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ok&Chef = 제조리 기자] 차가운 스튜디오의 공기를 가르던 칼날 소리와 뜨거운 팬이 내뿜던 증기가 마침내 잦아들었다. 대한민국 최고의 셰프들과 재야의 고수들이 오직 '맛' 하나로 계급장을 떼고 맞붙었던 넷플릭스 서바이벌 예능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시즌2'의 기나긴 여정이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었다. 최종 우승자로 '조림인간' 최강록 셰프의 이름이 호명되자, 환호와 탄식이 교차했다. 상금 3억 원이라는 물질적 보상보다 더 깊은 여운을 남긴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승리를 갈망하지 않았던 그의 마지막 한 그릇이었다.
결승전의 주제는 '오직 나 자신만을 위한 단 하나의 요리'. 이는 기술의 정교함이나 창의성의 폭발을 겨루는 기존의 경연 과제와는 결을 달리했다. 셰프의 가장 깊은 내면, 요리사로서 걸어온 길의 희로애락을 접시 위에 고스란히 응축시켜야 하는, 지독히도 철학적인 미션이었다. 심사위원 안성재 셰프조차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주제라며 그 난도를 인정했다.
최강록 셰프는 이 마지막 무대에서 승리를 위한 필살기가 아닌, 스스로를 향한 고백과도 같은 요리를 내놓았다. 경쟁의 정점에서 그는 비로소 자신을 옥죄던 '조림인간'이라는 갑옷을 벗어 던졌다. 그의 우승은 단순히 한 명의 챔피언 탄생을 넘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뒤에서 묵묵히 자신과 싸우는 모든 요리사들의 고뇌와 성장을 대변하는 하나의 상징적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돌아온 패자, '조림인간'의 서사
최강록 셰프의 이번 우승이 더욱 드라마틱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그의 지난 여정 때문이다. 그는 2024년 방영된 시즌1에 참가했지만 3라운드 팀전에서 아쉽게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당시 "나야, 들기름"이라는 유행어를 남기며 대중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지만, 셰프에게는 뼈아픈 패배였다. 설상가상으로 같은 해 12월, 운영하던 식당마저 돌연 폐업하며 그는 잠시 대중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가 시즌2에 '히든 백수저'로 재등장했을 때, 많은 이들은 그의 각오가 남다를 것이라 예상했다. '백수저'는 이미 실력을 검증받은 스타 셰프 그룹을, '흑수저'는 재야의 실력자들을 의미하는 '흑백요리사'의 독특한 계급 구도다. 패배의 경험을 딛고 다시 선 경연장에서, 그는 이전보다 더욱 단단하고 깊어진 모습으로 매 라운드를 돌파해 나갔다.
그의 요리 여정 내내 따라붙었던 별명은 '조림인간', '연쇄조림마', '조림핑' 등 조림 요리에 대한 대중의 열광적인 반응에서 비롯됐다. 이는 셰프로서 큰 영광이자 대중적 인기를 상징하는 훈장이었지만, 동시에 그를 옭아매는 족쇄이기도 했다. 대중의 기대는 그를 '조림 전문가'라는 틀 안에 가두었고, 그는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해야 했다.
결승전에서 그는 이 모든 압박감을 스스로 해체했다. 그의 고백은 주방에서 홀로 싸우는 모든 요리사들의 공감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조림을 잘 못하지만 잘하는 척했다. 척하기 위해서 살아왔던 인생이 좀 있었다." 이 한마디에는 대중의 기대와 전문가로서의 자존심 사이에서 느꼈을 그의 내적 갈등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승리가 아닌 위로, '깨두부 국물 요리'의 본질
결승전에서 최강록 셰프가 선보인 '깨두부를 곁들인 국물 요리, 근데 막 만든'은 그의 요리 철학의 집약체였다. 그는 "나를 위한 요리에서까지 조림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승리를 위해 가장 자신 있는 무기를 꺼내 드는 대신, 가장 진솔한 자신을 마주하는 길을 택한 것이다.
요리의 중심을 잡는 '깨두부'는 그에게 단순한 식재료가 아니었다. 참깨 페이스트와 칡 전분을 쉴 새 없이 저어가며 만들어야 하는 이 고된 식재료는 그에게 '근성'의 다른 이름이었다. 스스로에게 게을러지지 말아야 한다고 다짐하며 수없이 반복했을 주방에서의 자기 점검 과정 그 자체였다. 부드러우면서도 고소한 풍미가 응축된 깨두부의 텍스처는 그가 견뎌온 시간의 밀도를 상징했다.
국물은 그의 삶의 기억들을 한데 모아 우려낸 결과물이었다. 그가 가장 좋아한다는 우동 국물의 감칠맛, 업장에서 식재료를 아끼기 위해 남은 닭뼈를 푹 고아내던 시간들, 고된 하루를 마치고 파를 잔뜩 넣어 스스로를 위로하던 해장의 기억이 겹겹이 쌓였다. 마지막으로 더해진 가쓰오부시의 훈연향은 이 모든 기억을 아우르며 맛의 깊이를 완성했다. 화려한 테크닉이나 값비싼 재료가 아닌, 주방의 일상과 셰프의 삶이 녹아든 진솔한 국물이었다.
그는 이 요리에 소주 한 잔을 곁들였다. 이는 승리의 축배가 아니었다. 고된 노동을 마친 후 스스로에게 건네는 위로, 즉 '노동주'의 의미였다. 그는 "수고했다 조림인간, 오늘 만큼은 조림에서 쉬어라"라는 말을 스스로에게 건넸다. 경쟁의 가장 높은 곳에서, 그는 비로소 자신과의 화해를 선언한 것이다.
