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ok&Chef = 이경엽 기자] "참외 향이 아예 안 나는데?"
100인분의 요리를 150분 안에 완성해야 하는 흑백 팀전 1라운드(7:7 대결). 흑수저 팀의 주방에 비상이 걸렸다. 야심 차게 준비한 '참외 소스'가 밍밍한 깨 맛으로 뒤덮여 버린 것이다. 감칠맛을 잡겠다고 깨를 들이부었지만, 오히려 깨의 강렬한 고소함이 주인공인 참외 향을 집어삼키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했다. "깨가 너무 많아!"라는 비명이 주방을 채웠다.
결국 그들은 만들어둔 100인분의 소스를 전량 폐기하고, 종료 직전 처음부터 다시 만드는 도박을 감행했다. 결과는 극적이었다. 심사위원인 백종원과 안성재는 소스를 덜어내고 본연의 향을 살린 흑수저 팀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100인의 미스터리 심사단(대중)의 선택은 냉혹했다. 결과는 66 대 34, 백수저 팀의 압승. 이 승부는 단순한 요리 실력의 차이가 아니었다. '전문가가 인정하는 미식의 본질(뺄셈)'과 '대중이 환호하는 직관적인 맛(덧셈)' 사이의 간극, 그 딜레마가 승패를 갈랐다.
깨의 배신..."이거 버리고 다시 만들자"
흑수저 팀(리더 칼마카세 등 7인)의 메뉴는 '오징어 참외 냉채'였다. 이들은 참외를 얇게 썰어 물엿에 절이고, 중식풍 오리엔탈 소스를 곁들이는 방식을 택했다. 그러나 대량 조리의 함정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팀원 중 한 명이 감칠맛을 위해 깨를 대량으로 갈아 넣은 것이 화근이었다.
소스 맛을 본 팀원들은 당황했다. "딱 봐도 저거는 깨 맛밖에 안 날 건데". 깨의 기름진 고소함이 참외의 은은한 향을 완전히 덮어버린 것이다. 이때 팀의 위기를 구한 건 조리 현장을 지켜보고 있던 바베큐연구소장와 요리괴물이었다. 그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참깨 향이 너무 강해 참외 향을 가린다"고 정확하게 지적했다. 과감하게 "이거 버리고 다시 만들자"는 결단을 내렸다.
종료 시간이 임박한 상황에서 100인분의 소스를 버리는 건 미친 짓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서울 엄마의 제안으로 참외 씨까지 갈아서 즙을 만들고, 식초와 소금, 설탕으로 간을 한 단순한 드레싱으로 선회했다. 복잡한 재료를 다 빼고 '참외 본연의 향'이라는 본질에 집중한 '뺄셈의 미학'이었다. 삐딱한 천재 역시 "괜히 어렵게 깨를 갈고 난리를 쳤네"라며 자조했지만, 결과물은 성공적이었다. "확실히 맛이 좋더라고요. 완전 참외, 참외". 위기 속에서 찾아낸 심플함은 전화위복이 되는 듯했다.
반전의 심사평: 백종원·안성재는 '흑수저'를 택했다
기존의 통념과 달리, 미식 전문가인 두 심사위원은 흑수저 팀의 '응급처치'를 높게 평가했다. 백수저 팀이 승리했다는 결과만 보고 심사위원들도 백수저를 택했을 것이라 짐작하기 쉽지만, 팩트는 정반대였다. 백종원과 안성재 심사위원 모두 흑수저 팀에게 투표했다.
백종원 심사위원은 "참외 향을 어느 쪽이 더 자연스럽게 잘 살릴 수 있느냐에 중점을 뒀다"며 인위적인 맛을 덜어내고 재료 본연의 향을 살린 흑수저 팀의 결정에 점수를 줬다. 안성재 심사위원의 평가는 더 구체적이었다. 그는 백수저 팀의 요리에 대해 "너무 많은 식감이 있어서 직관적으로 다가오지 못했다"고 지적한 반면, 흑수저 팀의 요리에 대해서는 "은은하게 올라오는 향들이 미각을 자극해 굉장히 만족스러웠다"고 호평했다. 소스를 폐기하고 단순화시킨 흑수저 팀의 전략이 '파인 다이닝'적 관점에서는 정확히 적중한 것이다.
대중의 선택은 '덧셈': 백수저 팀의 압도적 승리
그러나 승부는 전문가 두 명의 표가 아닌, 100인의 '미스터리 심사단'에서 갈렸다. 여기서 백수저 팀(리더 임성근 등 7인)의 노련함이 빛을 발했다. 그들은 '본질'보다는 '직관적인 맛'과 '풍성함'을 선택했다.
임성근 리더는 "대량 조리에는 비율이 있다"는 경험칙을 앞세워 계량컵도 없이 간장과 올리브유를 1L 병째로 콸콸 붓는 기염을 토했다. 40년 내공으로 순식간에 완성해낸 '오리엔탈 드레싱'은 망설임도, 군더더기도 없었다. 여기에 정호영 셰프는 오징어 링 튀김을 더해 바삭한 식감을 추가했고, 김희은 셰프는 타르타르 소스에 깻잎과 라임을 넣어 자칫 느끼할 수 있는 튀김의 맛을 잡았다.
백수저 팀의 접시는 흑수저 팀에 비해 훨씬 복잡하고 화려했다. 직관적인 오리엔탈 소스에 타르타르 소스, 오징어 튀김, 샐러드 등 다양한 요소가 한 접시에 담겨 '덧셈의 맛'을 완성했다. 안성재 심사위원에게는 이것이 "너무 많은 식감"으로 느껴져 감점 요인이었지만, 100인의 대중에게는 달랐다.
"입안에서 톡톡 튀는 다양한 식감", "새콤달콤하고 자극적인 맛"은 대중 급식 상황에서 확실한 한 방이었다. 흑수저 리더 칼마카세 역시 "여기는 좀 자극적인 맛... 대중적인 맛의 포인트가 된 게 유리할 수도 있겠다"고 우려했는데, 그 예감은 적중했다.
결론: 100인분 요리는 '예술'이 아니라 '과학'이자 '통계'다
최종 스코어 66 대 34. 백수저 팀의 압승이었다. 이번 대결은 '맛있는 요리'의 정의가 상황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흑수저 팀은 위기 상황에서 과감한 결단으로 소스를 폐기하고 재료의 본질을 살리는 수준 높은 요리를 완성해 전문가(심사위원)들을 매료시켰다. 하지만 대량 조리, 즉 불특정 다수에게 제공되는 식사 환경에서는 섬세한 향보다는 입안 가득 차는 풍성한 식감과 거침없는 소스의 맛(백수저 팀)이 훨씬 더 강력한 무기였다.
"깨가 참외를 삼킨" 사건은 흑수저 팀에게 뼈아픈 패배를 안겼지만, 동시에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 소수 미식가를 위한 요리는 '뺄셈'일지 몰라도, 100인을 위한 요리는 철저하게 계산된 '덧셈'과 '조화'가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백수저 팀은 개인기가 아니라, 대중의 입맛을 정확히 조준한 '데이터'와 '시스템'으로 승리했다. 이것이 바로 스케일업(Scale-up)의 잔혹한 현실이자 과학이다.
Cook&Chef / 이경엽 기자 cooknchefnews@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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