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보고 있자니 “새로운 요리의 발견이 새로운 별의 발견보다 인간을 더 행복하게 만든다.”고 했던 어느 미식가의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의 요리를 마주하는 순간, 이 말은 곧 함께 있던 모든 이의 문장이 되었다. 하늘의 반짝임을 찾아내는 일보다 잠시나마 더 큰 행복을 맛볼 수 있게 해준 그를 만나 전통 중국 요리에 더한 박일주 셰프만의 새로움, 그 뜨거운 이야기를 풀어보았다.
writer_ 오미경 기자 / photo _ 조용수 기자
Chef Story
날마다 새로운 그의 주방 이야기
중식 레스토랑 ‘메이탄’ 박일주 총괄 셰프
10년이 흘러서야
자신의 직업이 가진 진짜 매력을 안다고 확신할 수 있는 행복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평생을 모르고 일할 수도 있는 노릇이니 말이다. 그런 의구심에 비추어 생각할 때, 30대가 넘어서야 비로소 중국요리의 참맛을 알게 되었다고 고백하는 그의 모습은 어쩌면 부러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과정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그가 중식 업계에 발을 들인 나이는 열일곱. 당시만 해도 흔히 볼 수 있는 경우지만, 성인이 채 되기도 전에 생계의 무게에 떠밀려 직업군에 뛰어든다는 건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다. 세 명의 친형 모두가 동종 업계에 종사하고 있던 터라 형들의 권유에 의지하여 배달 일부터 시작한 이후 주방에 입성했지만, 하늘같은 선배들 밑에서의 수련은 늘 살얼음판을 걷는 시간이었다. 기본적인 요리 기술을 접할 기회를 만나기까지도 5년이 걸렸다.
“그땐 요리부에 워낙 사람도 많았고, 어린 제가 경험이나 실력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키워야 할 존재로 인정받을 수가 없었어요. 청소나 야채 다듬기 같은 잔일을 하면서 어깨너머로 배우는 게 전부였죠. 그래도 꾸준히 하면서 점점 기술과 입지를 쌓다 보니 서른이 넘은 어느 시점에 이르러선 ‘기왕 하려면 제대로 해보자’는 생각이 들더군요. 중식요리가 정말로 좋아지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어요.”
시간이 흐르면 변하는 게 비단 강산만은 아닌가 보다. 일을 시작한 초반 10년 동안 먹고사는 고된 일상에 묻혀 잊고 지냈던 요리에 대한 애정을 그는 서서히 다시 불 지피기 시작했다.
새로움을 시도한다는 것
마음이 그곳에 이르자 박일주 셰프의 움직임도 달라진다. 조리사 자격증을 취득한 뒤, 그는 본격적으로 자신만의 조리 세계를 구축하는 데 공을 들였다. 서울 여의도의 중식당 터줏대감인 ‘열빈’에서 시작해 반포 ‘양자강’, 일산 ‘상하이문’ 등을 거치며 다양한 중식요리 스타일을 습득한 그는 작년 7월 문을 연 서울 서초구 중식 레스토랑 ‘메이탄’에 둥지를 틀어 그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박일주 셰프가 지향하는 조리 세계의 첫 번째 철학은 기본에 충실한 것이다.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만 자칫 잃기도 쉬운 지점이다. 하지만 그는 18세 때 처음 만난 스승인 이송학 셰프로부터 철저한 위생관념과 신선한 재료 사용의 중요성을 인이 박히도록 배우며 몸속 깊이 새길 수 있었다고 한다. 그의 두 번째 철학은 전통을 계승하는 가운데 새로움에 대한 시도를 놓지 않는 것이다. 이는 곧 식탁의 변화를 읽어내는 노력이기 때문이다. 변화하지 않으면 도태되기 쉬운 경쟁의 측면에서도 필요한 일이지만, 셰프로서 성장하기 위한 길이기도 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과거의 주방이 단지 음식을 만들고 일방적으로 고객에게 맛을 전달하는 역할에 치우쳐 있었다면, 지금은 고객의 니즈가 음식을 만드는 데 무척 큰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에 그것을 반영하고, 나아가 먼저 이끌어갈 수 있을 만큼의 역량을 키우는 게 중요해졌어요. 다행히 예전과 달리 직접 가보지 않고도 정보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는 길이 많기 때문에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가능하죠. 저는 장르에 관계없이 요리에 관련한 여러 모임을 통해 교류하고, SNS를 활용해 트렌드를 느끼며, 재료나 소스, 조리 스타일 등을 연구개발하고 있습니다.”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자기 관리의 중요성도 역설했다. 술과 담배를 모두 하지 않는다는 그는 이로써 얻은 시간을 자기 계발에 투자해 직업적 성장을 이뤄낼 수 있었다며, 셰프들 스스로 낡은 습성을 바꿔야 개개인의 발전은 물론 시대의 변화에 부응할 수 있는 중식 업계가 될 것이라 말했다.
