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 국회 인터넷의사중계시스템
[Cook&Chef = 이경엽 기자] 17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농해수위) 국정감사에서 오전 내내 실종됐던 ‘먹거리’는 오후에도 돌아오지 않았다. 침묵으로 일관했던 1차 질의에 이어, 2차 질의는 공허한 변죽만 울렸을 뿐이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와 한식진흥원 등 식품 산업의 핵심 기관장들이 증인석에 앉아 있었지만, 정책의 본질을 파고드는 심도 있는 논의 대신 행정 절차, 인사 관리, 행사 홍보에 대한 지엽적인 질타가 주를 이뤘다. 수많은 질문이 오갔지만, 국민의 밥상과 직결된 ‘식탁’의 자리는 끝내 비어있었다. 그나마 더불어민주당 임미애 의원이 유일하게 소비자와 생산자를 잇는 정책의 구조적 문제를 제기하며 고군분투했을 뿐이다.
변죽만 울린 질의, 정책의 중심은 비어있었다
오후 질의에서 의원들은 ‘식품’ 관련 기관들을 호명했지만, 그들의 질문은 정책의 핵심을 비껴갔다. 주철현 의원은 2026년 ‘여수 세계 섬 박람회’라는 대규모 국제 행사를 앞두고 한식진흥원이 구체적인 홍보 계획조차 세우지 않았다고 질책했다. 이는 타당한 지적이었으나, 섬과 바다를 중심으로 한 한식의 가치를 어떻게 세계에 알릴 것인지, 지역 식재료와 음식 문화를 어떻게 산업적으로 연결할 것인지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로 발전하지는 못했다.
문금주 의원은 한식진흥원의 인사 카드 양식에 재산, 가족 학력 등 불필요하고 차별적인 개인정보가 포함된 점을 지적했다. 이 역시 중요한 행정 개선 사안이지만, 한식 진흥이라는 기관의 본질적인 정책 방향과는 거리가 멀었다.
aT를 향한 질의도 마찬가지였다. 강명구 의원은 5억 원의 예산을 들인 공공 배달앱 포털 사이트의 월간 조회 수가 15만 회에서 2만 회로 급감한 사실을 지적하며 예산 낭비와 사업 부실을 따졌다. 하지만 질의는 플랫폼의 기술적 문제와 예산 집행에 머물렀을 뿐, 배달앱 생태계에서 소상공인과 소비자가 겪는 근본적인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정책 대안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송옥주 의원이 제기한 '식품 가공 원료 매입 융자 사업' 역시 신규 기업 참여가 80%에서 7%로 급감한 운영상의 문제를 점검하는 수준에 그쳤다. 결국 이날 국감은 ‘먹거리 정책’이라는 이름 아래 행정과 예산, 홍보라는 껍데기만 맴돈 반쪽짜리 감사였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유일하게 ‘식탁’을 겨냥한 날카로운 지적
이러한 공허함 속에서 유일하게 정책의 본질을 겨냥한 것은 임미애 의원이었다. 그는 감사원 보고서를 근거로, 소비자 물가 안정을 위한 ‘농축산물 할인 지원 사업’이 대형 유통업체들의 ‘꼼수 인상’으로 인해 정작 소비자가 아닌 유통업체의 배만 불리는 수단으로 전락했다고 질타했다. 정부 지원금이 투입되기 직전에 가격을 올리는 행태를 농식품부와 aT가 인지하고도 자금 회수나 페널티 부과 없이 방치한 것은 심각한 정책 실패라는 것이다.
나아가 임 의원은 K-푸드 열풍의 이면을 파고들었다. 미국으로 수출되는 즉석밥이 K-푸드 수출의 효자 품목이지만, 정작 그 원료는 국산 쌀이 아닌 전량 미국산 쌀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가공업체가 국내와 다른 미국의 농약 잔류 허용 기준(PLS) 때문에 국산 쌀을 쓸 수 없다고 밝힌 점을 지적하며, 그는 “K-푸드를 외치는데 정작 대표 수출 품목에 국내산 원료가 사용되지 않는 것은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라 농식품부, aT, 농진청의 책임이 크다”고 비판했다. 이는 K-푸드 홍보라는 성과 뒤에 가려진 국내 농업과의 단절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정면으로 지적한 것이었다.
밭에서 식탁으로, ‘먹거리’를 정책의 주어로
오전의 침묵이 무관심의 표현이었다면, 오후의 공허함은 정책적 깊이의 부재를 드러냈다. 결국 오늘 열린 국정감사는 우리 농식품 정책의 좌표가 여전히 생산자인 ‘밭’에만 머물러 있으며, 최종 목적지인 소비자의 ‘식탁’에 닿지 못하고 있음을 명확히 보여주었다. 정책의 목표는 ‘농업’에 있고, 그 결과 ‘식품’은 매번 부속 항목으로만 다뤄진다.
국민의 밥상은 유통비용, 원료의 출처, 소비자 가격, 셰프의 재료 선택이 복잡하게 얽힌 정책의 최종 결과물이다. 이 연결고리를 이해하고 정책의 시스템을 점검하는 것이야말로 국정감사의 본질이다. 하지만 이번 국감에서 그 본질을 짚어낸 의원은 단 한 명뿐이었다.
‘한식의 세계화’라는 구호보다 ‘한국 식탁의 복원’이라는 실질적인 정책 논의가 절실한 이유다. 국감의 시선이 밭을 넘어 식탁에 닿을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먹거리 정책’은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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