기억의 재해석, 이하성 셰프의 '순댓국'
최강록 셰프의 맞은편에는 '요리 괴물'이라 불리는 흑수저 이하성 셰프가 있었다. 세미 파이널에서 '무한 요리 지옥'이라는 극한의 경연을 뚫고 올라온 그는, 아버지와의 추억이 담긴 경상도식 순댓국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한 요리로 맞섰다.
그의 순댓국은 단순히 과거의 맛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직접 만든 수제 순대에 방아잎과 제피가루를 더해 독특한 향과 풍미의 레이어를 구축했다. 이는 유년 시절의 따뜻한 기억을 현대적인 조리 기법과 감각으로 풀어내려는 시도였다. 아버지와의 추억이라는 개인적인 서사를 담았다는 점에서 최강록 셰프의 요리와 공통분모를 가졌지만, 그 표현 방식은 사뭇 달랐다.
이하성 셰프의 요리가 '과거의 소중한 기억'을 향한 헌사였다면, 최강록 셰프의 요리는 '현재의 나'를 향한 위로와 성찰에 가까웠다. 두 셰프는 '나를 위한 요리'라는 동일한 주제 아래, 각자의 삶과 철학이 담긴 극명한 대비를 이루는 접시를 선보이며 결승전의 품격을 높였다. 이하성 셰프 역시 "최강록 셰프와 대결할 수 있어 감사하고 뿌듯했다"며 진심 어린 존중을 표했다.
한 사람이 아닌, '모든 요리사'의 이름으로
심사위원 백종원과 안성재는 만장일치로 최강록 셰프의 손을 들어주었다. 기술적 완성도나 맛의 복합성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요리에 담긴 진정성의 깊이가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으로 보인다. 그의 요리는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넘어, 한 인간의 고뇌와 성찰이 담긴 한 편의 짧은 다큐멘터리와 같았다.
우승자로 호명된 후, 최강록 셰프는 담담하게 자신의 소회를 밝혔다. 그의 소감은 승자의 환희보다는 구도자의 겸허함에 가까웠다. "전 특별한 요리사는 아닙니다. 모든 요리사들이 주방에서 티 나지 않게 하고 있는 일들을 그냥 반복해왔습니다. 그중의 한 사람인데 운이 좋았습니다."
그는 이어 "특출난 음식을 하는 사람이 아닌, 전국에 숨어서 열심히 일하고 계시는 요리사분들, 음식 만드시는 일을 하시는 분들과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정의했다. 이 발언은 '흑백요리사2'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였다. 그는 자신의 우승을 개인의 영광으로 돌리는 대신, 이름 없이 주방을 지키는 수많은 동료 요리사들에게 헌사했다.
시즌의 마지막,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 이야기가 아닌, 음식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마무리하면 좋겠다." 이 한마디는 단순히 겸손의 표현이 아니었다. 셰프라는 직업이 가진 무게, 주방이라는 공간의 치열함, 그리고 그 안에서 매일같이 자신을 갈고닦는 모든 이들을 향한 깊은 존경과 연대의 메시지였다. 경쟁의 끝에서야 비로소 꺼낼 수 있었던 이 진심은, 지켜보던 모든 이들의 마음을 울렸다.
조리 현장에 던지는 메시지와 앞으로의 전망
최강록 셰프의 우승은 한국 요리계, 특히 미디어에 비치는 셰프의 이미지에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셰프에게 '시그니처 메뉴', '독창적인 킥'을 강요해왔다. 미디어는 셰프를 화려한 기술을 선보이는 아티스트나 독설을 내뱉는 권위자로 소비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최강록 셰프는 가장 중요한 순간에 그 모든 기대를 내려놓고 요리의 본질로 돌아갔다. 매일 반복되는 고된 노동, 식재료에 대한 존중, 그리고 자신을 위로하는 한 그릇의 힘. 이것이야말로 모든 요리의 시작점이자 요리사가 평생 추구해야 할 가치임을 그의 요리는 말해주고 있었다.
누리꾼들 역시 "조림인간의 인간 승리", "우승까지는 예상 못 했는데 대단하다", "나도 저 국물 한 그릇 먹어보고 싶다" 등의 반응을 보이며 그의 진정성에 공감했다. 이는 대중 역시 화려함 너머에 있는 셰프의 진솔한 이야기에 목말라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자만하지 않겠다. 재도전해서 좋았다"고 다짐했다. 한 번의 실패와 폐업이라는 시련을 겪고 다시 일어선 그의 다짐에는 남다른 무게가 실려 있다. 그의 우승은 '인간 승리'의 서사를 완성했지만, 그에게는 또 다른 시작일 것이다. 이제 그는 '조림인간'이라는 페르소나를 넘어, 자신의 철학을 더욱 깊이 있게 담아내는 요리사 최강록으로 대중 앞에 서게 될 것이다.
그의 앞으로의 행보는 셰프라는 직업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좋은 이정표가 될 전망이다. 그의 마지막 요리는 경쟁의 승패를 가르는 한 접시가 아니었다. 오늘도 전국의 주방 어딘가에서 뜨거운 불과 싸우며 묵묵히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을 수많은 동료들을 향한, 가장 뜨겁고 진솔한 인사였다.
Cook&Chef / 제조리 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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