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을 줄 알고 5살까지 미뤄진 출생신고로 5세에 태어난 사람
- 신경계통 질환으로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고통 그리고 시
슬픔과 비탄 속에서 아들의 죽음을 기다리던 아버지는 결국 5년 만에 그의 출생신고를 단행했다.
그의 나이 9세 되던 때는 전신마비가 와서 자신의 몸 안에 갇혀 있어야 했다. 인생을 살면서 곧 죽을 거라는 말을 수없이 많이 들었다. 그러나 그는 살아남았다. 가족 중 누구보다도 오래 살아남아 시를 썼다. 최근 두 번째 시집 ‘어글리플라워’(앨리스북클럽)를 펴낸 황용순 시인을 만나 보았다.
* 왜 시집을 내게 되었나
《어글리플라워》의 ‘잠들지 않는 이별’이라는 시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태어나기도 전에 무릎 꿇어버린 삶에서도 바랄 게 있다면/ 나에게 그리움을 안겨준 당신들을 위해/ 당신들이 숨어 있기 좋은 방 하나 마련하는 거”
제 시가 아니라도 시는 사람들이 숨기 좋은 방이다. 시는 세상으로부터 떨어져 있기 위해 읽는 것이니까. 시를 읽다 보면 그런 방에 들어가게 된다. 나도 그 방이 있어 위안을 받았다. 그리고 나도 그 방을 누군가에게 제공하고 싶었다.
* 왜 시를 쓰게 되었나
신경계통 질환을 앓다 보니 시도 때도 없는 고통이 나를 찾아왔다. 피할 수도 방어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시도 비슷하다. 일부러 찾아간 게 아니라 시가 나를 찾아온 것이다. 시한부 삶을 선고받고 고등학교를 중퇴했다. 학교에 다닌다는 게 의미 없었으니까. 그런데 생각보다 빨리 안 죽더라. 모자란 소양을 보충하기 위해 문학 서적을 많이 잃었다. 시집도 많이 읽었는데 그러면서 시의 리듬감을 익힌 것 같다. 사실은 낙서처럼 끄적인 것을 사람들이 시라고 불러준 것에 가깝다.
나의 어머니는 임신 사실을 알고 어떻게든 나를 지우려 했다. 하지만 그 시도는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고 결국 12월 25일, 예수가 태어났다는 바로 그날에 나는 태어났다. 사람들은 사산인 줄 알았다. 죽은 것은 아니었고 단지 뒤틀린 채로 태어난 거였다. 부모님은 어차피 오래 못 살 줄 알고 출생신고조차 안 했다. 그런데 내가 5년을 살아 있자 나의 아버지는 불행을 기다리는 데 지쳐 마침내 1980년 뒤늦은 출생신고를 했다.
* 살면서 죽음의 고비가 많았다고....
고등학교에 막 올라갔을 때 의사가 내게 시한부 선고를 내렸다. 나는 그 길로 자퇴를 하고 세상을 떠돌았다. 곧 죽을 텐데 학교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때 썼던 글조각을 어떤 분에게 보여드렸는데 그가 출판사 사장이었다. 그가 내 글을 시집으로 엮어주었다. 그런데 그런 내 사정이 중앙일보 사회면에 2번이나 보도되면서 7천만 원이라는 큰 성금이 모였다. 그 돈으로 큰 수술을 세 번 더 받았다. 그러나 결국 의사도 두 손을 들었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는 시한부 선고를 다시 들었을 뿐이다.
* 사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는데 지금 부자인가
2000년이 되었는데도 나는 죽지 않았다. 혹시 안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업을 시작했다. 백억 대 매출을 올리며 승승장구했지만 배신과 사기, 횡령을 방어하지 못해 결국 회사가 쓰러졌다. 18억의 빚을 고스란히 떠안고 노숙자 생활을 시작했다. 정신을 차릴 무렵 아버지가 간암으로 죽었다는 전갈을 받았다. 아버지는 죽기 전, 내게 어머니를 부탁했다는데 어머니도 곧 죽었다. 췌장암이었다. 어머니는 죽기 전 내게 형을 부탁했다. 그러나 형도 곧 죽었다. 위암이었다. 형은 죽기 전에 형수와 조카들을 부탁한다고 말했다. 나는 부자는 아니지만 아버지, 어머니, 형이 내게 그런 부탁을 할 만큼은 돈을 벌었다. 지금도 돈을 벌고 있다. 나 살아가고 조카들 학비 대줄 정도로는 번다.
*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해줄 말이 있다면
나의 불행을 질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내 장애가 문학적 재능의 토양이 된 거라며 글도 쓰지 않고 그렇게 살 거면 그 재주 나 달라는 농담도 들었다. 어떤 사람은 나의 사연팔이, 눈물팔이, 감성팔이 글이 싫다고 했다. 누구나 죽는다. 남아 있는 시간을 최대한 누리는 게 우리의 할 일이다. 나는 곧 죽는다는 생각에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았다.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은 다 느끼고자 했다. 느끼니 살아지더라. 삶은 누리는 것이다. 더 정확하게는 느끼는 것이다. 어떤 어려움에 처했더라도 오늘을 느끼라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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