ok&Chef = 서진영 전문기자]요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이북식 찜닭’이라는 이름이 자주 보인다. 하얗게 삶아낸 닭 위에 부추를 넉넉히 얹고 겨자간장에 찍어 먹는 방식이다. 간장 양념으로 졸여내는 안동찜닭과는 구조부터 다르다. 당면도 없고, 짙은 양념도 없다. 닭 한 마리, 맑은 육수, 부추, 겨자장. 구성은 단순하지만 맛의 방향은 분명하다. 닭 자체의 맛을 중심에 두고 부추의 향과 겨자의 자극이 뒤를 받친다.
흥미로운 건 이 음식이 지금 젊은 세대 사이에서 빠르게 퍼지고 있다는 점이다. 짧은 영상 플랫폼과 인스타그램을 중심으로 ‘하얀 찜닭’이라는 별칭까지 붙으며 소비되고 있다. 그런데 이 흐름은 단순한 유행으로 보기 어렵다. 지금의 식문화 방향과 정확히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2026년 음식 트렌드의 핵심 가운데 하나는 ‘식재료 본연의 맛’이다. 복잡한 소스와 강한 양념으로 맛을 덧씌우는 방식보다 재료가 가진 본래의 맛을 드러내는 음식이 선호되고 있다. 또 하나의 흐름은 조리의 단순화다. 조리 과정은 단순하지만 재료 선택과 완성도가 중요한 음식들이 주목받는다. 좋은 재료를 쓰고, 덜 가공하고, 덜 섞고, 덜 감추는 방식이다.
이 흐름 안에서 보면 이북 닭음식은 오히려 가장 현대적인 음식으로 읽힌다. 화려한 장식도 없고 복잡한 양념도 없다. 닭을 삶고, 기름기를 정리하고, 다시 익히고, 부추를 더한다. 과정은 간결하지만 맛은 분명하다. 지금 사람들이 찾는 음식의 조건과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이북 닭음식을 이해하려면 먼저 북녘의 생활 환경을 봐야 한다. 평안도, 황해도, 함경도 일대는 겨울이 길고 기온이 낮았다. 추운 지역일수록 식재료를 선택하는 기준은 분명했다. 몸을 덥힐 수 있는가, 빠르게 조리할 수 있는가, 영양 공급이 충분한가.
닭은 그 조건에 가장 잘 맞는 식재료였다.
소는 농경 노동력이었기 때문에 쉽게 잡을 수 없었고, 돼지는 사육과 저장의 부담이 컸다. 반면 닭은 생육 기간이 짧고 작은 공간에서도 기를 수 있었다. 알과 고기를 동시에 얻을 수 있었고 필요할 때 바로 잡아 국물을 낼 수 있었다. 북녘 사람들에게 닭은 가장 현실적이고 가장 빠르게 확보할 수 있는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영양적으로도 닭은 효율적이었다. 단백질 함량이 높고 지방 함량이 상대적으로 낮다. 육질이 부드러워 회복식으로 적합했고, 오래 끓여낸 국물은 체온 유지와 체력 보충에 도움이 됐다. 북녘에서 닭음식이 일상식과 보양식의 성격을 동시에 갖게 된 이유다.
이북 닭음식은 크게 세 가지 조리법으로 나뉜다. 첫 번째는 찜 조리법이다. 닭을 충분히 익힌 뒤 다시 증기로 마무리하는 방식이다. 두 번째는 곰탕 조리법이다. 닭과 뼈를 오래 끓여 맑고 깊은 국물을 만든다. 세 번째는 개장 조리법이다. 익힌 닭 살을 찢어 국물에 다시 넣고 채소와 함께 끓여낸다.
지금의 이북식 찜닭, 닭곰탕, 닭개장은 모두 이 조리법 안에서 발전했다.
이 세 가지 방식의 출발점은 같다. 닭을 먼저 충분히 익혀 육수와 고기의 기본 맛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후 어떤 방식으로 마무리하느냐에 따라 음식의 성격이 나뉜다. 찜은 육질을 정리하고, 곰탕은 국물의 깊이를 키우고, 개장은 국물과 살의 결합을 다시 완성한다.
이 조리 방식은 조선시대 고조리서에서도 확인된다. 『음식디미방』에는 닭을 삶아 국으로 내는 방식이 등장하고, 『규합총서』와 『시의전서』에는 익힌 닭을 숙육으로 내거나 국물 음식으로 이어가는 방식이 기록돼 있다. 지금처럼 ‘이북식 찜닭’이라는 이름은 없지만 닭을 익혀 다듬고 다시 완성하는 구조는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
대표적인 음식이 이북식 찜닭이다.
