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녀와 함께 한 낯선 곳에서 만난 담백한 울림
‘여행을 떠날 땐 혼자 떠나라
사람들 속에서 문득 내가 사라질 때
난무하는 말들 속에서 말을 잃어 갈 때
달려가도 멈춰 서도 앞이 안 보일 때
그대 혼자서 여행을 떠나라’
시인 박노해의 「여행을 떠날 땐 혼자 떠나라」라는 시구절 중 일부이다. 시인은 돌아올 땐 또 다른 나와 함께 손잡고 오라고 말한다. 아마 여행의 가장 큰 묘미가 일상에서 벗어나 지금의 나를 버리고 새로운 나를 찾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여기 혼자가 아닌 ‘함께 하는 여행’으로 더 큰 행복을 얻은 이가 있다. 일흔의 나이에 열 살 손녀를 데리고 여행길에 오른 할아버지. <금강경>과 동요, 동시까지 함께한 그들의 여행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책 <열 살 하이디와 함께 알프스에 가다>를 들여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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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설렘과 기대로 시작된 종심의 여행
농림부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해 농림부 차관을 역임하는 등 평생을 농업행정 전문가로 살아온 <열 살 하이디와 함께 알프스에 가다>의 저자 안종운. 현직에 있을 당시 우리나라의 선진농업 기술 정착을 위해 30여 곳이 넘는 나라를 찾았던 그는 공직을 마무리 한 후 반드시 이 나라들을 다시 찾아 제대로 여행해보리라 늘 다짐해왔다. 그리고 실천했다. 꼭 한번 다시 찾고 싶던 나라들을 중심으로 그는 동료들과 혹은 아내, 친구들과 내실 있는 여행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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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이 아닌 감성으로 느끼는 ‘금강경’
“여행할 무렵 <금강경>에 심취해 있었어요. 관련된 책을 꽤 많이 찾아 읽을 무렵이었는데... 여행 중에 손녀가 지치 거나 지루해하면 <금강경>에 대한 얘기를 해줘도 좋겠다 싶어 한 권을 가방에 챙기게 됐었죠.”
다행인지 손녀 솔이는 할아버지 여행 가방에서 우연히 발견한 <금강경>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기꺼이 이야기꾼이 돼 손녀에게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아름다운 풍경과 상황들에 많은 동요나 글, 그리도 금강경의 어느 부분이 늘 생각나기도 하니 손녀에게 재밌게 들려줄 좋은 시간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는 그 내용들을 고스란히 책에 담았다. 이 책이 단순한 여행 에세이가 아닌 이유다. 자칫 지루하거나 난해하다 여길 수 있는 <금강경>을 열 살 손녀의 시각에 맞춰 풀어내 준 할아버지. 덕분에 우리는 알프스의 장엄한 자연을 배경으로 위대한 경전의 세계를 여행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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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단숨에 읽어 내려갈 만큼 편안하고 유쾌하다. 대학 시절 학보사 편집부 활동 이력이 전부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필력이 상당하다. 자연의 스케일을 다 잡아서 한 폭에 담아내는 사진 실력 또한 범상치 않다. 만약 공무원을 안 했더라면 기자가 됐을지도 모른다는 그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보이는 대로 느껴지는 대로 담겨지는 그대로를 표현하면 아주 좋은 기록이 될 것이다’라는 그의 말처럼 이 책은 군더더기 없이 담백하다.
여행 중에도 손녀에게 할아버지의 생각을 강요하지 않고 열 살의 시각에서 느끼고 담을 수 있도록 도와줬다는 저자. 책 사이사이 보석처럼 박혀있는 동시는 손녀 솔이에게 해주고 싶었던 할아버지의 마음을 대신했다고 한다. 책을 통한 대화, 아마도 더 깊이 오래 남을 이야기가 될 것이다.
“여행 중에 우리나라 젊은이들을 참 많이 만나요. 이 책은 우리 젊은 친구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고, 노부부에게는 ‘우리도 떠나볼까?’라는 기대를 품게 하고. 무엇보다 은퇴한 할아버지가 한 번쯤 손자 손녀와의 여행을 계획하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좋은 책과 함께라면 더없이 좋겠지요.”
하나의 책을 읽고도 각자의 독법(讀法)이 다르듯, 저자는 이 책을 읽는 모든 이들이 각자의 폭넓은 해석으로 시야를 넓혀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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