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가는 10월, 조리명장1호이며 조리명장협회 회장인 한춘섭 한국관광대학 호텔조리과 명예교수를 만났다. 태어나서 제일 잘 한 일이 요리를 배워 조리사의 길을 걸어온 일이며, 두 번째가 일꾸오꼬 알마(IL CUOCO ALMA)이태리요리전문학교를 만든 일이라고 말하는 그는, 지금 좋아하는 일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즐겁다.
CHEF STORY - Korea Master Chef
스스로에게 만끽하는 삶이 되길...
한국의 조리명장 1호 한춘섭 명장
[Cook&Chef 조용수 기자] 이천에 자리한 한국관광대학의 교정은 이 가을을 다 품은 듯이 풍성하고, 훌륭한 스승들을 모시고 있는 학생들 또한 당당하고 세련되어 보인다. 기자를 맞이하는 한춘섭 명장의 인자한 미소는 곱게 물든 단풍잎처럼 가을의 깊이를 닮아 있다. 우선 조리명장1호로 선정된 그때가 궁금했다. 2000년도에 한국조리명장을 뽑는 제도가 생겼다. 그 해는 한춘섭 명장이 서울 캐피탈호텔에 있을 때 였으며, 조리기능장을 취득하고 있었다. ‘메모는 내 자신의 운명을 좌우한다.’라는 좌우명이 있을 정도로 평상시 메모를 잘하는 습관이 있는 그는 당시에도 자료나 포트 폴리오를 잘 보관하고 있었던 차에 그대로 제출을 했다.
조리명장은 시험이 아니라 국가에서 선정하는 제도이다. 요리를 잘하는 것 뿐만 아니라 후배양성이나 봉사 및 사회에 이바지한 공로, 조리 특허의 실적이 있고 인격적으로나 실력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수준이 되는 이들을 선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자격조건이 충분한 그는 2000년 첫 해에 명장 1호로 선정이 되었다. 그 후로 한 해에 한 명씩 명장이 선정이 되어 지금은 10명이 되었다. 명장들 모임이 일 년에 한 두번씩은 있지만 전국에 있는 명장들이 다 모이기는 힘든 상황에서, 올 해 모처럼 10명의 명장이 다 모여 부산에서 1박 2일 모임을 가졌다. 각자의 위치에서 열정을 갖고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이제는 명장으로서 뒤 돌아보며 무언가 족적을 남겨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여러 가지 토론을 하는 뜻있는 모임이었다. 독일이나 일본, 중국 등은 명장에 대한 예우가 대단하다. 그런데 아직 한국은 훌륭한 명장을 선정해 놓고도 예우나 활용면에서 그렇지 못한 환경이니 참으로 안타깝다.
한춘섭 명장에게 소스에 대한 질문은 빠뜨릴 수가 없다. 서양요리가 전공인 그는 1980년부터 한식을 배우며 소수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호텔에 근무를 하면서도 틈틈이 소스 개발에 대한 열의를 갖고 있었다. 그 동안 300여가지 소스를 개발했는데 60여가지 만으로도 한식요리를 못할 것이 없고 가정에서는 10가지 정도로 평상시에 즐기는 요리는 거의 할 수 있다고 한다. 큰 기업들과 소스 제품생산에 대한 시도도 하고 지원도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고, 한춘섭 명장이 직접 소스 공장을 차렸으나 1년 반 만에 문을 닫는 아픔을 겪었다. 현실성에 부딪쳐 큰 손실만 보았다.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소스를 개발하여 요리 초단들도 쉽게 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기다려 본다. 한식 소스가 개발이 되어야 한식의 세계화도 쉽게 될 것이다. 한춘섭 명장은 일본에 벤치마킹으로 자주 방문을 하는데 마트 같은 곳에 가서 시장조사를 해 보면 일반 공장에서 나온 소스와 이름 있는 장인의 소스가 같은 자리에 있으면 일본사람들은 장인의 소스가 비싸더라도 그것을 사 간다고 한다. 그러한 정서나 풍토가 자리를 잡아야 한춘섭 명장의 소스가 마트에서 자리를 잡는 날이 한국에도 올 것이다.
"여담입니다만, 천안호두과자를 사 먹으면 7개국의 재료를 먹는 겁니다. 한국 재료는 달걀 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저렴한 재료를 사용하므로 그런 현상이 있는 것이지요. 값싼 중국산이 곳곳에 퍼져있어요. 사실 중국산을 배척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너무 많은 곳에 자리 잡고 있어 먹거리 재료들도 자유롭지 못합니다."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며 난감해 하는 한교수의 지적에 할 말을 잃고 만다. 선진국 대열에 접어든 한국이 아직도 넘어야 할 문턱이 높다는 것이다. 요리를 시작하며 선배들에게서 전수받은 것이 없어 어려움을 겪었던 그는 이태리 전문요리학교인 일 꾸오꼬 알마(IL CUOCO ALMA)를 설립하여 그 한을 풀었다. 1999년에 요리학원으로 시작한 이 학교는 이제는 전문학교로 성장하였다.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딸이 푸드 코디네이터를 하겠다며 요리를 배우더니 이태리까지 유학을 가는 적극성을 띄우며 요리를 배웠다. 이제는 일 꾸오꼬 알마에서 후학을 양성하는 선생이 되어 있는 딸을 바라보면 한춘섭 명장은 즐겁다. 몇 년전 ‘파스타’라는 TV드라마가 있었다. 그 당시 그 레스토랑에 근무하고 있었던 그녀는 드라마에 나왔던 요리를 다 해냈다며 요리의 뒤를 잇는 딸에 대한 애정을 감추질 못한다.
