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photo / pixabay |
[Cook&Chef=박창선 칼럼니스트] 건조했던 계절들을 뒤로 하고 이내 곧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을 자주 접해야 하는 계절로 접어들고 있다. 창 너머로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퇴근시간을 기다리노라면, 지글지글 노릇하고 맛깔나게 구워내는 녹두전 한조각에 막걸리 한잔을 기대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고즈넉한 커피숍 한켠 창가자리에서 창문에 부딪히는 빗방울을 느끼며 맡는 그윽한 커피 한잔을 기대하는 사람도 있을터이다.
향긋한 커피향에 이끌려 들어간 목가적 커피하우스의 한켠에서 베리타스 금테가 둘러진 커피잔에 담긴 검은 유혹에 몸을 그대로 맡기고 창밖의 비를 바라보며 맡는 커피향은 일상에서 누릴수 있는 최고의 호사스런 행복일수도 있을 것이다. 유난히도 비오는 날의 커피한잔에서 발산되는 매력은 맑은 날의 그것보다도 더욱 더 진하게 와 닿는다. 생화학적 근거를 두고 있을까? 아니면 센치해진 우리의 감성에 기인하는가?

커피에는 1,000개에 이르는 향미를 발현하는 다양한 존재의 휘발성 화학분자물질들이 존재하여 커피의 맛과 향을 구성한다. 이 물질들의 평균 분자량은 150개 정도로 분자량의 수와 휘발성의 정도에 따라 향미의 정도는 달라진다. 또한 이 물질들의 다양한 조합은 전체적인 풍미를 달리한다. 이렇게 조합과 강도로 달라질 수 있는 향미에 대한 경우의 수를 고려한다면 천문학적인 숫자에 이르는 향미의 다양성이 존재한다. 그 밖에도 각각의 온도에서 휘발되는 향기물질도 다를것이며, 커피를 마시고 난 후의 잔여감에 의한 애프터테이스트(After Taste)등과 같은 변수도 이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그 천문학적인 숫자에 달하는 다양한 향미는 인간이 커피를 음용시 코와 입에 있는 상피세포의 감각수용체와 결합하여 반응하는 자극을 뇌에 전기적 신호로 보냄으로서 비로소 느껴지는 것이다. 건조한 상태에서 분쇄된 커피 향기는 주로 에스테르(Ester) 화합물들로서 유기산 또는 무기산들이 물을 잃고 생기는 구조의 화합물들이다. 이것이 물에 용해되었을때는 좀더 아로마(Aroma)가 풍부해져 에스테르(Ester), 케톤(Ketone)이나 알데하이드(Aldehyde)등 주로 분자구조가 큰 휘발성 가스 물질이 올라와 커피잔위에 위치한 우리의 후각을 자극한다.
 |
▲photo/pixabay |
코와 입 상피세포는 주로 점막에 위치해 있는데 어떻게든 수분과 흡착하는 용해등의 형태를 띄어야 체내의 감각수용체와 잘 결합하여 뇌에 보내는 전기신호를 원활하게 해준다. 분쇄 또는 추출중에 대기중으로 날라가는 휘발성 가스물질인 커피향은 미세한 습기방울에 갇혀 코의 점막으로 손실없이 더 잘 전될되어 더욱 강한 전기신호를 뇌에 보내는 것이다. 또한, 습한날의 분쇄된 커피원두는 주변 공기중의 수분과 쉽게 흡착하여 필요이상의 향이 살아나기도 한다. 게다가 공기중 수분의 함유 비율이 높아지면 대기의 무게가 올라가 커피향을 대기중으로 흩어버리지 않고, 사람이 맡을수 있는 높이층에서 더 깊고 더 풍부하게 머물게 한다. 이러한 생화학적인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비오는 날의 커피한잔은 더욱 특별하게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러나 비오는 날의 특별한 커피한잔에 대하여는 생화학적 이유외에도 다른 곳에서 더 큰 원인을 찾을수 있다.
