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ok&Chef = 이경엽 기자] 지난 4일, 국회는 ‘양곡관리법’과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이하 농안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로써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국회에서부터 추진해온 ‘농업 민생 4법’이 마침내 완성되었다. 그간 윤석열 정부의 거부권 행사로 수차례 좌절된 바 있는 이 개정안이 통과되자, 정치권에서는 ‘식량주권을 지키는 역사적 성과’라는 찬사가 이어졌다.
어기구 의원은 “사전 수급관리와 가격 안정 장치를 통해 농어민의 생존권을 확보하고, 소비자에겐 예측 가능한 가격의 먹거리를 제공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됐다”고 자평했다. 문금주 의원은 “이번 개정은 대한민국 농정의 방향과 틀을 근본적으로 재정립한 제도 개혁의 분기점”이라고 평가했다.
정말 이 법은 식탁 물가까지 안정시킬 수 있을까? 외식업자와 소비자가 체감할 수 있을까? 농민을 넘어, 국민 전체의 식생활과 음식문화까지 포괄하는 정책인가?
재배면적 조절과 정부 의무 매입, 유통 전략은 빠졌다
양곡법 개정안의 핵심은 쌀 과잉 생산을 사전 차단하고, 불가피한 과잉 발생 시 정부가 책임지고 대응하도록 한 것이다. 정부는 벼 재배 면적과 논 타작물 목표 면적을 사전 계획하고, 생산자단체가 참여하는 ‘양곡수급관리위원회’를 통해 의무적인 대책을 시행하도록 했다.
어기구 의원은 이 조치를 통해 “작황 양호 등 불가피한 수급 불안 발생 시 정부가 과잉 물량을 의무 매입하도록 했다”고 강조했다. 문금주 의원 역시 “정부가 시장격리나 공공비축미 매입 등 수급조절 조치를 시행하도록 의무화했다”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그러나 논 타작물 전환이 단지 농가의 재배방식을 바꾸는 데서 그친다면, 이 법은 생산단계에서만 순환될 뿐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전환 작물이 소비자의 장바구니와 외식 현장에 실질적으로 안착할 수 있는 유통 전략이 병행되지 않는다면 정책의 실효성은 반감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이번 개정안은 타작물 전환 이후의 유통, 소비, 조리 활용에 대한 구체적 설계를 담고 있지 않다.
식탁에 어떤 음식이 오를 것인가? 소비자 관점이 빠졌다
농식품부는 이번 양곡법 개정으로 “수급 안정에 소요되는 예산 또한 절감될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그 예산이 어느 품목에 어떻게 쓰이고, 어떤 소비자 가치로 이어질지는 불투명하다.
윤준병 의원은 “양곡법은 농림축산식품부장관이 논 타작물 재배면적을 관리하도록 명문화했으며, 초과 생산 시 수급안정 대책에 따라 정부가 미곡을 매입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가 어느 품목을 유도하고, 그 품목이 실제 식탁에서 소비될 수 있도록 어떤 지원을 하겠다는 방안은 부재하다. 논에서 타작물로 전환된 콩, 조, 귀리, 두류 등의 소비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생산조절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가격안정제, 기준가격부터 불안하다
농안법 개정안의 핵심은 ‘농산물가격안정제도’ 도입이다. 정부는 시장가격이 기준가격보다 낮을 경우, 생산자에게 차액을 일부 또는 전부 보전하게 된다. 윤준병 의원은 이를 “쌀값 폭락과 수급 불안정에 따른 농민 피해를 해소하기 위한 기본 안정망”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진보당 전종덕 의원은 이 제도에 대해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국회 본회의에서 “기준가격 산정 시 ‘평년가격’이 삭제되고 ‘생산비용’ 중심으로 후퇴해 농가 소득보장의 실효성이 낮아졌다”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정부 용역보고서에 따르면, 양파의 경우 15년간 생산비가 시장가격보다 높은 해가 단 한 번도 없었다”며, 이 구조로는 가격안정제가 “유명무실”하다고 일갈했다.
기준가격의 오류는 농민뿐 아니라 소비자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가격안정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시장가격의 급변동은 소비자 물가에 그대로 반영되기 때문이다. 이에 일부 전문가들은 기준가격 산정 방식이 생산자만이 아니라 유통시장과 소비자 물가까지 함께 반영해야 한다고 본다.
결정은 생산자 단체 중심… 유통·소비자 목소리는 빠졌다
개정된 양곡법과 농안법은 각각 ‘양곡수급관리위원회’와 ‘농산물가격안정심의위원회’를 운영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위원회의 구성과 운영 방식을 규정한 하위 법령은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윤준병 의원은 “해당 위원회는 생산비용과 수급 상황을 고려해 기준가격을 심의한다”고 밝혔지만, 위원회 구성에 유통 전문가, 소비자 단체, 외식업계 관계자가 포함될지는 불확실하다. 현장 중심의 수급 정책이라면 유통과 소비를 모두 아우르는 다부문 협의체 구성이 선행되어야 한다. 농업 정책이 생산자 중심에서 벗어나, 유통-외식-소비자까지 확장된 ‘먹거리 생태계 전체를 위한 정책’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생산자만이 아니라 식탁까지 가야 한다
정치권은 이번 개정안을 두고 “농업 민생을 위한 완성형 입법”이라 평가했다. 실제로 양곡법과 농안법은 오랜 논쟁 끝에 제도화된 성과다. 그러나 법은 통과됐지만, 식탁은 아직 바뀌지 않았다.
정부가 “작물을 바꾸고 면적을 줄이라”고 요구하려면, 그 작물이 유통되고 조리되고 소비될 수 있는 구조를 함께 제시해야 한다. 논밭에서 시작된 농정이 시장과 주방, 소비자 테이블까지 도달해야 비로소 온전한 정책이 된다.
양곡법과 농안법은 ‘국가책임농정’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책임은 생산자를 넘어 국민 모두의 식생활을 안정시키는 데까지 확장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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