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ok&Chef = 이경엽 기자] 외식업계는 지금 '레시피 전쟁' 중이다. 방송에 소개된 메뉴가 다음 날 프랜차이즈의 신메뉴로 둔갑하고, SNS에서 인기를 끈 시그니처 메뉴가 버젓이 '미투(Me-too)' 제품으로 출시된다. '덮죽' 사태부터 '로제 떡볶이' 원조 논란까지, 셰프들은 자신이 피땀 흘려 개발한 창작물이 도용되는 것을 보며 속앓이만 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법적 보호를 받자니 "레시피는 아이디어라 보호받기 어렵다"는 말만 돌아온다. 이처럼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요리 창작물'의 지적재산권 문제를 정면으로 파고든 법률 전문가가 있다.
특허법인 미담의 임병웅 변리사는 2000년부터 변리사로 활동하며 이 문제에 천착, '음식 레시피 보호'를 주제로 지난 2022년 박사 학위까지 받았다. 최근 그는 김성민 농식품융합연구원 원장과 함께 그간의 연구를 집대성한 책 <음식 레시피, 보호와 공유에 관한 이야기>를 펴냈다.
조리사와 미식 소비자들을 위해, 쿡앤셰프(Cook&Chef)가 '음식 레시피에 빠진 변리사' 임병웅 대표를 만나 셰프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질문들을 던졌다.
한식 세계화의 꿈, '레시피 보호'에서 길을 찾다
Q. 셰프들에게 '레시피 전문 변리사'라는 타이틀이 생소할 것 같습니다. 20년 넘게 특허 업무를 해오신 변리사로서, 어쩌다 '음식 레시피'라는 까다로운 주제에 빠지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A. 2000년도부터 변리사 생활을 했습니다. 오랫동안 특허 업무를 하던 중, 우연한 기회에 김성민 원장님(당시 농식품부 식품산업정책관)을 만나 한식 세계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의 한식을 좀 더 잘 보호하는 체계가 갖춰진다면, 세계화에 더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 길로 이 주제에 빠져들어 1년에 몇 번씩 토론을 거듭했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2022년 박사 학위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막상 연구를 끝내고 보니 이 귀한 내용이 논문으로만 묻히는 것이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현장에 계신 분들, 즉 조리학도나 셰프님들을 위해 이 내용을 좀 더 쉬운 언어로 공유하고자 책을 발간하게 되었습니다.
Q. 현장에서는 "레시피는 법적 보호가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팽배합니다. 셰프들이 좌절하는 지점이죠. 정말 요리 창작물은 법으로 보호하기 어려운가요?
A.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닙니다. 법률가들도 요리, 패션, 마술 업계는 특이한 분야로 봅니다. 이 분야들은 지적재산권(IP) 보호 수준이 매우 낮은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혁신은 매우 활발하게 일어나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를 '낮은 수준의 지재권 균형(Low-IP Equilibrium)'이라고 부릅니다.
이유는 이들 업계가 엄격한 법률 대신 그들만의 '공동체 규범(Community Norms)'에 의존해왔기 때문입니다. 가령 프랑스의 미슐랭 스타 셰프들은 '남의 레시피를 그대로 베끼지 않는다', '원작자를 반드시 표기한다'는 식의 암묵적인 규범을 철저히 지킵니다.
문제는 우리나라 외식업계는 이런 공동체 규범이 상대적으로 약한 편이라는 점입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요리 로봇이나 AI 같은 첨단 기술과 외식업이 융합되고 있습니다. 기술 산업은 IP 보호가 매우 강한데, 요리 업계는 약하다 보니 이 둘이 충돌하면서 문제가 터져 나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법의 울타리를 넘지 못하는 4가지 이유