안동찜닭처럼 양념을 입혀 졸이는 방식과는 전혀 다르다. 닭을 푹 삶아 속까지 익힌 뒤 다시 찜기에 올려 열로 한 번 더 정리한다. 이 과정에서 육질은 단단하게 정리되고 결이 살아난다. 마지막에 부추를 넉넉히 올리고 겨자간장을 곁들인다.
부추는 오래전부터 몸을 따뜻하게 하는 채소로 여겨졌다. 『동의보감』에서도 양기를 돕는 식재료로 기록된다. 부추의 알리신 성분은 향을 더하고 소화를 돕는다. 닭의 담백한 맛 위에 부추의 향이 올라오면서 음식의 구조가 완성된다. 북녘에서는 닭과 부추를 함께 먹는 것이 보양의 방식으로 받아들여졌다.
이 음식이 서울에 자리 잡게 된 건 한국전쟁 이후 실향민의 이동 때문이다.
북에서 내려온 실향민들은 서울 중구와 성동 일대에 많이 정착했다. 그중 약수동은 중요한 공간이었다.
왜 하필 약수동이었을까.
당시 약수동은 남산 아래 형성된 주거지로 피란민들이 자리 잡기 수월했다. 도심과 가까우면서도 주거 비용이 비교적 낮았고, 시장과 교통이 발달해 장사를 시작하기 좋았다. 무엇보다 북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서로 의지하며 공동체를 만들기 쉬웠다.
고향 사람끼리 모여 살면 음식도 함께 남는다.
약수시장을 중심으로 평양냉면, 만두, 수육, 찜닭집들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곳은 서울 안에서 가장 선명하게 북녘 음식의 결을 유지한 동네가 됐다.
진남포면옥은 평안도식 냉면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북식 찜닭도 함께 선보인다. 닭을 충분히 익힌 뒤 다시 쪄내 부추를 곁들이는 방식이 지금도 유지된다.
처가집은 오래된 이북식 백숙집으로 알려져 있다. 백숙이라는 이름을 쓰지만 조리 구조는 이북식 찜닭과 가깝다. 닭을 충분히 익힌 뒤 열을 다시 입혀 육질을 정리하는 방식이다.
만포막국수는 막국수집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이북식 찜닭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방송과 SNS를 통해 알려지면서 젊은 손님들의 방문이 크게 늘었다.
최근 이북 닭음식을 현재의 외식 문화 안으로 끌어올린 대표적인 식당은 무구옥이다. 북촌에 자리한
무구옥은 이북식 백반을 중심으로 닭찜과 삼계백반을 선보이고 있다. 특히 Michelin Guide 서울 2024~2025 셀렉티드 레스토랑에 이름을 올리며 주목받았다.
이북 닭음식이 더 이상 특정 세대의 향수 음식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통 음식이 지금의 외식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갖고 있다는 의미이지 않을까.
최근 일부 셰프들과 음식 콘텐츠 창작자들은 이북식 찜닭 조리 과정에 유장 처리 같은 현대적인 조리법을 더하기도 한다. 닭 표면에 간장과 기름을 발라 풍미와 윤기를 더해 현대적인 재해석으로 자리 잡고 있다.
가정에서 만드는 이북식 찜닭
1. 닭 손질하기
생닭 1마리를 깨끗이 손질한 뒤 찬물에 30분 정도 담가 핏물을 뺀다.
2. 삶기
냄비에 물 3리터를 붓고 대파 2대, 통마늘 10알, 생강 30g, 통후추 1큰술을 넣고 끓인다. 물이 끓으면 닭을 넣고 중불에서 35~40분 익힌다.
3. 찌기
삶아낸 닭을 꺼내 찜기에 올린다. 센 불에서 10분, 중불에서 5분 정도 더 익힌다.
4. 부추 올리기
부추 150g을 5cm 길이로 썰어 찐 닭 위에 올리고 잔열로 숨을 죽인다.
5. 겨자간장 만들기
간장 4큰술, 식초 2큰술, 연겨자 1큰술, 설탕 반 큰술을 섞는다.
6. 완성하기
닭 살을 결대로 찢어 부추와 함께 겨자간장에 찍어 먹는다.
이북식 닭음식은 복잡한 양념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재료를 정리하고, 불필요한 맛을 덜어내고, 본래의 맛을 끝까지 끌어내는 방식으로 완성된다.
그래서 지금 다시 주목받는다.
2026년 음식 트렌드가 향하는 방향과 정확히 같다. 좋은 재료, 단순한 조리, 선명한 맛.
이북 닭음식은 오래된 음식이지만 지금의 식문화 안에서 가장 설득력 있는 방식으로 다시 읽히고 있다. 북녘의 기후가 만들고, 실향민의 손이 이어왔고, 지금의 식탁이 다시 선택하고 있는 음식이다.
Cook&Chef / 서진영 전문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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