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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k&Chef = 길라떼 기자] 고요한 저녁, 소파에 몸을 기대고 넷플릭스를 켜는 순간, 우리의 일상은 잠시 멈추고 화려한 미식의 세계로 떠난다. 최근 그 중심에는 단연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시즌2’(이하 흑백요리사2)가 있다. 치열한 요리 대결 너머, 이 프로그램은 단순한 엔터테인먼트를 넘어 우리 식탁과 소비 문화에 거대한 파동을 일으키고 있다.
셰프의 손끝에서 탄생하는 예술 같은 요리들은 더 이상 스크린 속 그림의 떡이 아니다. 방송이 끝나기가 무섭게 편의점과 마트, 백화점 진열대는 셰프의 레시피와 영감을 담은 상품들로 채워진다. ‘흑백요리사2’는 이제 유통업계와 식품 브랜드에게 가장 뜨거운 마케팅 전쟁터가 되었고, 소비자에게는 새로운 미식 경험을 선사하는 창구가 되었다.
이 현상은 단순한 ‘쿡방’의 인기를 넘어선다. 셰프라는 크리에이터와 브랜드의 만남이 어떻게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고급 미식의 문턱을 낮추며, 심지어 우리의 장바구니 속 식재료까지 바꾸어 놓는지, 그 흥미로운 변화의 레시피를 깊이 들여다볼 시간이다.
시즌1의 성공, 예견된 전쟁의 서막
‘흑백요리사2’를 둘러싼 유통가의 뜨거운 관심은 사실 예견된 결과였다. 지난해 방영된 시즌1은 콘텐츠의 파급력이 어떻게 실제 소비로 직결되는지를 명확히 증명하며 업계에 하나의 성공 공식을 제시했다. 당시 프로그램의 흥행은 곧바로 협업 상품의 ‘완판 신화’로 이어졌다.
편의점 CU가 시즌1 우승자인 권성준 셰프의 메뉴에서 영감을 받아 출시한 ‘밤 티라미수 컵’은 단순한 디저트를 넘어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 되었다. 출시와 동시에 품절 행진을 이어갔고, SNS는 이 작은 컵을 손에 넣기 위한 ‘인증샷’으로 도배되었다. 이는 콘텐츠의 힘이 소비자의 지갑을 얼마나 직접적으로 열게 하는지를 보여준 생생한 증거였다.
버거 프랜차이즈 맘스터치가 준우승자 에드워드 리 셰프와 손잡고 내놓은 버거 2종 역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출시 첫 주의 일평균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61.3%나 급증하는 기염을 토했다. 슈퍼 얼리버드 사전 예약은 단 30분 만에 완판되며, 셰프의 이름값이 갖는 강력한 티켓 파워를 입증했다.
이러한 성공 사례들은 유통업계에 중요한 학습 효과를 남겼다. 셰프의 전문성과 스토리를 입힌 상품은 소비자에게 단순한 제품 이상의 가치, 즉 ‘특별한 미식 경험’을 제공한다는 것. 이 교훈은 시즌2를 앞둔 유통·식음료 업계가 방송 시작 전부터 치열한 ‘셰프 모시기’ 경쟁에 뛰어들게 만든 기폭제가 되었다.
방송 전부터 시작된 속도전, 셰프를 선점하라
시즌1의 학습 효과 덕분에, ‘흑백요리사2’를 둘러싼 경쟁은 방송의 막이 오르기도 전에 이미 시작되었다. 누가 먼저 유망한 셰프와 손을 잡고 시장을 선점하느냐가 관건이었다.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인 곳은 편의점 이마트24였다.
이마트24는 ‘백수저’ 셰프로 출연하는 조선호텔 출신 손종원 셰프와 사전 단독 계약을 맺고, 방송이 공개되기도 전인 지난달 26일부터 협업 상품 6종을 선보이는 과감한 전략을 펼쳤다. ‘패밀리밀(Family Meal)’, 즉 셰프와 스태프들이 바쁜 업무 속에서 함께 나눠 먹는 소박하지만 정성 어린 일상식을 콘셉트로 잡았다. 떡갈비정식 도시락, 함박얹은 나폴리탄스파게티 등은 셰프의 인간적인 스토리를 담아내며 소비자에게 친근하게 다가갔다.