Q. 법적으로 파고들었을 때, 레시피 보호를 가로막는 근본적인 장애물은 무엇인가요? 책에서 4가지 특성을 지적하셨습니다.
A. 요리 창작물이 왜 법의 울타리 안에 쉽게 들어오지 못하는지, 4가지 특징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첫째, 전통성(傳統性)입니다. 레시피는 수천 년간 인류의 공동자산으로 이어져 왔습니다. 대부분의 요리가 '전통 지식'이라는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선 셈이죠. 이러다 보니 "어디까지가 당신의 고유한 창작물이냐"를 증명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둘째, 창작성(創作性)의 문제입니다. 법에는 '기능성의 원리'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는 기능적인 부분(예: 요리 방법, 절차)은 오로지 특허권으로만 보호하고, 저작권이나 디자인권, 상표권으로는 보호하지 않는다는 원칙입니다. 셰프님들의 레시피는 대부분 이 '기능적 저작물'에 해당하기 때문에, 특허라는 가장 높은 장벽을 넘어야만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셋째, 정형성(定型性)입니다. 지적재산이 되려면 그 대상이 객관적으로 명확하게 특정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요리의 핵심인 '맛'이나 '향'은 지극히 주관적입니다. 최근 유럽사법재판소(ECJ)에서도 치즈 맛은 저작권 보호대상이 아니라고 판결했는데, "맛은 객관적이고 정밀하게 식별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넷째, 재현성(再現性)입니다. 레시피는 창작자의 의도대로 제3자가 동일하게 구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소금 한 꼬집", "약불에 30분" 같은 정성적(定性的)인 표기로는 재현이 불가능합니다. 이건 레시피라기보다 창작자 본인을 위한 '메모'에 가깝죠.
Q. 셰프들이 가장 많이 의지하는 것이 '영업비밀(營業祕密)'입니다. "며느리도 모른다"는 식의 '손맛'이나 '비법 소스' 같은 것들 말입니다. 이마저도 법적으로는 한계가 명확하다고요.
A. 맞습니다. 대부분의 셰프님들이 "이건 우리 가게의 영업비밀"이라고 생각하지만, 법적인 보호를 받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영업비밀이 되려면 3가지 요건(비공지성, 경제적 유용성, 비밀관리성)을 충족해야 합니다. 앞의 두 가지는 그렇다 쳐도, 대부분 '비밀관리성'에서 실패합니다.
직원들에게 비밀유지 서약서를 받거나, 레시피에 '대외비' 표시를 하고 별도 관리하는 등의 객관적인 노력을 해야 하는데, 이직률이 높은 외식업계 현실상 이를 지키는 곳이 거의 없습니다.
더 큰 문제는 설사 영업비밀로 인정받아도, '역설계(Reverse Engineering)'는 합법이라는 점입니다. 즉, 누군가 셰프님의 요리를 먹어보고 그 맛을 흉내 내어 비슷한 제품을 만들어도, 그것 자체를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최근 '로제 떡볶이' 원조 논란(떡군이네 vs 배떡)이 대표적입니다. 법원은 "로제 떡볶이 레시피는 이미 인터넷 등에 알려져 있고, 배합 비율의 차이만 있을 뿐 대동소이하다"며 영업비밀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믿었던 '특허'의 함정과 '디자인'의 조건
Q. 그렇다면 큰마음을 먹고 '특허(特許)'를 받으면 안전합니까? 내 레시피를 '제조 방법'으로 특허 등록하는 겁니다.
A. 특허는 분명 강력한 권리지만, '만능 방패'는 아닙니다. 오히려 특허의 맹점 때문에 피해를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치킨 업계의 유명한 사례가 있습니다. 네네치킨은 2014년 '스노윙 치즈 치킨' 조리 방법을 특허로 출원해 2017년에 등록받았습니다. 그런데 2014년 11월 BHC가 '뿌링클 치킨'을 출시하자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했죠.
결과는 네네치킨의 패소였습니다. 네네치킨의 특허는 총 7단계(계육절단-베터딥-브레딩-후라잉-분말혼합-열풍공급-오븐가열)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BHC는 '브레딩', '열풍공급', '오븐가열' 3단계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법원은 BHC가 특허의 구성요소 일부를 삭제했기 때문에 침해가 아니라고 판결했습니다.
이것이 특허의 함정입니다. 특허를 받기 위해 공정을 상세하고 복잡하게 쓸수록 등록은 쉬워지지만, 그중 하나라도 빼고 실시하면 침해를 피할 수 있게 되어 권리범위는 좁아집니다.
Q. 레시피 자체가 어렵다면, 요리의 '모양'이나 '플레이팅' 같은 '트레이드 드레스(Trade Dress)'는 어떻습니까? 셰프의 시그니처가 담긴 부분인데요.
A. '트레이드 드레스'는 상품의 총체적인 외관이나 이미지를 말하며, 상표법이나 부정경쟁방지법으로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두 가지 큰 장벽을 넘어야 합니다. '기능성'과 '식별력'입니다.
첫째, 기능성의 원리입니다. 만약 그 모양이 어떤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라면 독점권을 주지 않습니다. 일본 글리코사의 '포키'와 롯데의 '빼빼로' 분쟁이 유명하죠. 미국 법원은 포키의 "손잡이 부분에 초콜릿을 묻히지 않은 모양"은 손에 묻지 않게 하는 '기능'이므로 트레이드 드레스로 보호할 수 없다고 판결했습니다.
