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F STORY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삶을 살아간다는 것
중화복춘 정지선 총괄셰프
“여자로 태어나는 게 아니라 여자로 길러지는 것이다.” 누구든 어디서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말이다. 이 말을 한 사람은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이자 작가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로 1949년에 쓴 저서 『제2의 성』에서 이를 언급했다.
사람은 누구나 생물학적으로 여성이나 남성으로 태어난다. 물론 이는 일반적인 경우다. 때로는 양성을 모두 갖고 태어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보부아르의 시각으로 보자면 태어날 때 생물학적으로 여성이라 할지라도 사회문화적 영향으로 인해 그 사회가 원하는 여성으로 자란다. 바로 여기에서 사회적 성차별이 생겨난다. 세계의 많은 여성들이 오랜 기간 성차별에 저항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어떨까? 당연히 사회가 원하는 여성상이 존재한다. 사회적인 여성상이 아니라 생물학적인 여성으로서의 역할을 설정하고 가정에서부터 학교, 사회에 이르기까지 그 모델에 맞춰 길들인다.
여자라서 뭐? 맞짱, 함 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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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지선 셰프는 전 세계적으로 여성 셰프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
그가 지금의 성과를 내기까지 전반적인 과정을 들여다본다면 얼마나 힘든 싸움의 연속이었는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만하다. 왜냐면 그는 생물학적으로 여성이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그가 몸담았던 학교나 직장에서는 남성의 비율이 절대적으로 높았다. 약 7대 1이거나 심한 경우 9대 1의 비율로 여성의 숫자가 적었다. 하지만 수치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건 여성들이 잘 택하지 않는 곳에 그가 있었던 탓이기도 하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그가 자신의 생물학적 성별을 고려해서 학교나 직업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그저 자신이 좋아하고, 재밌는 분야를 평생 할 것으로 ‘찜’했을 뿐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의 계획 속에 없던 일들이 일상적으로 그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던 것이다. 그가 기억하는 강렬한 경험은 대학 때 토론을 하며 벌인 ‘썰전’이다. 당시 주제는 ‘왜, 여성은 주방에서 살아남기 어려울까?’였다. 역시 남학생 비율이 높았고, 그들 대부분은 ‘여성은 주방에서 버티기 힘들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특히, 중식 주방은 육체적으로 힘든 탓에 더욱 그랬다.
당연히 그의 생각은 달랐다. ‘왜? 대체 왜 여자라서 안 된다는 거지?’ 이렇듯 강한 의구심이 들었던 것. 굳이 상상하지 않아도 그가 벌였을 논쟁 장면은 이상하리만치 통쾌하다. 그의 생각처럼 무거운 짐을 거뜬히 짊어져야 조리사 자격이 있는 게 아닌 것이다. 이 해묵은 논쟁이 학생들 사이에서조차 여전하다는 게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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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언제나 당당하게 세상과 맞선다 |
"아는 분이 있는 식당에서 일한 적이 있었는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저에게 ‘왜 여자가 주방에서 일하냐’고 불만을 얘기하듯 말하더라구요. 정말 어이가 없었죠. 나름 공부도 열심히 하고 열정을 갖고 시작한 일인데 여기서 내가 왜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삼 개월 만에 그만두고 나왔습니다.”
주방에 있어서는 안 될 취급을 받은 건 당연히 여성이기 때문이다. 여성이기에 섬세하고, 여성이기에 따뜻하다는 건 인정하되, 육체적으로 힘이 부족한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모순된 잣대를 자랑스럽게 들이댄 해프닝이다. 이러한 일들은 비단 중식 주방에서만 벌어지는 건 아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남성이 우월하다는 그릇된 가치관이 판을 치고 있지 않은가.
지난 11월 제3회 서울국제음식영화제가 개최되었고, 정 셰프는 주최 측에서 운영한 ‘먹으면서 보는 영화관(Dining Cinema)’에 초대 셰프로 참석했다. 그가 참석한 날 토크쇼에서 한 관람객이 “여성 셰프로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겪은 일들을 떠올리며 적절한 대답을 찾았지만 그가 한 말은 이것이다.
“버티세요.”
그럴 수밖에 없는 요인은 많다. 특히, 사회적인 문제이기도 한 ‘출산으로 인한 경력단절’ 같은 예가 바로 그렇다. 정 셰프 역시 육아로 인해 주방을 떠나야 할 위기를 겪었다. 다행히 부모님의 도움으로 간신히 자신의 일을 이어갈 수 있었지만 그의 말대로 ‘다행히 상황이 도와줬기 때문’이다. 과연 운이 좋아서 사회활동을 한다는 걸 받아들여야 할까. 여성의 사회적 활동이 보장되기 위해서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지만 그것이 이뤄지기 위해선 역시 인식의 전환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는 “주방에서 살아남으려면 더 공부하고, 더 움직이고,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삶을 사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여성에게 해주는 이야기로 읽으면 안 된다. 주방에서 살아남고, 자신이 목표한 지점에 도달하려는 사람 모두에게 전하는 경험에서 나온 조언이다.
편견이 차별을 만들어내는 법이다. 우리 곁에는 차별받는 사회적 약자들이 많다. 여성 역시 그중 하나이고, 좋아졌다고들 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어 보인다.
정지선 셰프는 곧 출간될 책을 준비 중이다. 그에 따르면 많은 사람들이 딤섬에 대해 오해하고 있다고 한다. 정확히는 오해보다는 무지하다는 해석이 옳을 듯하다. 그래서 중국에서 공부하고, 중식 셰프로서 쌓은 경험과 지식을 한 권의 책에 담을 계획을 세웠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자신이 일군 결과를 성공이라고 받아들이지 않는다. 겸손한 자세이기도 하지만 앞으로 이뤄야 일들이 더 많다고 여기는 까닭이다. 그래도 정지선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중식 셰프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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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지선 셰프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요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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