이는 방송 이후 관심이 폭증할 것을 예측하고 한발 앞서 움직인 영리한 행보였다. 소비자들이 프로그램에 몰입하기 시작할 때, 이미 시장에는 손종원 셰프의 이름과 스토리가 담긴 상품이 준비되어 있었던 셈이다. 기업용 커피머신 브랜드 네스프레소 프로페셔널 역시 손 셰프의 일상을 담은 브랜드 필름을 선공개하며 협업 효과를 극대화했다.
스타벅스 코리아 또한 유용욱 바베큐연구소장과 협업한 샌드위치를 일부 매장에서 한정 판매하며 경쟁에 가세했다. 1만 4500원이라는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기존 인기 샌드위치보다 2배에서 5배 이상 높은 판매량을 기록하며 프리미엄 협업 상품에 대한 소비자의 뜨거운 수요를 확인시켰다. 이는 셰프의 명성이 가격 저항선을 가뿐히 뛰어넘는 강력한 구매 동기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단순 PPL을 넘어, 브랜드 세계관을 구축하다
‘흑백요리사2’와 연계된 마케팅은 단순히 제품을 노출하는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브랜드들은 셰프의 철학과 전문성을 자사의 정체성과 유기적으로 결합하며, 한 차원 높은 ‘미식 마케팅’을 선보이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CJ제일제당의 ‘셰프 팬트리’ 전략이다.
CJ제일제당은 프로그램의 공식 파트너로 참여해, 경연에 나선 셰프들이 사용하는 식료품 저장고(팬트리)를 자사 제품으로 가득 채웠다. 셰프들이 긴박한 대결 속에서 자연스럽게 비비고 만두를 찌고, 햇반을 데우며, 각종 장류를 활용하는 모습은 그 어떤 광고보다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국내 최고 수준의 셰프들도 믿고 사용하는 제품이라는 신뢰감을 심어주는 것이다.
이는 국내 시청자를 넘어,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K-푸드 대표 브랜드’로서의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고도의 전략이다. CJ제일제당은 향후 셰프들과의 협업 제품 출시도 계획하고 있어, 프로그램의 IP(지적재산권)를 활용한 마케팅을 더욱 확장할 것으로 보인다.
주류업계도 이 미식의 향연에 동참했다. 오비맥주는 자사 브랜드 스텔라 아르투아를 앞세워 ‘흑백요리사2’와의 협업 캠페인을 진행한다. 고급스러운 요리와 맥주의 페어링을 강조하는 광고 및 디지털 콘텐츠를 통해, 스텔라 아르투아를 단순한 맥주가 아닌 ‘미식의 경험을 완성하는 한 부분’으로 포지셔닝하려는 시도다.
철학과 스토리가 만나는 순간, 협업은 예술이 된다
최근 셰프와의 협업 트렌드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지점은, 단발성 마케팅을 넘어 브랜드의 철학과 세계관을 확장하는 깊이 있는 파트너십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소비자들이 이제 제품의 기능뿐만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이야기와 가치를 소비하기 시작했다는 변화를 반영한다.
정통 수제 싱글몰트 위스키 발베니와 ‘흑백요리사’ 심사위원인 안성재 셰프의 만남은 이러한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발베니는 ‘발베니 메이커스 캠페인’을 통해 위스키를 ‘장인의 철학과 시간이 담긴 결과물’로 정의했다. 그리고 이 철학을 가장 잘 구현할 파트너로 미식 분야의 장인인 안성재 셰프를 선택했다.
안 셰프는 발베니가 130여 년간 지켜온 장인정신과 다른 셰프들의 요리 철학이 교차하는 지점을 탐구하고, 한식과 발베니 위스키의 페어링이라는 새로운 미식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 협업은 단순히 ‘셰프가 추천하는 위스키’가 아니라, ‘장인과 장인의 만남’이라는 깊이 있는 서사를 만들어내며 브랜드 가치를 한층 끌어올렸다.
