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ok&Chef = 이경엽 기자] “중식의 심장은 웍질이다.” 이 단순한 깨달음은 서정희 제8대 대한민국 조리명장의 출발점이었다. 그러나 그의 여정은 불맛에만 머물지 않았다. 기술은 철학으로, 철학은 사회적 실천으로 이어졌다.
경남 하동 평사리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모두가 선망하던 조선소의 안정된 미래를 스스로 등지고 기름내 자욱한 주방을 택했던 청년. 배달 음식의 문법을 뒤바꾼 혁신적인 사업가로 큰 성공을 거둔 뒤에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그의 여정은 개인의 성공을 넘어 요리의 본질을 탐구하고, 그 가치를 사회와 나누려는 더 큰 길로 향하고 있었다.
그의 삶은 끊임없이 궤도를 바꾸며 확장해왔지만, 그 중심에는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은 축이 있었다. 바로 ‘요리’라는 본질이다. 웍(Wok)과 함께 시작된 그의 인생은 이제 불과 재료를 잇는 예술가, 그리고 요리로 사회를 품으려는 실천가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서 있다.
웍질과 불감각, 요리의 본질
중식의 심장은 단연 웍이다. 시뻘겋게 달궈진 웍 위에서 불과 기름, 식재료가 격렬하게 맞부딪히며 내는 소리와 향은 중식 요리의 모든 것을 압축한다. 하지만 서정희 명장에게 웍질은 단순한 조리 기술이 아니다. 그는 “웍질의 핵심은 ‘불감각’에 있다”고 단언한다.
“불감각이란, 요리를 시작하기 전 웍을 충분히 달구어 그 열기를 온전히 이해하는 감각을 뜻합니다. 웍이 제대로 달궈지지 않은 상태에서 재료를 넣으면 결코 깊은 맛을 낼 수 없어요. 충분히 예열된 웍에 재료를 넣고 돌리는 순간, 불길이 웍의 표면을 타고 오르며 재료에 자연스럽게 스며듭니다. 이것이 진짜 ‘불맛’이죠.”
그는 이 ‘불감각’을 요리사의 혼이 담긴 철학의 경지로 설명한다. 최근 유행처럼 번진 토치를 이용해 인위적으로 불향을 입히는 것은 그저 재료의 겉면을 ‘태우는’ 행위에 불과하다고 선을 긋는다.
웍과 불의 교감을 통해 재료 본연의 맛을 최대한 끌어내는 장인의 감각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그에게 요리란 단순히 배를 채우기 위한 음식을 만드는 노동이 아니다. 그것은 재료가 불을 만나 새로운 생명을 얻는 창조의 순간을 포착하는 예술 행위에 가깝다.
특허 4건, 요리를 지식과 제도로 남기다
서정희 명장의 도전은 주방의 뜨거운 불길을 넘어, 차가운 제도의 영역으로 향했다. 그는 손끝에서 피어나는 요리가 단지 한 끼 식사로 사라지는 것을 넘어, 객관적인 기록과 권리로 남아야 한다고 믿었다. 그 믿음을 행동으로 옮게 한 것은 쓰라린 경험 때문이었다.
“1998년부터 중국 본토를 오가며 연구한 끝에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팔보오리탕’을 개발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다른 식당에서 이 메뉴를 마치 자신들이 원조인 것처럼 판매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죠. 그때 결심했습니다. ‘손맛’이라는 주관적인 영역에만 머물지 않고, 요리를 기록과 제도로 남겨야겠다고요.”
그는 곧바로 특허 출원을 준비했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당시만 해도 음식에 대한 특허 개념이 생소했던 터라, 특허청으로부터 “요리는 특허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답변과 함께 거절당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2년여에 걸친 끈질긴 도전 끝에, 그는 마침내 요리 특허 등록에 성공했다. 이는 대한민국 요리계에 새로운 길을 연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이후 그는 팔보오리탕, 새우녹즙면말이칠리, 참마튀김, 전복장어까지 총 네 건의 특허를 확보했다. 이 네 건의 특허는 단순히 자신의 기술을 보호하는 것을 넘어, 요리가 한 사람의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노력이 담긴 ‘지식재산’임을 사회적으로 공인받은 쾌거였다. 그의 집념은 요리사의 위상을 불 앞의 장인에서, 새로운 지식과 제도를 창안하는 전문가로 격상시켰다. 요리의 사회적 신뢰와 학문적 가치를 한 단계 끌어올린 의미 있는 전환점이었다.

상요리, 더 많은 사람에게 더 다양한 음식을
1991년, 스물여섯의 청년 서정희는 ‘아방궁’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첫 가게를 열었다. 그의 등장은 당시 획일적이던 중식 배달 시장에 혁신의 바람을 몰고 왔다. 당시 배달 전문점들은 화구가 두세 개뿐이라 점심시간에는 짜장면, 짬뽕 같은 식사 메뉴 외에 다른 요리를 내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는 요리 전문점의 시스템을 과감히 도입했다.
“배달집이지만 요리 전문점처럼 만들고 싶었습니다. 주방에 화구를 넉넉히 설치해, 바쁜 시간에도 탕수육이나 팔보채 같은 요리 메뉴를 신속하게 낼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죠.”
