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서는 옛날에 며느리가 아들을 낳으면 시아버지가 ‘다금바리’를 넣은 미역국을 끓여줌으로써 기쁜 마음을 표현했다고 한다. 그만큼 ‘다금바리’는 제주에서도 귀하신 열대성 물고기다. ‘다금바리’ 하나로 세계 최고의 명성을 얻은 인물이 있다. 제주도 서귀포 사계포구 앞에서 다금바리 전문식당 ‘진미명가’를 아들과 함께 35년째 운영하고 있는 ‘강창건’ 명인이다.
CHEF STORY
‘다금바리’와 함께 한 35년의 동고동락
제주 진미식당 다금바리 1호 명인 강창건
[Cook&Chef 조용수 기자] 생선을 잡을 때부터 요리할 때까지 항상 고마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으로 임한다는 ‘강창건’ 명인은 아들 ‘강경석’ 셰프와 함께 제주 서귀포 사계포구 앞 ‘진미명가(眞味名家)’을 4대째 운영하고 있는 ‘다금바리’ 1호 명인이다.
“편안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요리를 하면 드시는 분 역시 편안함을 느낄 것이며, 성급한 마음에서 거칠게 조리하면 드시는 분 역시 그 기운이 전달될 것입니다. 그래서 ‘다금바리’는 물론이고 다른 생선들을 다룰 때도 최소한의 스트레스만으로 요리를 하려고 여러 가지 방면으로 연구했습니다. 생선들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생선 몸에 독이 생기고 그 독이 먹는 사람들에게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그가 보여주는 ‘다금바리’ 생선 회뜨는 솜씨는 그야말로 예술의 경지이다. ‘다금바리’가 그의 손을 거치면 대략 한 30여 가지의 맛을 낸다고 한다. 1990년도에 ‘이규태’ 조선일보 고문이 조리사들을 모아놓고 강의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이규태’ 고문이 ’일본 요리사들이 참치를 부위별로 회를 떠 수십 가지 맛을 낸다‘는 강의를 듣고, 그 아이디어를 ’다금바리‘에 도입시켜 하루에 한 마리씩 잡아 연구 했다고 한다. 그때의 연구한 ‘다금바리’의 수만 해도 돈으로 계산을 할 수가 없을 정도로 많았다고 한다. 농담 반 진담 반, 그는 수영을 잘 하는데 바다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한다. ‘다금바리’를 만날까봐 두려워........
“‘다금바리’가 좋아하는 수온으로 관리하는 방법과 저장 보관 중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법, 그리고 바늘로 뇌사시켜 시식 때에 싱싱한 회를 즐기는 방법. 이밖에 회 조성물 및 제조 방법 등을 연구하여 특허를 받았습니다. 한 가지의 특정 생선을 대상으로 특허를 받은 예는 한국은 물론 일본 등 세계 어느 곳에서도 없었습니다. ‘관상동맥절제’란 방법을 통하여 ‘다금바리’를 잡는데 이것도 특허를 냈습니다. 또한 물고기가 함유하고 있는 미끄러운 점액질을 없애는 스프레이도 만들어 생선 비린내도 잡고 더 좋은 식감을 내고 있습니다. 야행성인 ‘다금바리’를 위해 나무를 심어 자연차광을 한 길이 3×6m, 깊이 1m의 수족관에 클래식·팝송 등 음악을 틀어주고, 정기적으로 수중펌프로 물을 내뿜어 살이 푸석해지지 않도록 생선의 운동성을 유지시키는 등 ‘다금바리’들이 편안한 생활을 하도록 세세한 신경도 쓰고 있습니다. 또한 고객들에게 ‘다금바리’를 보여줄 때도 놈이 딱딱한 바닥에 나뒹굴면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젖은 스펀지 위에 올리고, 회를 칠 때도 자칫 사람의 체온으로 인해 신선도가 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수시로 냉동고에 손을 넣어 식힙니다.”
모든 일상의 생활이 ‘다금바리’와 함께 한다며 ‘다금바리’와 세계의 스태미나 식품을 접목한 스토리가 있는 음식을 준비 중이라는 ‘강창건’ 명인이 이야기하는 ‘다금바리’와의 인연에도 많은 사연이 있는 듯하다.
