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F STORY
‘중국요리의 대중화를 위한 전주곡’
‘목란’ 이연복 셰프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의 싯귀를 빌리지 않더라도 그의 첫 인상은 그랬다. 오랜 풍상을 뒤로 하고, 중식요리의 최고 정점까지 찍어본 그가 이제는 소박하게 대중들을 위한 요리를 하겠다는 강한 소신을 밝힌다.
[Cook&Chef 조용수 기자] 1980년 불과 22살이 되는 나이에 중국대사관 사상 최연소 조리장이라는 가슴 설레는 경력을 갖고 있는 리옌푸(李連福). 한국식 이름 이연복이다. 한때 중식셰프로는 최고의 추앙 받는 직장인 중국대사관 조리장으로서의 8년여 동안의 화려한 경력을 뒤로하고 그가 새로운 인생에 도전하기 위해 일본행을 결심한다. 일본의 경기가 한창 좋았던 1988년 그에게 새로운 도전을 하기 위해서는 가장 매력적인 곳이었다. 일본 오사카 닛본바시에 거처를 정한 그는, 처음 일을 시작한 곳이 신사이바시의 한 주점. 중식이 전공이었던 그에게 일식과 중식의 조화는 그야말로 새롭게 도전해 볼 수 있는 요리의 세계였다. 타고난 조리사 이연복 셰프는 날개를 단 듯 새 메뉴개발에 매진한다. 새로운 안주요리에 손님들의 반응이 좋아 얼마 걸리지 않아 신사이바시의 인기 요리사로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현재 ‘목란’ 요리의 담백함은 일본에서 익힌 ‘일본요리’의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4년간 일본주점에서 종업원으로 일한 그는 독립을 결심한다. 일본의 분위기도 파악을 했고 전공이던 중식의 미련을 버리지 못해 일본에서의 중식요리를 시작한 것이다. 배달전문 중국집은 일본에서는 좀 이색적이었다. 영업이 잘되어 자리를 잡아가고 있던 중, 고베지진(1995년)이 일어났다. 어수선한 일본 분위기도 그렇고 가게 건물도 휘청거리고, 설상가상 집세도 점점 올려 감당하기 어려웠다. 더 이상 버틸 희망이 없어진 그는, 6년 만에 일본에서의 생활을 접었다. 일본생활의 회의로 한국으로 다시 건너 온 게 10년 만이다. 마흔이 돼서 돌아온 그는 서울 강남에 ‘목란’이란 중국집을 열었다. 일본을 다녀온 후 이연복 셰프의 요리 세계는 기존의 중식 조리장과는 다른 감각을 갖고 있었다. 당시 한국의 식문화도 퓨전 요리로 많이 바뀌어. 전통 중국요리에도 영향을 끼쳤을 때였고, 변화된 그의 감각이 적응하기에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바삭하고 고소한 튀김 요리가 대중들에게 인기라는 것을 착안해서 건강에 좋은 튀김요리에 대한 연구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중식에 놓칠 수 없는 아이템인 군만두는 이연복 셰프의 자랑거리다. 남녀노소 동서고금 누구나 좋아하는 대중의 요리이기에 더 애착을 같고 연구를 했다. 만두피를 직접 만들고 만두 속에는 돼지고기를 80%나 넣어 깊고 풍부한 육질의 군만두 맛을 내는 것이다. 크래커처럼 바삭한 만두피는 캐러멜 색으로 노릇노릇하게 구어, 보기만 해도 군침을 돌게 한다. 돼지고기 속은, 기름기가 거의 없다. 열량을 고려한 웰빙 군만두인 것이다. 앞으로 이연복 셰프의 계획은 목란 2호 3호점...을 오픈해 자신만의 요리를 대중화하는 것이 인생의 철학인 그의 원대한 계획을 알리는 하나의 전주곡이다. 2호점. 3호점... 어느 곳이나 목란의 동일한 맛으로 고객에게 자신의 요리세계를 맛으로 정성으로 서비스를 하겠다는 것이 그의 뜻이다. 이것이 그의 몸에 흐르고 있는 외할아버지, 아버지에 이어 삼대? 째 중식을 이어가고 있는 몸속 잠재된 유전자가 타고난 천상의 중식 셰프로 만들어 가고 있는 것 같다. 사소한 것도 놓치지 않고 고객을 위해 정성을 다하는 그의 세심한 배려와 부담 없이 가격으로 품격 있고 격조 있는 이연복표 중식을 즐길 수 있어, 목란을 찾는 고객들은 이연복 셰프에게 감사 할 따름이다.
친근하고 소박한 중식을 통해 중식을 사랑하는 많은 매니어들에게 자신만의 요리를 선보이고 싶은 게 이연복 셰프의 소망이 머지않은 시기에 2.3호점을 통해 조금이라도 집 가까운 곳에서 이연복 셰프의 정성이 담긴 중식 요리를 즐길 기회를 기대해 본다.
* 목란 이연복 셰프 02-732-0054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13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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