그가 얼마 전, 한국중찬문화교류협회 주관의 이금기 제품 시연회에서 선보인 ‘봄나물 쇠고기 안심볶음’과 ‘황두장 연어구이’를 비롯해 ‘두릅 굴소스 버섯볶음’, ‘블루베리소스 새우튀김’ 등 현재 업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특선 요리 모두 이러한 시도와 노력의 결과이다.
자부심과 꿈
박일주 셰프가 꼽는 중국요리의 가장 큰 매력은 ‘자부심’이다. 중식요리는 한식, 일식, 양식 등 어떤 분야와도 융합이 가능하며, 모든 분야를 총망라한 조리 스타일을 간직한 최고의 영역이란 맥락에서다. 원래 처음엔 양식에 대한 호기심으로 요리를 좋아하기 시작했다던 그도 이러한 매력에 빠져 지금의 일을 천직으로 삼게 되었다.
그러나 한국 음식 문화 속에 자리한 중국요리의 인식에 대해선 아직 아쉬움이 많은 그다. 일례로 한국인이 가장 손쉽게 접하는 외식 메뉴 타이틀을 가진 대중적인 면 요리가 중국요리인 반면, 한편으론 그 너머의 다양한 요리에 대해선 상대적으로 매력이 덜 알려져 있는 점이 그렇다. 물론 근래엔 쿡방의 효과로 중국요리의 위상 역시 높아졌지만 말이다.
박 셰프는 현장에서 뛰는 많은 셰프들이 자기계발에 힘씀으로써 중국요리 발전에 이바지하고, 고객에게 먼저 다가가려는 노력 속에 트렌드와 소통하는 등 점차 변화하고 있는 만큼 중국요리에 대한 가치 평가가 보다 제대로 이뤄지길 바라고 있었다. 또한, 이 분야로의 진로를 희망하는 이들에게 전하는 애정 어린 조언도 덧붙였다.
“여전히 ‘중식 업은 힘들다’는 인식이 지배적인 탓에 이 길을 선택하는 젊은이들이 많은 고민을 해요. 하지만 과거와는 환경이 많이 달라졌고,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의지에요. 수입을 좇기 보단 중국요리를 즐기는 마음으로 하다 보면 결국 프로가 되고, 프로가 되면 경제적 이익은 자연히 따라오거든요. 눈앞의 작은 것에 묶여 자기 발전을 막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의 도전은 그래서 진행형이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만 최종 목표에 이를 수 있음을 그는 잘 알고 있다. 셰프라면 한 번쯤 그려보듯 그의 꿈도 언젠가 자신만의 사업을 해보는 일이다.
“감사하게도 제가 지금 이곳에서 직원이자 책임자의 입장으로 보내는 시간은 미리 경영 수업을 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해요. 모든 것이 허투루 흘러가지 않고 마음에 와닿아요. 저희는 재료 본연의 순수한 맛을 살리기 위한 신선한 재료 사용에 굉장히 신경을 쓰는데 앞으로 중국요리가 가야 할 길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거기에 더해 트렌드에 맞는 메뉴 개발과 기존의 고급 재료를 대체할 새로운 재료의 연구와 상용화도 필요하죠. 저도 그 흐름을 견지하고 계속 고민하면서 저만의 스타일이 담긴 공간을 꾸리는 그날에 꼭 도전해 보려고요.(웃음)”
머릿속에 구상한 중국요리에 관한 것들을 펼쳐놓는 그의 입꼬리가 연신 살짝살짝 올라간다. 그날이 되거든 다시 한 번 그를 만나러 가겠다고 약속했다. 분명 오래 걸리진 않을 것 같다.
[Cook&Chef 오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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