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동 비빔밥(사진=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제작된 이미지입니다)
[Cook&Chef = 이지헌 전문기자] 겨울이 끝날 즈음, 시장에 가면 낯익으면서도 조금은 다른 배추가 보인다. 속이 단단히 차지 않고 잎이 바닥으로 납작하게 퍼져있는 배추, 바로 봄동이다. 봄동은 땅바닥에 바짝 붙어 자라는데, 추운 날씨를 지나며 속이 단단히 들지 못해 잎이 옆으로 퍼진 반결구 형태를 갖는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덜 자란 배추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한국 식탁에서는 이 채소가 오히려 봄의 시작을 알리는 별미로 여겨진다.
봄동을 씻어 겉절이를 만들거나 밥 위에 올려 비벼 먹는 풍경은 늦겨울 식탁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모습이다. 그래서 봄동 비빔밥은 계절이 바뀌는 순간을 보여주는 한 그릇이 된다.
실패한 배추에서 시작되다
우리가 흔히 먹는 겨울 배추는 속이 단단히 찬 결구 배추이다. 가을에 심어 겨울 동안 자라면서 잎이 안쪽으로 말리고 중심부가 단단하게 채워진다. 하지만 모든 배추가 그렇게 자라는 것은 아니다. 겨울의 추위와 토양 상태, 생육 환경 등의 영향으로 속이 충분히 차지 못하고 잎이 벌어진 채 자라는 배추도 생긴다.
이처럼 속이 형성되지 않은 배추를 농업에서는 ‘불결구 배추’라고 부른다. 봄동은 바로 이러한 형태의 배추에서 시작되었다. 농사의 기준에서 보면 크기가 작고 모양이 일정하지 않아 상품성이 떨어지는 배추였지만, 식탁에서는 오히려 다른 매력을 가진 채소로 받아들여졌다.
일반 배추보다 잎이 얇고 부드러워 생으로 먹기 좋고, 겨울 추위를 겪으면서 단맛이 강해진다. 농사의 기준에서는 완벽하지 않은 채소였지만, 식탁에서는 봄을 알리는 별미가 된 셈이다. 이런 이유로 지금은 오히려 봄동을 따로 재배해 봄철 채소로 판매하기도 한다.
배추와 닮았지만 다른 채소, 봄동
봄동은 배추와 같은 십자화과 채소이지만, 식감과 맛에서 분명한 차이가 있다. 봄동은 조직 사이에 수분이 많아 아삭한 일반 배추와 달리 가볍고 연한 식감을 준다. 이런 특성 때문에 김치로 오래 숙성하기 보다는 겉절이나 무침처럼 신선한 상태로 먹는 방식이 더 잘 어울린다.
영양 성분에서도 겨울 채소 특유의 특징이 나타난다. 봄동은 일반 배추보다 베타카로틴과 칼슘 함량이 2~5배 높고, 비타민 C와 식이섬유도 많이 풍부하다. 특히 낮은 온도에서 자라면서 당분이 축적되는 특성이 있어 단맛이 더 강하게 느껴지는데, 이는 차가운 기온을 견디며 겨울을 나는 채소들이 당도를 높여 세포를 보호하는 자연스러운 생리 반응 때문이다.
봄동 비빔밥이라는 계절의 음식
봄동의 가장 큰 특징은 계절성이다. 보통 늦겨울에서 초봄 사이, 길어야 두세 달 정도만 시장에서 만날 수 있다. 겨울 내내 김치나 저장 채소 위주로 이어지던 식탁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신선한 푸른 채소이기도 하다. 그래서 봄동은 단순한 채소라기보다 계절의 변화를 알려주는 신호처럼 받아들여진다. 겨울과 봄의 시작을 연결하는 채소이자, 식탁에서 계절의 변화를 가장 먼저 보여주는 재료인 것이다.
봄동 비빔밥은 이런 계절적 특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음식이다. 겨울을 지나 단맛이 오른 채소와 따뜻한 밥이 한 그릇에 모이는 모습은 봄 식탁의 전형적인 풍경이기도 하다. 봄동의 부드러운 잎을 살짝 무쳐 밥 위에 올리고, 참기름이나 고추장을 조금 더해 비비면 모두에게 익숙한 봄동 비빔밥 한 그릇이 완성된다.
비빔밥은 다양한 재료를 한 그릇에 모아 먹는 음식이지만, 그 안에 올라가는 채소는 계절에 따라 달라진다. 봄에는 봄나물이 올라가고, 여름에는 채소가 더 다양해지며, 가을과 겨울에는 또 다른 재료가 더해진다. 그중에서도 봄동 비빔밥은 겨울과 봄 사이의 시간을 가장 잘 보여주는 비빔밥이다.
봄동 비빔밥 만드는 방법
- 봄동은 뒤집어 꼭지 부분에 사각형 모양으로 칼집을 넣어 꼭지를 제거한다.
- 잎을 모아 3cm 정도 간격으로 썬다.
- 찬물에 여러 번 헹궈 씻은 후 물기를 뺀다.
- 고춧가루, 설탕, 진간장, 다진 마늘, 액젓, 식초, 참기름, 깨를 섞어 양념장을 만든다.
- 봄동에 양념장을 넣고 무친다.
- 계란후라이를 만든다.
- 밥 위에 봄동무침과 계란후라이를 올린 후 비빈다.
속이 꽉 차지 못한 배추로 시작한 채소가 밥 위에 올라가 계절을 알리는 음식이 되는 과정은, 자연의 변화가 식문화로 이어지는 한 가지 방식이기도 하다. 겨울 끝자락의 식탁에서 봄동을 밥과 함께 비비는 순간, 우리는 자연스럽게 계절이 바뀌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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