커피에 대하여 공통되면서도 일반화된 견해의 하나는 커피는 원래 쓰다는 것이다. 태고적 부터 인간의 본능은 단것을 찾아 나서고 쓴 것을 멀리해 왔다. 단맛의 근원은 탄수화물계이다. 인류가 지속성을 가지고 활동을 해나가기 위하여는 활동에너지의 원천인 탄수화물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끌리어 섭취를 해나가야만 생존이 가능한 것이다. 즉 생존을 위한 본능으로 인간은 단맛을 탐닉하여 왔다.
 |
▲photo/pixabay |
자연계에서 존재하는 쓴맛이나 신맛의 물질들은 주로 상하였거나 독성을 지녔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멀리해야만 인류의 생존이 위협받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또한 인류가 생존에 좀 더 용이하고 자기방어를 구축할 수 있도록 한 조화로운 조물주의 설계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의 본능을 문화가 극복해낸 흔치않으면서도 대표적인 사례가 이 커피인 것이다. 커피라는 위대한 문화는 인간이 태고적부터 비롯한 쓴맛을 기피하는 본능을 극복하고 이를 정서적 감동으로 즐기게끔 하였다.
커피의 쓴맛은 주로 트리고넬린(Trigonelline), 클로로제닉산(Clorogenic acid), 카페인(Caffeine), 퀴닉산(Qunic acid) 등에 기인한다. 위 물질들은 커피원두에 3-5%정도가 함유되어 있다. 주로 알칼로이드(Alkaloid)성분이 녹아있는 액체가 혀의 감각수용체와 반응하여 느껴지는 것이 바로 쓴맛이다. 식물에게는 동물로부터 자신의 몸을 방어하기위해 생성해 내는 이러한 독성을 가진 쓴물질이 인간에게는 감성을 자극하는 문화의 하나로 녹아드니 정말 아이러니하지 않는가? 과학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인간 감성의 실체는 정말 조물주조차도 설계후 방향성을 예측하지 못한 듯하다.
 |
▲poto/pixabay |
비오는 날 인간의 감성은 객관적 지성에 비해 더욱 우세해 지고, 이렇게 우세한 감성은 본능과 지성을 누르고도 그 아름답고도 반짝이는 향수를 찾기 위해 더욱 커피한잔을 갈구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운 날과 그리운 사람을 더욱 생각나게 하는 비오는 날의 커피한잔에서 풍겨오는 향은 코의 상피세포를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 뜨거운 심장의 피를 데우는 자극을 하는 것이다. 실제적으로는 비오는 날이나 눈오는 날 커피숍의 매출은 맑은 날 대비 30%이상 떨어진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잿빛 하늘과 함께 가슴을 파고드는 빗소리는 감성의 무게에 덧이겨 커피한잔의 향내를 더욱 간절하게 하지만, 바쁜 현대인의 일상은 이를 쉽게 허락해 주지 아니하는 듯 하다.
비오는날 더욱 정신없는 하루의 일과는 커피한잔의 여유조차 앗아가 버리는 것이 작금의 현실인 것이다. 사람없는 커피숍을 꿈꾼다면 비오는 날이야말로 더욱 적기가 아닌가. 오늘 창밖에 보이는 검은 구름의 우울함이 비를 예고한다면 가까운 커피숍에서 따뜻하고도 짙은 내음의 커피한잔으로 행복을 기대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것이다. 더불어 그리운 날과 그리운 사람을 잊지않고 따뜻한 커피향에 녹여내는 것도 비오는 날의 커피한잔을 더욱 특별하게 가꾸어 줄 것이다.

박창선 (Sean Park)- 커피전문회사 (주)블루빅센 기술대표
- 커피산지(TL) R&D위원 / 팔당커피농장 기술고문
- 국제커피감정사(Q-grader) / 바리스타 1급
- (사)한국식음료교육협회 기술자문위원
- 바리스타를 위한 커피교과서 / 커피헌터 / 커피플렉스 저자
[저작권자ⓒ 쿡앤셰프(Cook&Chef).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