"요리를 하면 먹는게 남는다."
한춘섭 명장 어록의 한 대목이다. 재미로 하는 말 같지만 사실이 아닌가. 누구나 태어나서 제일 행복감을 느낄 때가 맛난 음식을 먹을 때 인데 그것을 만드는 것이 요리사이며 행복 전도사인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행복을 전해주는 것이 무엇보다 즐거운 일이라는 자긍심을 갖고 열정으로 일을 하라고 후학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그의 열정은 아직도 식지 않았다. 요즘도 잠을 자다 래시피가 떠오르면 한밤중에 일어나 요리를 시도한다. 그래서 한춘섭 명장의 집 부엌은 웬만한 식당의 조리시설이 다 갖추어져 있다. 휴가나 휴일에는 좋은 재료를 찾아 다니며 먹어보고 연구를 한다. 전국을 세바퀴나 돌며 곳곳의 음식들을 찾아 다녔고 해외는 32개국을 50여 차례나 돌며 맛 기행을 하였다. 소스가 독특한 식당에 들어가면 입에다 물고 나와서 연구 분석을 할 정도로 적극적인 한춘섭 명장은 아직도 연구할 것이 많아 일주일에 사흘이나 되는 빠듯한 수업을 진행하면서도 틈틈이 맛 기행의 계획을 세우고 있다.
"자신이 이룬 것은 사소한 것이라도 만끽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활력소가 되고 용기를 갖고 나아갈 수 있는 것이죠. 학생들은 많은 경험을 하고 탐구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또한 음식은 온 정성을 다 해야 합니다."라고 학생들에게 늘 조언을 하고 있다. 32개국 각양 각색의 요리를 능숙하게 잘 해내는 한춘섭 명장이 "자연 그대로 조리하지 않은 요리가 가장 훌륭한 요리입니다." 라고 요리의 정설을 말하고 있다. 요리명장에게 제일 맛있는 요리는 무언지 궁금했다. 망설임 없이 “된장찌개입니다”라고 대답한다. 어머니가 끓여 주셨던 된장찌개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었고 지금 제일 자신 있는 요리도 된장찌개라고 말한다.
은행나무숲으로 온통 노랗게 물들어 있을 강원도 홍천이 고향인 그는 감자 예찬도 대단하다. 감자, 옥수수가 예전에는 구황식품이었는데 지금은 감자의 영양성분이 부각되어 비싼 식품들을 재치고 인기식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가 말하는 감자요리도 한 둘이 아니다. 요리명장 손을 거치면 어떤 재료든 훌륭한 요리가 된다. 한식 세계화에 대해서도 한춘섭명장은 할 말이 많다.
"한국음식이 세계화에 걸림돌이 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농림부에서 발표한 분석표에 따르면 미국에서 외국음식의 인기순위를 10위까지 선정했는데 한국음식이 9위 였다고 합니다. 이유는 한식은 즉석요리가 아니고 만들어 놨다 준다는 겁니다.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많이 차리는 한식은 즉석에서 할 수가 없지요. 호텔에 근무 할 때도 한식 주문은 100명 이상은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서양요리는 많아야 코스로 3.5.7정도의 요리가 나오고 접시도 많아야 10개 정도인데, 한식은 음식종류와 또 그릇의 수가 너무 많아 감당하기 힘이 들지요."
호텔에서 근무할 때의 난감했던 상황을 한춘섭 명장은 기억하고 있다. 한식의 잔반 문제도 심각하다. 1년에 30조원이나 잔반으로 낭비가 되는데 이 통계는 가정에서 나오는 잔반은 통계에 잡혀있지도 않다는 것이다. 이는 북한주민들 1년은 먹일 수 있는 분량이라니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제3공화국시절에는 1식 3반 캠페인을 전국적으로 시도한 적도 있었으나 한국의 정서상 얼마가지 않아 불발로 끝이 났다. 한국음식이 세계화에 한발 더 내 디디려면 여러 가지의 문제점을 개선하여 표준화 된 래시피도 나와야 하고 반찬 수도 단순화 시켜야 한다. 이제 자타가 공인하는 조리계의 큰 어른으로서, 한춘섭 명장의 어깨가 조금은 무겁다. 그를 바라보는 후학들의 초롱한 눈빛을 보며 한춘섭 명장은 또 무언가 그들에게 쥐어줄 보석 하나를 준비하고 있는 듯하다. 기자도 기대한다. 명장의 보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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