둘째, 식별력(識別力)입니다. 소비자들이 그 '모양' 자체를 보고 "아, 이건 그 가게 제품!"이라고 떠올릴 수 있어야 합니다. '빙그레 바나나맛 우유'는 30년 이상 일관되게 그 '단지 모양' 용기를 사용한 결과, 용기 자체가 출처 표시 기능(주지성)을 획득했다고 인정받았습니다. 반면 '설빙'이 '멜론빙수'의 외형을 입체상표로 출원한 것은 거절당했습니다. 법원은 소비자들이 그 '모양'이 아니라 '설빙'이라는 '브랜드'를 보고 제품을 식별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아이디어'가 아닌 '표현'을 보호하라
Q. 책이나 유튜브에 공개된 레시피를 그대로 베껴서 사용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저작권(著作權)' 침해로 걸 수는 없나요?
A. 셰프님들이 가장 많이 오해하시는 부분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레시피 자체(재료 목록, 조리 순서)는 저작권 보호대상이 아닙니다.
저작권은 '아이디어'가 아닌 '표현'을 보호합니다. 레시피는 요리를 만들기 위한 '아이디어', '절차', '공정'으로 취급됩니다. 그렇다면 저작권은 무엇을 보호할까요? 그 레시피를 설명하는 창작적인 '문장 표현'입니다. 예를 들어, "양파를 볶는다"는 보호받지 못하지만, "갈색빛 캐러멜이 노을처럼 번질 때까지 양파를 천천히 달래가며 볶아낸다"와 같은 문학적 표현은 어문저작물이 될 수 있습니다.
요리책의 경우, 그 안에 담긴 레시피가 아니라 '레시피의 선택이나 배열'이 독창적일 때 '편집저작물'로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가열 겸용 믹서기 레시피북 사건에서처럼, 기능별(주스, 죽, 스프 등)로 분류하는 것은 흔한 방식이라 창작성이 없다고 판단한 사례가 있습니다.
Q. 법의 문턱이 이렇게 높으니, '덮죽' 사태처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공중 재판'을 여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A. 그 심정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여론 재판'은 매우 위험하고 잘못된 방식입니다. 이는 감정에 호소하는 방식이며, 사실관계가 명확히 밝혀지기도 전에 한쪽을 매도할 수 있습니다. 과거 맹기용 셰프가 '오시지' 레시피 표절 의혹을 받았지만, 나중에 유명 블로거가 "엄연히 다른 레시피"라고 밝혔음에도 이미 여론 재판으로 큰 상처를 입은 뒤였습니다. 이런 방식은 지양해야 합니다.
악순환을 끊을 '새로운 규범'을 위하여
Q. 법도, 규범도, 여론도 완벽한 답이 아니라면, 셰프들과 외식업계는 대체 무엇을 해야 합니까?
A. 저는 '선순환 구조(Virtuous Cycle)'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합니다. 지금은 보호가 약하니 혁신 의욕이 꺾이고, 레스토랑 가치가 떨어지며, IP를 더 경시하는 '악순환'에 빠져있습니다.
이 고리를 끊기 위해 두 가지가 동시에 필요합니다.
첫째, '새로운 사회적 규범'의 확립입니다. 법적 제재 이전에 우리 스스로 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 첫걸음은 아주 간단합니다. "출처를 정확히 표시하는 것"입니다. "이 메뉴는 OOO 셰프에게 영감을 받았다"고 밝히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오히려 동료를 존중하고 자신의 창의성에 자신감을 표하는 당당한 문화가 되어야 합니다.
둘째, '현명한 법적 보호'입니다. 법에 한계가 있다고 포기할 것이 아니라, 지금 있는 제도라도 제대로 활용해야 합니다. 최소한 직원들과 '비밀유지 계약'이라도 체결하여 '비밀관리성' 요건을 갖추고, 상표권이나 디자인권을 적극적으로 확보해야 합니다. '해운대 암소 갈비집'의 경우, 55년간 쌓아온 명성을 바탕으로 '사용에 의한 식별력'을 인정받아 '해운대'라는 지리적 명칭이 들어갔음에도 상표 등록에 성공했습니다.
레시피를 보호하는 것은 단순히 한 사람의 이익을 지키는 것을 넘어, 외식 산업 전체의 혁신 동력을 지키고 레스토랑의 사업적 가치를 높이는 일입니다. 셰프님들의 창작물이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고 보호받을 때, 우리 한식의 수준도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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