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제가 말씀드릴 거는 여러분들이 잘 모르는 얘기, 개인적인 얘기니까 간단히 말해서 ‘마이 이탈리언 스토리’라고 그럴까요?
50년 전에 이탈리아로 처음 가서, 시에나라는 도시에서 아주 유명한 지휘 선생님인 프랑코 페라라에게 공부하러 갔었어요.
그 후에는 이제 다시 돌아간 게 1982년, 43년 전입니다. 그때는 제 첫 일자리가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어시스턴트 콘덕터였는데, 그 일을 마치고 꼭 유럽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음악가, 특히 지휘자는 작곡가들이 태어나고 살았던 그 나라, 그 장소에 가서 그 느낌과 분위기를 직접 경험하는 게 중요하다고 늘 생각해왔거든요.
그래서 어디서 시작할까 고민하다가, 이미 1975년에 시에나에 갔을 때 음악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음식, 특히 파스타에 아주 깊이 빠졌어요. 매일 먹어야 할 정도로요.
당시에는 유럽에서 연주가 없었고, 미국에서 주로 활동했으니까 와이프에게 "이탈리아 가서 1년 살아봅시다"라고 했어요. 그래서 로마로 가게 되었죠. 그 1년 동안 음악 연주는 하지 않았지만 파스타 요리에 대해 많이 배우게 됐고, 그때부터 점점 이탈리아를 더 사랑하게 됐어요.
그리고 보면 이탈리아와 한국은 닮은 점이 많다고 느낍니다. 나라의 형태, 사람들의 감정 표현 방식, 노래를 좋아하는 성향 등 여러 면에서 한국과 가장 비슷한 유럽 나라는 이탈리아라고 생각했고, 지금은 더더욱 그렇다고 느낍니다.

43년 동안 이탈리아와 프랑스, 특히 파리 오페라와도 인연이 깊었습니다. 1989년에 파리 오페라로부터 초청을 받았고, 그때부터 파리와 로마를 오가며 집도 일곱 번이나 옮겼어요.
하루는 로마에서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을 구경하러 갔는데, 한국 성악 공부하는 학생들이 너무 많아서 이곳이 이탈리아인지 한국인지 모를 정도였어요. 밀라노 음악원도 마찬가지였고요.
그래서 저는 진심으로 생각합니다. “한국은 노래를 사랑하는 나라다.” 사람들이 한국을 떠올렸을 때 “그 나라, 노래 참 좋아하지”라고 말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저는 그게 제 바람입니다.
이탈리아를 워낙 좋아하게 됐고, 주변 이탈리아 친구들에게는 “내가 너희들보다 이탈리아를 더 사랑할 수도 있어”라는 농담도 했어요. 라 스칼라와의 첫 연주는 1989년, 파리 오페라와 일을 시작하던 시기였습니다.
지휘자라는 직업은 오케스트라와의 상호작용이 중요해요. 어떤 오케스트라와는 말이 잘 통하고, 어떤 곳은 그렇지 않아요. 그런데 라 스칼라 오케스트라와는 처음부터 말이 잘 통했고, 제가 무슨 표현을 하든 놀라울 정도로 잘 이해해줬어요.
그래서인지 이제는 친구가 아닌 가족 같은 사이가 됐습니다. 시간이 흘러 요즘은 이런 농담도 해요. “지금은 네가 내 말을 잘 못 알아들어도, 네 부모는 나를 잘 알아들었어.” 36년이 지났으니까요.
저는 세계의 거의 모든 주요 오케스트라와 작업해봤어요. 하지만 점점 더 중요하게 느끼는 건 ‘서로 통하는 관계’입니다. 아무리 훌륭해도 그런 소통이 없으면 하지 않아요. 그래서 라 스칼라만은 ‘가족’이 됐고, 그래서 이번에 음악감독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던 거예요.
지금은 음악감독 타이틀이 생겼을 뿐, 우리는 이미 서로를 너무나 잘 이해하고, 오랫동안 함께 해왔어요. 그래서 2026년 12월 7일, 라 스칼라 시즌 오프닝 공연을 제가 지휘하게 됩니다. 레퍼토리는 베르디의 ‘오텔로’가 될 가능성이 크고요.
제가 가장 사랑하는 작곡가가 베르디입니다. 라 스칼라 사장인 도메니코 오톤엘로는 베네치아 라 페니체에서 함께 17년간 일했던 인연이 있는 분이고, 베르디 전문가예요. 우리는 이미 베르디를 많이 다뤄봤기 때문에, 이번에도 멋진 프로젝트를 만들 수 있을 거라 확신합니다.