그의 혁신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상요리’라는 이름으로 코스 요리를 통째로 배달하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시도를 했다. 집들이, 회식, 각종 모임 등 특별한 날을 위한 맞춤형 상차림은 시장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남들은 짜장, 짬뽕, 팔보채만 팔았지만, 저는 코스 요리를 배달했습니다. 15만 원, 30만 원, 심지어 50만 원짜리 상요리를 하루에도 서너 상씩 내보냈어요. 하루 15만 원만 팔아도 잘된다는 시절이었죠.”
그의 ‘상요리’는 단순히 여러 음식을 묶어 파는 상품이 아니었다. 그것은 요리를 통해 사람들이 함께 모여 즐거움을 나누는 ‘공동체의 경험’을 배달하는 것이었다. 한 그릇을 넘어, 함께 나누는 상차림이 요리의 진짜 힘을 보여준 셈이다. 그의 사업적 성공은 결국, 요리의 본질적 가치를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다는 요리사로서의 순수한 열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였다.
명장이 되는 길, 제도 안에서 인정받다
2000년대 초, 배달 사업으로 큰 성공을 거둔 그는 돌연 배달을 접고 고급 중식당으로의 전환을 선언했다. 이는 단순한 사업적 변화가 아니었다. 성공한 사업가를 넘어, 요리사로서의 정체성을 제도 안에서 공인받고 ‘서정희’라는 브랜드를 굳건히 세우기 위한 새로운 도전의 시작이었다. 그 첫 관문은 ‘조리기능장’ 시험이었다.
“지금은 공개문제가 나오지만 그때는 안 나왔어요. 수소문해 보니 한식 중 국물요리에서 시험이 나온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서점에서 책을 100만 원어치 샀어요. 아내가 ‘책 장사하려고 이렇게 많이 사 오냐’고 할 정도였죠. 학원에 갈 시간도 없고 업장이 바쁘다 보니, 그래서 저도 기능장을 독학으로 준비했어요.”
그는 첫 도전에서 당당히 합격했다. 이 경험은 그에게 요리에 대한 특별한 재능과 확신을 심어주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저는 다른 공부는 잘 안되는데, 요리만큼은 머릿속에 그림이 선명하게 그려졌습니다. ‘내가 요리에서는 정말 깨어 있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죠.”
이후 그의 학구열은 더욱 불타올랐다. 영산대학교에 입학해 학부와 대학원 과정을 거쳐 박사 학위까지 취득하며 실무 경험에 이론적 깊이를 더했다. 실무에서 출발해 학문과 제도로 자신의 세계를 단단히 쌓아 올린 그의 여정은 2012년, 마침내 대한민국 제8대 조리명장 선정이라는 결실을 보았다.
중식 분야 최초이자 당시 최연소 명장이라는 영예로운 기록이었다. 그의 성취는 개인의 성공을 넘어, 한 요리사의 치열한 노력이 사회적 제도를 통해 어떻게 공인받고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가 되었다.
요리홍익인간, 요리를 통한 사회적 실천
명장이라는 최고의 영예에 오른 후, 서정희 명장의 철학은 마침내 ‘요리홍익인간(料理弘益人間)’이라는 개념으로 집대성된다. 단군 신화의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는 홍익인간 사상을 요리로 확장해, 요리를 통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겠다는 그의 궁극적인 비전이다.
그가 제안하는 대표적인 프로젝트는 ‘노무라입깃해파리 식용화’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개체 수가 급증한 노무라입깃해파리는 어민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주는 생태계 교란종이다. 매년 막대한 예산이 퇴치 작업에 투입되고 있다.
“역발상이 필요합니다. 골칫덩어리 해파리를 미래의 식량 자원으로 활용하는 겁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식용 해파리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이 해파리를 잡아 가공 기술을 개발하고 산업화한다면, 수입 대체 효과는 물론 새로운 먹거리 산업을 창출할 수 있습니다. 해파리는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훌륭하고요.”
그의 ‘요리홍익인간’ 철학은 요리가 개인의 성공을 넘어, 사회 전체를 건강하게 만드는 공공재가 되어야 한다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해파리 식용화 제안은 그의 요리사로서의 통찰력이 어떻게 지속 가능한 사회 문제 해결에 기여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구체적인 청사진이다.
불 앞에서 세상을 향하다
하동 평사리의 가난한 소년으로 출발해, 조선소의 보장된 미래(월급 28만 원)를 버리고 중식 주방의 불확실한 가능성(월급 4만 원)을 택했던 청년. 배달 상요리의 혁신을 거쳐 명장과 교육자로, 그리고 이제는 사회적 실천가로 서 있는 서정희 명장.
그의 손에 들린 웍은 더 이상 단순한 조리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불과 재료를 잇는 예술의 도구이자, 손맛을 제도로 기록한 지식의 상징이며, 마침내 더 건강한 사회를 여는 철학의 열쇠가 되었다.
“처음엔 성공을 위해 요리를 시작했지만, 이제는 요리로 세상을 바꾸고 싶습니다.” 뜨거운 불길 앞에서 터져 나온 그의 고백은, 웍질에서 시작해 사회로 확장된 그의 ‘요리 인생’이 도달한 최종 결론이었다. 그리고 그 결론은, 우리에게 요리의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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