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ok&Chef = 신현우 기자] 오는 11월부터 국내에서 판매되는 주류의 경고 표시가 한층 강화된다. 음주운전 경고 문구 또는 그림이 새롭게 추가되고, 기존의 글자 중심 경고 방식에서 나아가 그림을 활용한 경고 표시 근거도 마련됐다. 정부는 국민 건강 증진과 음주 폐해 예방을 위한 조치라고 설명하지만, 주류업계에서는 제품 디자인과 브랜드 정체성 훼손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보건복지부와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은 개정된 국민건강증진법 시행규칙과 관련 고시를 마련하고 오는 11월 9일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이번 개정안은 음주로 인한 건강상의 위험과 음주운전 등 사회적 폐해를 줄이기 위해 추진됐다.
개정안에 따르면 기존의 건강상 위험 경고와 임신 중 음주 위험 경고 외에 ‘음주운전 금지’ 문구 또는 그림이 추가된다. 또한 기존의 문구 중심 표시 방식에서 나아가 경고그림을 함께 표시할 수 있도록 했으며, 경고문구 글자 크기도 확대된다.
보건복지부는 소비자가 음주의 위험성을 보다 쉽게 인식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특히 경고그림은 글자보다 시인성이 높아 음주의 위해성을 보다 직관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논란의 중심은 ‘주상표’
업계가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부분은 경고문구 자체보다 표시 위치다.
보건복지부와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이 발행한 「주류용기·주류광고 과음 경고문구 및 경고그림 표기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경고 문구와 그림은 소비자가 가장 먼저 인식하는 ‘주상표’를 기준으로 하단에 표시해야 한다.
주상표는 소비자가 진열대에서 제품을 마주했을 때 가장 먼저 보게 되는 전면 라벨을 의미한다. 결국 브랜드명과 제품명, 디자인 요소가 집중된 공간에 경고 문구와 그림이 함께 들어가게 되는 셈이다.
최근 주류 시장은 단순히 술을 판매하는 것을 넘어 브랜드의 철학과 역사, 지역성, 문화적 가치를 디자인에 담아내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병의 형태와 라벨 디자인, 서체, 색상, 일러스트 등은 제품을 구성하는 요소를 넘어 소비자와 소통하는 중요한 수단이 되고 있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음주 폐해 예방이라는 정책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주상표 영역에 경고 문구와 그림을 의무적으로 배치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나타내고 있다.
주류 업계 관계자는 “전면 라벨은 브랜드의 정체성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라며 “경고 문구가 지나치게 큰 비중을 차지할 경우 제품이 전달하려는 이미지와 디자인 완성도가 훼손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일부 수입 주류의 경우 기존 병 디자인이 주상표 표시 기준과 맞지 않아 국내용 상품을 별도로 제작하거나 수입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 가격 상승 우려도 있다”고 덧붙였다.
국민전자청원까지 등장
이 같은 논란은 국민청원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최근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보건복지부의 주류 경고 표시 가이드라인 재검토를 요구하는 청원이 게시됐다.
청원인은 음주운전 예방과 과음 방지라는 정책 목표에는 공감하지만, 경고 문구와 그림의 위치를 사실상 주상표로 강제하는 것은 과도한 규제라고 주장했다.
청원 내용에 따르면 그동안 약 30년간 경고 문구는 보조 상표에 표시하는 방식으로 운영돼 왔으며, 관련 법령의 본질적 개정 없이 행정 해석만으로 전면 표시를 요구하는 것은 예측 가능성과 법적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전면 라벨은 단순한 포장 디자인이 아니라 상표권과 브랜드 가치를 담고 있는 핵심 자산이며, 이를 훼손하는 것은 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청원인은 미국과 일본, 유럽 등 주요 국가에서도 주류의 메인 라벨에 경고 문구나 경고 그림을 의무적으로 배치하는 사례를 찾기 어렵다며 국제적 관행과의 차이도 지적했다.
“실효성이 더 중요하다”는 시각도
일부에서는 경고 문구 확대보다 정책의 실효성을 먼저 검증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번 개정안의 주요 목적 가운데 하나는 음주운전 예방이다. 그러나 술병 전면에 경고 문구를 부착하는 것이 실제 음주운전 감소로 이어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일부 업계 관계자들은 음주운전 문제의 핵심은 술 자체보다 음주 후 운전대를 잡는 행위에 있다며, 경고 문구 확대보다 음주운전 처벌 강화와 단속 확대가 보다 직접적인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말한다.
음주운전 재범자에 대한 처벌 강화, 상습 음주운전자 관리, 단속 체계 보완 등이 음주 폐해를 줄이는 데 더 실질적인 대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보건당국과 보건 전문가들은 음주운전 역시 음주 문화와 연결된 문제인 만큼 소비자에게 음주의 위험성을 지속적으로 알리는 정책 또한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건강권과 디자인 가치 사이
보건복지부와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은 이번 개정안이 국내외 사례 분석과 전문가 단체 자문, 국민 인식도 조사, 음주폐해예방 정책전문위원회 심의 등을 거쳐 마련됐다고 밝혔다.
정부는 술이 단순한 기호식품을 넘어 개인의 건강과 사회 안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소비자가 제품을 선택하는 순간 위험성을 쉽게 인지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결국 이번 논란은 경고 문구 자체의 필요성을 둘러싼 찬반이라기보다 ‘어떤 방식으로 표시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에 가깝다.
한쪽에서는 소비자의 건강권과 알 권리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다른 한쪽에서는 디자인을 통해 구축된 브랜드 가치와 산업 경쟁력 역시 존중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술은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호식품인 동시에 오랜 시간 문화와 산업의 영역에서 발전해 온 상품이다. 오는 11월 시행될 새로운 경고 표시 제도가 음주 폐해 예방이라는 정책 목표를 달성하면서도 소비자와 산업계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균형점을 찾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Cook&Chef / 신현우 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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