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ok&Chef = 이경엽 기자] “셰프의 유산은 레시피가 아니라 철학이다. 그러나 상속은 그 철학조차 자산으로 분쟁된다.”
미국 나파 밸리의 미식 문화를 대표했던 셰프 마이클 키아렐로(Michael Chiarello). 그가 2023년 10월, 알레르기 반응으로 인한 아나필락시스로 6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지 2년이 지난 지금, 남겨진 것은 그가 일궈온 레스토랑의 명성만이 아니었다. 키아렐로의 죽음은 셰프라는 존재가 죽은 후 무엇을 남기는가에 대한 화두를 던졌다.
“이탈리아계 캘리포니아 요리의 거장”으로 불렸던 마이클 키아렐로(Michael Chiarello, 1962–2023)는 미국 나파 밸리 미식문화의 상징적인 존재였다. 1986년 세인트 헬레나에 ‘트라 비녜(Tra Vigne)’를 연 것을 시작으로, 욘트빌의 ‘보테가(Bottega)’, ‘오띠모(Ottimo)’, 샌프란시스코의 ‘코케타(Coqueta)’ 등을 통해 캘리포니아와 이탈리아의 정체성을 조화시킨 요리를 선보였다.
PBS, 푸드네트워크 등 다수 방송에 출연하며 요리사이자 방송인으로서의 입지도 굳혔고, 'Easy Entertaining with Michael Chiarello'로 에미상을 수상한 바 있다. 와이너리 'Chiarello Family Vineyards'를 운영하며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NapaStyle’도 론칭한 사업가이기도 했다.
그의 사망 이후, 유족과 생전 동업자 간의 법적 분쟁은 단순한 상속 다툼 이상의 사회적 의미를 담기 시작했다. 레스토랑은 누구의 것인가? 셰프가 남긴 요리 철학과 브랜드 가치는 어떻게 계승되어야 하는가? 이는 스타 셰프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요리인에게 깊은 질문을 던진다.
보테가를 둘러싼 분쟁: 유산인가, 자산인가
2025년 7월, 캘리포니아 나파 카운티 법원에 접수된 소송의 피고는 다름 아닌 마이클 키아렐로의 오랜 투자자들이었다. 이들은 디즈니 전 스튜디오 수장이자 와이너리 경영자인 리차드 프랭크(Richard Frank), 투자자 존 한센(John Hansen), 오랜 조력자인 피터 크로울리(Peter Crowley)였다. 원고는 키아렐로의 아내이자 유산 수탁자인 아이린 고든(Eileen Gordon)과 유산 관리 법인인 그룹포 키아렐로(Gruppo Chiarello), 솔로 이오(Solo Io LLC)였다.
지난 15일『San Francisco Chronicle』에 따르면, 유산 측은 세 투자자가 키아렐로 사망 직후 "즉각적이고 악의적으로 강요, 사기, 방해의 캠페인에 착수해, 그의 세 레스토랑의 지배권을 장악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레스토랑은 샌프란시스코의 코케타(Coqueta), 욘트빌의 보테가(Bottega)와 오띠모(Ottimo)다.
이 소송은 단순한 소유권을 넘어, 셰프의 유산을 누가 통제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로 비화했다. 키아렐로는 생전, 자녀 4명을 수혜자로 하는 가족 신탁을 구성하고, 고든을 수탁자로 지정했으며, 레스토랑의 브랜드 및 지식재산(IP)은 후대에 전승되기를 바랐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16일『Eater SF』 보도에 따르면, 2024년 5월, 피고인들은 이미 고든 측을 상대로 가처분 신청과 중재를 청구했으며, 이후 중재 결과에 따라 보테가의 소유권은 프랭크와 한센 측에 넘어갔다. 이때 메뉴, 컨셉, 맞춤 가구, 심지어 레시피에 이르기까지 포괄적 지식재산권이 포함되었다.
“리치 프랭크는 불량배다” – 고든의 입장
이번 소송에서 가장 충격적인 것은 투자자 간 사적인 대화 일부가 증거로 제출되었다는 점이다. 『SF Chronicle』 보도에 의하면, 고든은 피고 중 한 명인 존 한센이 자신에게 “리치 프랭크는 자기가 원하는 건 반드시 얻는다. 지금 원하는 건 이 레스토랑들이다”라고 말했으며, 또 다른 피고 피터 크로울리는 “리치 프랭크는 불량배(bully)”라고 표현한 사실을 공개했다.
심지어 『SFGATE』는 19일 보도에서 소송 문건 중 일부를 인용하며, 프랭크가 크로울리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아이린 고든에게 어떤 도움이나 현금을 주고 싶지 않다. 그녀가 압박받는 게 우리에게는 유리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는 단순한 인수 경쟁을 넘어 도덕성과 윤리적 정당성에 큰 의문을 던진다.
셰프의 유산은 누구의 것인가...한국 셰프들에게 던지는 질문
이 사건은 미국 미식계에 중요한 선례를 남기게 되었다. 셰프 개인의 명성이 곧 브랜드 자산으로 기능하며, 사망 후 그 지분을 둘러싼 소송은 철학이나 요리적 이상이 아닌, 법적 소유권과 사업 이익의 관점에서 다뤄진다. 이는 “셰프는 조리자이자 예술가인가, 아니면 브랜드 경영자인가?”라는 질문으로 확장된다.
또한, 레스토랑이라는 공간이 창작자의 손을 떠난 뒤에도 '그 사람의 레스토랑'으로 계속 불릴 수 있는지, 혹은 브랜드의 철학이 없이 껍데기만 남은 채 운영될 수 있는지를 묻는다.
이 사건은 한국 외식업계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스타 셰프 브랜드가 늘어나고, 조리 철학을 담은 파인다이닝이 늘어나는 지금, 셰프의 사후 유산은 어떻게 정리되어야 할까? 단순히 법인의 대표자가 바뀌면 모든 것이 이어지는 것일까? 조리 철학의 계승 구조는 존재하는가?
셰프가 사업가가 되는 순간, 그 철학은 브랜드화되고, 레시피는 자산으로 바뀐다. 그러나 이 자산이 오롯이 창작자와 가족에게 돌아가는 구조는 드물다. 그렇다면 셰프는 생전에 어떤 계약과 준비를 해야 할까?
셰프는 무엇을 남길 것인가
“마이클은 가족 유산을 중시했고, 그 자산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기를 바랐다.” 고든의 말은 단지 한 셰프의 유언이 아니다. 이는 지금의 셰프, 나아가 외식업 종사자 모두에게 남기는 질문이다. 당신은 죽은 후, 무엇을 남길 것인가?
이 사건은 셰프의 철학, 조리 관점, 사업 경영이라는 세 축 사이의 긴장을 날것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쿡앤셰프는 이 사건을 통해, 오늘날 ‘셰프’라는 직업의 의미를 다시 되묻고자 한다. 남기는 것이 레시피냐, 매출이냐, 아니면 철학이냐. 그것은 셰프 스스로가 준비하지 않으면, 남겨지지 않는다.
[저작권자ⓒ 쿡앤셰프(Cook&Chef).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