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지 생성: ChatGPT (OpenAI) 제공 / Cook&Chef 제작
왜 에드워드 리인가
오는 28일 경주 호텔 라한셀렉트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 환영 만찬의 총괄 셰프로 에드워드 리(Edward Lee) 가 낙점됐다. 이번 만찬은 21개 회원국 정상과 글로벌 기업인 등 200여 명이 참석하는 초대형 외교 무대다. 조리팀은 라한호텔과 서울 롯데호텔 소속 셰프들이 협업해 꾸려지며, 리 셰프는 전체 오퍼레이션을 지휘한다.
그의 발탁은 단순히 유명 셰프를 초청한 이벤트가 아니다. 2023년 백악관 한미 국빈 만찬 셰프로 참여한 그는 국가급 외교 만찬의 긴장감과 절차를 이미 경험했다. 동시에 그는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에서 준우승을 거두며 대중적 스타성과 스토리텔링 능력을 입증했다. 특히 결승 무대에서 현대식 비빔밥을 선보이며 “저는 비빔 인간입니다. 한국과 미국의 문화가 제 안에 섞여 있다”라는 발언은, 이번 만찬이 지닌 ‘문화적 혼종성’의 메시지와 맞닿아 있다.
리 셰프는 한국계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 혼란을 요리로 풀어낸다. 남부 미국, 프랑스, 아시아 요리를 넘나드는 기술과 한식 연구에 대한 집요함은 그를 APEC 만찬이라는 국제무대에 최적화된 ‘브리지 셰프(Bridge Chef)’로 만든다. 이번 발탁은 한국 정부가 외교 무대에서 ‘한식=국가 브랜드’ 를 전면에 내세우려는 의지와도 연결된다.
문화외교의 무대, 한식의 시험대
이번 APEC 정상 만찬은 단순히 미식을 제공하는 자리가 아니다. 한국이 손님을 대하는 태도를 세계 정상에게 보여주는 문화외교의 무대다.
정부는 각국 정상에게 모국어 메뉴판을 제공할 계획이다. 통상 다자회의에서 영어 메뉴만 제공하는 관례를 벗어나, 일본어·중국어·말레이어 등 각국 언어를 병기한다는 점은 단순한 친절을 넘어선 메시지다. ‘한국은 손님의 문화를 존중하는 나라’라는 이미지를 각인시키려는 외교 전략이다.
또 하나의 키워드는 경주 지역성이다. 자문위원회는 수개월 전부터 경주 특산 식재를 활용한 메뉴 구성을 논의해왔다. 2005년 부산 APEC 만찬이 ‘궁중음식의 현대화’를 표방했다면, 2025년 경주는 ‘지역성과 현대성의 조화’를 내세운다. 여기에 후보로 오른 교동법주, 대몽재1779 같은 지역 전통주가 만찬주의 상징성을 강화할 전망이다.
즉, 이번 만찬은 ‘로컬의 세계화’ 라는 전략 위에서 한국 외교가 움직이고 있다. 한식은 더 이상 ‘전통 음식’만이 아니라, 세계 정상의 식탁에 오를 수 있는 보편적 언어임을 입증해야 한다.
운영과 현실, 성공의 관건
경주 만찬은 실무적으로도 난도가 높다. 200석 이상 동시 코스 플레이팅, 정상별 식이제약 대응, 철저한 보안 동선까지 요구된다. 리 셰프는 미국에서 복수의 레스토랑을 운영하며 대형 연회 경험을 쌓아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외교적 리스크가 걸려 있어 더 정교한 운영이 필요하다.
관건은 균형이다. 매운맛, 발효 향, 젓갈 등 한식 고유의 강렬함을 얼마나 절제할지. 채식·할랄·글루텐프리 등 각종 제약을 어떻게 동등한 수준의 코스로 구현할지. 만찬주로 전통주를 선택하면서도 도수·풍미 문제를 어떻게 조율할지. 특히 ‘교동법주’ 같은 약주는 도수가 적절해 건배주로 적합하지만, 안동소주는 20%가 넘는 도수 때문에 국제회의 건배주 관례와 맞지 않는다는 현실적 제약이 있다. 이는 ‘전통성’과 ‘실용성’ 사이에서 발생하는 외교적 고민의 단면을 보여준다.
비판적 시각과 남은 과제
에드워드 리의 발탁은 분명 상징성이 크지만, 몇 가지 비판적 시각도 필요하다. 첫째, 스타 셰프 중심 연출이 지역 조리팀의 기여를 가릴 수 있다. APEC 만찬은 한국 셰프 집단의 집합적 성취여야 하며, 특정 인물의 스타성만 강조된다면 균형을 잃을 수 있다.
둘째, 정통성과 대중성 사이의 긴장이다. 외교 무대는 안전한 메뉴 선택을 요구하지만, 지나치게 무난하게 흐르면 한식 고유의 정체성이 희석될 위험이 있다. 반대로 전통성을 과하게 강조하면 일부 정상에게는 ‘낯선 맛’으로 부담이 될 수 있다.
셋째, 설명의 방식이다. 모국어 메뉴판은 환영받을 만한 의전이지만, PR 문구로 과잉 포장될 경우 오히려 신뢰를 해칠 수 있다. 정확하고 간결한 정보, 원산지와 조리법, 알레르겐 표기 등 실질적 배려가 담겨야 진정성이 전달된다.
기자의 시선: ‘비빔 인간’의 외교 시험대
에드워드 리는 스스로를 “비빔 인간”이라 표현했다. 한국과 미국, 여러 문화가 섞여 하나의 정체성을 이룬다는 그의 고백은 이번 경주 만찬의 성격과 겹쳐진다. 각기 다른 배경을 가진 21개국 정상들이 한자리에 모여, 한국의 식탁에서 함께 ‘비빔’을 경험하게 되는 순간, 그것은 단순한 만찬이 아니라 문화외교의 집약체가 된다.
경주의 APEC 만찬은 한국이 한식을 세계 언어로 선언하는 자리이자, ‘한식=정체성’이라는 담론을 외교적 상징으로 승화시키는 시험대다. 이번 만찬의 성공 여부는 메뉴의 완성도뿐 아니라, ‘한국이 어떤 나라로 기억될 것인가’라는 이미지와 직결된다.
에드워드 리의 선택은 한식의 글로벌 무대 진출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자, 동시에 리스크를 동반한 도전이다. 이 기자의 눈에는 이번 만찬이 단순히 국빈 외교의 부속행사가 아니라, 한국 미식외교의 리트머스 시험지로 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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