Q. 외국인이 음악감독이 되는 것의 의미?
요즘 세상은 미국이나 유럽이나, 점점 내셔널리즘이 강해지는 경향이 있어요. 그래서 외국인이 그런 자리에 오르는 게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평생 외국에서 살았고, 늘 “외국인이라면 더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예전에 파리 오페라 음악감독으로 있을 때도, 한국 성악가들이 오디션을 많이 봤지만, 프랑스인과 똑같이 잘해서는 부족해요. 더 잘해야 뽑히는 거죠. 그게 현실이고, 저는 그 현실을 받아들이고 살아왔어요.
이번에도 정치적인 배경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라 스칼라 오케스트라, 합창단, 그리고 극장 내 모든 직원들이 저를 원해줬다는 사실이 가장 기쁩니다. 그건 제가 확실히 알고 있어요.
Q. 부산 오페라하우스와의 연계는?
라 스칼라는 최고 수준의 무대와 연주를 보여줄 수 있는 곳이지만, 부산은 이제 시작하는 단계예요. 그래서 두 극장이 하는 일은 성격이 많이 다릅니다.
하지만 라 스칼라에서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본보기’를 부산에 가져다줄 수 있어요. 부산 오페라하우스는 2027년 개관 예정이고, 가능하면 라 스칼라가 개관 공연으로 함께할 수 있길 바랍니다. 다만 구체적인 내용은 추후 발표하게 될 겁니다.
Q. 라 스칼라와의 관계가 특별한 이유는?
서로 말이 통하고, 음악을 통해 이해할 수 있는 관계라는 건 아주 특별한 거예요.
25년 전쯤, 투어 준비를 하던 중에 단원들이 너무 피곤해 보여서 누가 줬던 초콜릿 박스를 꺼내 단원들에게 나눠줬어요.
“지금 너희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이 초콜릿뿐이다”라고 하면서요.
미국 오케스트라였으면 이상하게 봤겠지만, 라 스칼라 단원들과는 그 정도로 가까운 사이예요.
그래서 이번 음악감독직 제안은 도저히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이미 은퇴했고, 음악을 더는 ‘일’로 보지 않습니다.
이제는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과만 하고 싶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만 하고 싶어요.

Q. 이탈리아 미식 문화와 음악 해석의 연관성은?
밀라노는 미식의 도시죠. 저는 요리를 정말 좋아하고, 파스타를 특히 좋아합니다. 사실 제가 이탈리아에 끌리게 된 이유 중 하나도 파스타였어요.
어렸을 때 가족이 시애틀에서 한국 식당을 운영했는데, 제가 8살 때부터 부엌에서 요리를 도왔습니다. 자연스럽게 요리에 관심이 생겼고, 지금까지도 그 열정이 이어지고 있어요. 음악학교처럼 요리학교도 다니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어서, 식당을 찾아가 직접 물어보고 배웠어요. 이탈리아 사람들은 요리에 대해 굉장히 열려 있어서 잘 가르쳐줍니다.
요즘은 예전처럼 많이 먹지는 않지만, 여전히 파스타는 매일 먹습니다.
제가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햇살, 사랑, 토마토 — 이 세 가지가 이탈리아를 상징하는 거 아니냐”고 묻고는 “그중에서 나는 누구보다 토마토를 많이 먹는다”고 말할 정도예요.
프랑스 남부에 있는 집에서 토마토를 직접 길러 병에 담아 1년에 천 병 정도 저장합니다. 하루에 세 병을 먹는 셈이죠. 올리브오일도 직접 짜고, 주변 친구들에게 나눠줍니다.
이탈리아 음식에서는 기본이 올리브 기름입니다. 올리브 기름에 토마토만 있어도, 거기에 소금만 조금 뿌려도 정말 맛있어요. 토마토를 잘 졸여서 소스를 만들면 그것만으로도 최고의 맛이 납니다. 거기에 바질을 다져 넣거나, 좀 매콤하게 하려면 마늘과 고추를 추가해도 좋고요. 또, 올리브유에 케이퍼를 넣으면 더 풍미가 살아납니다. 기본 베이스는 토마토입니다.
Q. 올리브나무 지휘봉에 대해?
프로방스 집에 있는 올리브나무로 직접 지휘봉도 만들어요. 다만 올리브나무는 부러지기 쉬워서 아몬드나무 같은 다른 나무도 씁니다. 특별한 기술은 없고, 샌드페이퍼로 깎습니다. 걷기를 좋아해서 산책하면서 깎고, 보통 이틀에서 사흘이면 하나를 만들 수 있어요.
Q.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은?
이제는 명확한 목표는 없습니다. 다만, 베르디를 정말 사랑하기 때문에 그 음악을 더 깊이 있게 표현하고 싶습니다. 예전에도 『오텔로』를 파리 오페라에서 플라시도 도밍고와 함께 녹음했지만, 이제는 그보다 더 잘하고 싶어서 매일 공부해요.
와이프가 “일생 그거 하면서 살았는데 지금도 더 공부하느냐”고 묻지만, 저는 음악을 조금이라도 더 깊이 이해하고 표현하고 싶어요.
Q. 마지막으로 한국에 대한 바람이 있다면?
우리나라는 노래를 정말 좋아하는 민족입니다.
저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조금 덜 날카로워지고, 더 많이 노래했으면 좋겠어요.
한국이라는 나라를 떠올렸을 때, “아, 그 나라는 노래를 사랑하는 나라지”라는 말이 가장 먼저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그 꿈을 라 스칼라와, 그리고 부산 오페라하우스와 함께 이루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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