“할아버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어부가 될 뻔했는데 해녀였던 아내의 돌연한 사고로 횟집을 열게 됐습니다. 결혼하고 1년 반 만에, 집사람이 물질을 하다가 지나가던 배 스크루에 의해 대퇴부가 절단되는 큰 사고를 당했습니다. 둘째 아이를 임신한 상태였는데 아이도 잃고 집사람의 다리도 2.5㎝ 잘라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이런 집사람을 두고 무작정 바다로 만 나갈 수 없어 1983년 테이블 3개짜리 횟집을 차렸습니다. 어려서부터 어깨너머로 보고 익힌 조리장들의 칼질법이 도움이 됐습니다. 어린 시절 집안형편이 어려웠던 저는 야간고교를 다니면서 낮에는 요정 등에 식료품을 배달하고 하교 후 수금을 하러 다녔습니다. 요정이 고급 요릿집이다 보니 손님들이 남기고 간 ‘다금바리 회’를 얻어먹을 수 있었고, 요리사들이 칼을 어떻게 쓰는지도 엿볼 수 있었던 것이 제가 ‘다금바리’ 전문식당인 지금의 ‘진미명가’를 차릴 수 있게 된 동기입니다. 이후 백파 ‘홍성유’ 선생이 모 일간신문에 ‘한국의 맛있는 집 666곳’ 중 하나로 선정할 만큼 저의 손맛은 정평이 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후에 ‘다금바리 하면 강창건’이라는 등식이 생기도록 특화해야겠다고 결심하고 ‘다금바리’ 요리 연구에 매진해 오늘의 결실을 보게 되었습니다.”
회와 매운탕으로만 사용되던 ‘다금바리’를 두툼한 입술부터 볼 살, 혀, 간, 비늘 요리까지 적용시켜 약
30여 가지의 서로 다른 맛을 찾아내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2006년 10월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열린 ‘슬로푸드(Slow Food)’ 세계대회에 초청돼 ‘강창건’ 명인만의 요리법 ‘도마 위에 올려진 생선은 버리는 것 없이 음식을 만든다’라는 합리적이고 윤리적인 것이 반영되어 세계의 100인의 요리거장에 한사람으로 선정이 되었다.
1대 조부 ‘강도일’, 2대 부친 ‘강국보’, 지금 3대 ‘강창건’과 4대 아들 ‘강경석’ 조리사까지 조리기술을 전수받아 운영하고 있는 ‘진미명가’는 2007년에는 문화관광부가 선정한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점 100선에 선정된 후, 영국여왕을 비롯해 각국 외교 정상들과 국빈들이 ‘다금바리’ 시식을 체험했다고 하니 국가 행사로 치러지는 귀한 대접에 이제는 빠질 수 없는 조리사가 된 것이다. 1991면 한.소 정상회담과 2000년 남북 국방장관회담에서는 ‘다금바리’를 직접 소개하기도 했다. 요리법 하나도 나만의 독창적인 지식산업이라고 생각한다는 확신에 찬 그의 한마디가 우렁차게 들린다.
“의사는 질병의 치료와 예방을 하지만 요리사는 의사보다 먼저 생명체에 직접 영양을 주는 사람입니다. 그런 자부심과 사명감으로 음식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조리사들의 재능과 창의성을 인정해주기보다는 불량식품을 만드는 주범이나 단속대상으로 여기고 보건복지부 장관이 바뀔 때마다 이쑤시개 놓는 것부터 시작해 식당에 관한 법도 수시로 바꾸어 놓아 답답합니다. 저는 요리법 하나도 독창적인 지식 산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동차 하면 벤츠, 패션 하면 샤넬을 떠올리는 것처럼, ‘다금바리 하면 제주 강창건’ 이런 브랜드로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가 받은 특허를 바탕으로 우리 음식의 가능성을 더욱 키워나가고 싶고 가능성과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30여 년 동안 주위의 음해하는 이들도 있었고 힘든 시기도 있었으나 그래도 믿어주고 도와주었던 분들 덕분에 오늘에 온 것입니다.”
대학에서 조리과를 전공하고 지금은 아버지 곁에서 가업을 이을 준비를 열심히 하는 든든한 아들이 있어 한없이 행복하다는 ‘강창건’ 명인. ‘다금바리’의 세계화를 위해 회 요리법만이 아니라 소스의 한국화를 연구하고 있다. 일본식 와사비로는 한국요리의 고유성을 인정받기 힘들다는 생각에서란다. 화이트와인에 잘 어울리는 다금바리 요리, 생선뼈 없이 내놓는 국물요리 등을 개발 중이다.
‘다금바리’ 생선 하나로 30가지의 요리를 만들어내며 천천히, 진정한 맛을 만들어내는 ‘강창건’ 명인. 매년 봄·가을에 서울의 호텔에서 ‘다금바리’ 시연회를 한다고 하는 ‘강창건’ 명인의 ‘다금바리 요리’가 예술로 승화되어 모든 이들을 즐겁게 할 것을 생각하니 그의 삶 자체가 싱싱한 활어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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