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QUIOR - 전통주 이야기
항아리 속에서 이슬로 맺히는 국주(國酒)
감홍로(甘紅露) - 한국 3대 명주
감홍로는 유득공(1749-1807)의 저서인“경도잡지(京都雜志)”와 최남선(1890-1957)의 “조선상식문답”에 기록된 우리나라의 3대 명주 중 첫 번째로 꼽히는 최고의 명주이다. 조선 선조 때 서유구(174-1845)가 지은 ‘임원경제(林園經濟)16지(志)’ 정조지 권7과에 기록되어지고, 현종때 홍석모(洪錫模)가 지은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등에도 수록되어 있다.
[Cook&Chef 조용수 기자] 우리나라의 소주는 고려시대에 유입되어 개발되었다. 그러한 증류주 중에 관서(평양)지방의 감홍로는 최초의 소주라 전해지며 2차증류를 거친 환소(還燒)제품으로 우리나라 고유의 명주가 되었다. 예전 문화공보부 시절 문배술로 1986년 국가지정 인간문화재(중요무형문화재 86-가호)로 지정을 받은 故 포암(浦巖) 이경찬 선생의 집안에서 전해 내려오던 전통주로 국가에서 주류제조면허를 받을 수 없던 중 1994년 농림부에서 차남이 명인을 지정 받아 이를 재현하려 하였으나 2000년 사망하였다. 문배술과 감홍로의 기능을 갖고 있는 차녀 이기숙가 주위의 권유로 부군 이민형씨와 함께 경기도 파주시 파주읍 부곡리 34-7에 2005년 법인을 설립하여 이를 재현하게 되었다. 현재 국내에서 이를 재현할 수 있는 사람으로 유일하다.
감홍로의 원료는 조와 쌀로 만든 술에 고급 한약재를 넣어 침출한 후 이를 숙성시킨 것으로, 조선 시대 고급증류주는 고관대작 집안에서 전해 내려오던 것으로 먹고 취하려는 것이 아니라, 약리작용으로 몸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의학서적인 식물본초(食物本草- 1526)에 ‘섬라주(태국산 술)는 일찍이 사람들이 휴대하고 배를 탔다. 서 너잔만 마셔도 취하고 환자가 마시면 나았고 살충작용이 있다. 우리나라 감홍로, 계당주가 이에 가깝다’고 고사12집에 기술되어 있다. 조선시대에 고급증류주를 생산하는데 많은 곡물이 소요되어 금주령이 내려졌고 일제시대에도 곡물이 모자라 이를 대중화하지 못하였다. 해방 후에 양곡관리법에 의해 양산을 못하였지만 (고) 포암 이경찬선생의 집안 경조사시 조금씩 만들어 전통으로 맥을 이 었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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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홍로(甘紅露)의 감(甘)은 단맛을, 홍(紅)은 붉은 색을, 로(露)는 증류된 술이 항아리 속에서 이슬처럼 맺힌다는 뜻으로 독특한 향이 어우러져 미각, 시각, 후각을 만족시키는 술이다. 속담에 ‘질병에도 감홍로’라는 말이 있으며 그 뜻은 겉모양은 보잘 것 없으나 속은 아름다운 것도 있다는 뜻이다. 국내 고대 소설(판소리)(별주부전에 ‘자라가 토끼보고 용궁에 가자고 하는 장면에서 용궁에 가면 감홍로가 있다고 꼬득이는 장면’, 춘향전에 ‘춘향이가 이도령과 이별하는 장면에 향단이보고 이별주로 감홍로를 가져오라고 하는 장면’, 황진이에서 ‘황진이가 서화담을 보고 감홍로 같다고 표현하는 장면‘) 속에도 감홍로라는 술은 여러 구절에서 전해지고 있으며 현대소설 장길산에서는 수많은 구절에 전해지고 있다.
감홍로는 40도의 도수가 높은 술임에도 약재의 향이 어우러져 향이 독특하고 마시기에도 부드러우며, 마신 후에도 입안에서 역하지가 않고 부드럽게 향이 퍼진다. 술을 마신 후 따듯한 기운이 몸에 퍼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술을 많이 마셔도 숙취(위에 부담이 가거나 두통)가 없으며, 혈액순환을 돕고 조금씩 마시면 몸을 따듯하게 하는 작용을 한다. 대부분의 술은 마신 후 장이 차지나 감홍로는 장을 따듯하게 하는 작용을 한다 그래서 선조들은 구급약으로 상비하였다가 사용하였다는 기록도 있다. 약한 도수의 술을 즐기는 사람도 우리나라의 술의 특징이 칵테일이 잘 되질 않는데 비해 이술은 칵테일이 되기 때문에 다른 음료수와도 잘 어울린다. 감홍로는 주로 달 감(甘)를 쓰지만 이규경이 감색 감(紺) 자도 쓴 이유는 검붉은 색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기숙씨가 현재 복원한 감홍로도 같은 색으로 과히 우리나라의 3대 명주의 하나로 그 명맥을 있고 있으며 국주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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