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ok&Chef 조용수 기자] 매서운 한파 속에서도 추위를 잊은 채 즐비여 진진으로 들어서는 사람들의 표정에는 음식에 대한 기대감이 가득하다.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위치한 차이니즈 레스토랑 ‘진진(津津)’은 중식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통하는 ‘왕육성’ 셰프가 운영하는 곳이다. 광화문에서 코리아나 호텔중식당 '대상해' 오너 셰프였던 그가 10년간 함께 했던 제자 황진선 셰프와 함께 오픈하여 기존 호텔에서만 먹을 수 있는 고급 전통 중식 요리를 저렴한 가격으로 만날 수 있다.
중식계의 양대 산맥 중의 하나로 불리는 왕육성 셰프가 운영하는 ‘진진(津津)’은 음식 마니아들 사이에서 굉장히 인기가 높다. ‘진진(津津)’의 진은 중국의 텐진과 한국의 양화진을 합친 말이다. 양화진은 한강 북쪽인 마포 인근의 옛 이름이다. 이는 한국과 중국이 ‘만나는 곳이자 푸짐한 음식과 사람 사는 이야기가 넘치는 공간으로 만들고자 했던 그의 배려 깊은 생각이 담겨있는 부분이다.
"중식 요리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불' 맛이에요. 하지만 정확하게 불 맛을 내는 사람들은 없지요. 가끔 매체를 통해서 그슬린 파와 야채를 보면서 '불' 맛이라고 하는 사람들을 종종 본 적이 있습니다. 사실 정확히 말하면 탄 맛이거든요. 진짜 불 맛은 불에서 나는 맛이지, 불로 태워서나는 맛이 아니에요."
불 맛은 화력과 타이밍이 조화를 이루어 향을 내야 되는 것이라, 처음 중식요리를 하는 사람들은 감히 엄두도 낼 수 없는 스킬이다. 하지만 그에게 불 맛은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 손에 익숙한 맛이었다. 그러기에 그가 우리나라 최고의 중식요리의 대가로 불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요리는 끊임없는 근면과 한 작품을 만들어낼 때마다 몰입할 수 있는 정성이 있어야 완성된다고 생각하는 ‘왕육성’ 셰프는 중식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요리지만 순간의 선택으로 음식의 맛이 달라질 수 있기에 요리를 매번 할 때마다 어려운 일이라고 전한다. 많은사람들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중식 셰프에게, 요리는 너무나 쉬운 일 중에 하나 일 거라고 당연히 생각하겠지만 아직도 그에게 있어 요리란 인생을 살아가면서 풀기 어려운 숙제라고 여기고 있다.
중식업계에 최강자가 되기까지 그는 어떤 불 맛을 내며 살았을까? 화교인 그는 중국인 부모님과 함께 한국에 터를 잡고 살면서도 어린 시절 중국문화만이 가진 중식요리를 쉽게 맛보고 만들어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중식요리가 자연스러운 그의 생활이었고, 삶이었던 그에게 요리에 대한 가장 기억에 남는 시절이 있냐고 물어 보았다. 그는 대뜸 어린 시절 마당에서 만들어 먹던 감자볶음이라는 의외의 말을 던졌다.
날씨가 유난히도 좋던 어느 날, 그의 어머니는 마당에 불을 지피고 커다란 팬에 고기와 파, 생강, 돼지기름을 넣어 향을 낸 다음 감자를 넣어서 볶았다고 한다. 바람을 타고 그 냄새가 온 동네에 퍼지자, 동네 사람들이 몰려와 무슨잔치라도 열렸냐고 묻고 했다며 미소를 지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평범한 감자볶음이 훌륭한 잔칫집 요리로 둔갑할 수 있었던 건 어머니가 만들어낸 불 맛 때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어린 시절 그에겐 꿈이 없었다.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막중한 의무감만이 가득했다. 그래서학교를 자퇴하여 여기저기를 떠돌아 다니면서 과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만 2년여 동안 생각했다. 그때 일하게 된 곳 중 하나가 친척집이 하는 중국집이었다. 어린 시절 늘 먹고 자라고, 즐겨 만들었던 요리가 평생의 직업이 될 줄은 생각도 못한 결정이었지만 중식요리라면 도전해 볼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으로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중식요리의 사부들을 찾아다니며 요리의 내공을 천천히 쌓아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배고프니깐 먹는 음식은 만들기 싫습니다. 배가 불러도 자꾸 젓가락이 가는 음식, 그런 음식이 진짜 사람들이 행복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그의 요리 철학은 아주 단호하다. 많은 사람들이 보신주의라고 하여 자기 입맛에만 맞는 음식의 맛을 찾으려고 한다. 그래서 싱겁다, 짜다, 달다 등의 말로 음식을 만들어낸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도 하지만 그는 그런 보신주의적 태도로 상대의 입맛에만 맞추는 요리가 아니라 자신만의 강한 색채를 가진 요리를 만들고 있다고 자부한다.
“사람의 입맛은 다 달라요. 최고의 맛을 내려면 핵산과 간이 동시에 올라가야 합니다. 그런데 핵산만 올리면 느끼해지고, 또 간만 더하면 사람들이 고통스러워하는 음식이 되는 거죠. 열 명에서 같이 요리를 먹으면 두세 명은 짜다고 말을 할 수도 있어요. 그럼 셰프는 흔들려서 간을 줄이죠. 그런데 문제는 진짜 먹을 줄 아는 사람은 맛이 떨어졌다고 말하는 거예요.”
손님들의 다양한 맛에 대한 요구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요리에 용기를 가지고 맛에 대한 연구로 끊임없이 달려온 지금도 변하지 않는 그의 요리 철학은, 자신만의 맛을 가지고 사람들 앞에 당당히 설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얼마 전 2년 동안 쉴 계획으로 요리를 그만 둔 적이 있어요. 하지만 정작 쉰 것은 6개월 남짓이었죠. 저랑 같이 일했던 제자들이 힘들게 요리를 하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었어요. 중국 인력이 싸게 들어오면서 후배들이 설 자리가 점점 작아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진진을 세워 후배들에게 점포를 하나씩 나눠 주고자 하는 마음으로 시작되었죠.”
그는 지금 후배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 자신이 사람들에게 받았던 사랑으로 오늘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들에 대한 감사함을 담아 ‘진진(津津)’을 통해 많은 중식을 하는 후배들에게 희망이 되길 바라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투자의 목적으로 ‘진진’을 찾아와 좋은 조건들을 걸고 협력관계를 이루려고 하지만 그는 돈보다는 ‘진진(津津)’이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자신이 사회 환원의 역할로 사용할 수 있는 사회소속 기업이 되길 바란다고 소망하고 있다.
그는 지금의 자리에서 감독의 역할로 중식요리를 저렴하게 사람들에게 먹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중식을 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줄 수 있는 곳으로 성장시키고자 했다. 요즘 요리에 대한 관심이 젊은 층으로 하여금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중식요리나 다양한 요리를 하는 셰프들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으로 ‘진진(津津)’에도 젊은 사람들이 요리를 배우기 위해 많이 찾아오고 있다. 그러나 조리사가 되고 싶어 ‘진진’의 문을 두드리고자 하는 젊은 사람들에게 그는 말했다.
“꿈만 꾸지 마세요. 일을 하지 않고 2~3개월 만에 여러분이 원하는 스타 셰프는 될 수 없어요. 적어도 10년은 고생을 해야 진짜 셰프가 될 수 있습니다. 양지만 보고 음지를 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겉으로만 보이는 화려한 불 쇼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진정한 불 맛 나는 삶이 중요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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