푸라닭 치킨이 시즌1 우승자 권성준 셰프와 함께 선보인 ‘나폴리 투움바’ 치킨 역시 마찬가지다. 푸라닭은 ‘치킨은 요리다’라는 브랜드 정체성을 강조하기 위해 권 셰프의 전문성을 빌렸다. 광고 영상에는 권 셰프가 자신만의 레시피 북을 펼쳐들고 깊이 고뇌하는 모습을 담아, 신메뉴가 단순한 치킨이 아닌 셰프의 철학이 담긴 ‘요리’임을 설득력 있게 전달했다.
스크린에서 장바구니로, 미식의 민주화가 시작되다
‘흑백요리사’ 현상의 가장 흥미로운 파급 효과는 기업들의 마케팅 전략 변화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이 프로그램은 시청자들의 식탁과 장바구니를 직접적으로 바꾸고 있다. 화면 속 셰프가 섬세한 손길로 흑진주 같은 캐비어를 한 스푼 떠서 요리 위에 올리는 순간, 시청자의 마음속에는 작은 불꽃이 튄다. ‘나도 한번쯤’이라는 호기심은 곧장 스마트폰 검색으로, 그리고 장바구니 결제로 이어진다.
과거 백화점 VIP나 고급 레스토랑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캐비어, 트러플, 푸아그라 같은 프리미엄 식자재의 매출이 급증하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롯데백화점의 올해 프리미엄 식자재 매출은 작년 동기 대비 무려 300%나 증가했다. 신세계백화점과 현대백화점 역시 비슷한 수준의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이러한 흐름은 e커머스에서도 뚜렷하다. 컬리의 캐비어 판매량은 전년 대비 약 350% 폭증했으며, 요리의 풍미를 더하는 수입 버터(21%)와 프리미엄 새우살(15%) 같은 식재료의 인기도 동반 상승했다. 대형마트인 이마트에서조차 올리브유와 수입 버터 매출이 각각 29.2%, 26.3% 늘어났다. 이는 프리미엄 식문화가 특정 계층을 넘어 일반 가정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흑백요리사 같은 프로그램과 전문 셰프, 인플루언서의 조리법이 온라인을 통해 빠르게 퍼져나가며 프리미엄 식자재를 직접 요리하는 것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고 분석했다. 고물가 시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만족과 행복을 위해서는 아낌없이 투자하는 ‘가심비’ 소비 성향이 미식 분야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레시피, 미식 문화의 미래를 그리다
‘흑백요리사2’가 촉발한 일련의 변화들은 우리에게 미식 문화의 미래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셰프는 더 이상 주방에만 머무는 기술자가 아니라, 대중의 라이프스타일에 영감을 주는 강력한 인플루언서이자 콘텐츠 크리에이터로 자리매김했다. 유통업계는 이들의 IP를 활용해 단순한 상품이 아닌 ‘경험’과 ‘스토리’를 판매하는 새로운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프로그램 종영 이후에는 우승자나 인기 셰프의 캐릭터와 레시피를 활용한 더욱 다양한 IP 상품이 쏟아져 나올 가능성이 크다. 셰프의 레스토랑 간편식(HMR) 시장은 더욱 확대될 것이며, 브랜드와 셰프가 함께 기획하는 팝업 스토어나 다이닝 이벤트도 활발해질 것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소비자의 성장이다. 미디어 콘텐츠를 통해 고급 요리와 식재료에 대한 지식과 안목을 높인 소비자들은 더욱 능동적으로 새로운 맛을 탐험하고, 자신의 주방에서 작은 미식의 행복을 실현하려 할 것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국내 외식 산업과 식품 시장 전체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긍정적인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결국 ‘흑백요리사’가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한 편의 잘 만든 콘텐츠가 산업의 지형을 바꾸고, 문화적 트렌드를 이끌며, 개인의 일상에 얼마나 깊숙이 스며들 수 있는지에 대한 생생한 증명이다. 오늘 저녁, 당신의 식탁에는 어떤 새로운 이야기가 담긴 요리가 올라올까. 셰프의 레시피에서 시작된 작은 변화가 우리의 미식 생활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고 있다.
Cook&Chef / 길라떼 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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