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ok&Chef = 서진영 전문기자]3월과 4월은 전통적으로 보릿고개라 불리는 시기다. 겨울 동안 저장된 식량이 소진되고, 보리는 아직 수확되지 않은 공백기로 식량 부족이 심화되는 시점이다. 1980년대 초반까지도 농촌 지역에서는 이 시기의 식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별도의 대응 방식이 필요했다. 이와 관련된 개념이 구황이다.
구황은 일반적으로 기근 시 섭취하는 대체 식량으로 이해되지만, 본래의 의미는 보다 구조적이다. 구황은 천재지변이나 기후 변화와 같은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 대비해 사람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해 준비된 식물과 그 활용 체계를 의미한다. 이는 특정 식재료를 지칭하는 개념이 아니라, 식량 부족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준비와 관리의 방식에 해당한다.
이 개념은 조선시대 문헌인 『신간구황촬요』와 『요록』에서 확인된다. 해당 문헌에는 식물의 종류뿐 아니라 채취 시기, 독성 제거 방법, 조리 방식 등이 함께 기록되어 있다. 이는 구황이 단순한 식재료 목록이 아니라 실제 활용을 전제로 한 실용적 지식 체계였음을 보여준다.
초기 구황 식물은 대부분 자연 채취에 의존했다. 쑥, 고사리, 고들빼기, 칡뿌리 등의 산야초가 대표적이며, 상황에 따라 나무껍질이나 뿌리류까지 활용되었다. 이들 식재료는 식감이 거칠고 독성을 포함한 경우도 있어 섭취를 위해서는 별도의 처리 과정이 필요했다. 따라서 조리의 목적은 기호성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섭취 가능한 상태로 전환하는 데 있었다.
구황의 성격은 조선 후기 이후 변화한다. 감자, 고구마, 옥수수와 같은 작물이 도입되면서 기존의 채취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 작물들은 재배가 가능하고 수확량이 안정적이며 저장성과 활용도가 높다는 특징을 가진다. 특히 감자와 고구마는 척박한 환경에서도 재배가 가능해 기근 시 주요 식량 자원으로 기능했고, 옥수수 역시 건조와 저장이 용이해 식량 공백기를 보완하는 역할을 했다.
이 시점을 기준으로 구황은 채취 기반 식량에서 재배 기반 식량으로 전환되는 구조적 변화를 보인다. 이는 식량 확보 방식이 자연 의존에서 관리 가능한 생산 체계로 이동했음을 의미한다.
음식의 형태 역시 이에 따라 달라진다. 과거의 구황 음식은 쑥죽, 칡죽, 나물무침 등 단순 조리 형태가 중심이었다. 이는 생존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조리 방식이었다. 반면 감자와 고구마, 옥수수 도입 이후에는 감자밥, 고구마죽, 옥수수범벅과 같이 주식 기능을 대체하는 형태의 음식이 등장한다. 이는 일정한 열량 확보와 지속적인 식사가 가능해졌음을 보여준다.
현대에 들어 구황작물의 의미는 다시 변화한다. 감자, 고구마, 옥수수는 기근 대응 식재료에서 일상 식재료로 전환되었으며, 가공식품과 외식 메뉴로 확장되었다. 또한 과거 구황 식물로 분류되던 쑥과 산나물류는 제철 식재료로 재평가되며 일부는 고급 식재료로 활용되고 있다. 이는 동일한 식재료라도 시대에 따라 그 의미와 가치가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구황은 특정 시기의 음식이 아니라 식량 부족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준비와 관리의 체계다. 보릿고개를 중심으로 형성된 구황의 구조는 채취 중심에서 재배 중심으로 전환되었고, 이후 일상 식재료로 변화하는 과정을 거쳤다. 이는 식재료의 변화라기보다 식량을 바라보는 방식의 변화로 해석할 수 있다.
Cook&Chef / 서진영 전문기자 cnc02@hnf.or.kr
[저작권자ⓒ 쿡앤셰프(Cook&Chef).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