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ok&Chef=유영보 칼럼니스트] 2025년 1월 튀르키예 서부지역을 중심으로 메이저급 국제 미식행사가 연이어 개최되었다. 우선 1월 22일부터 25일까지는 이즈미르 호레카페어, 27일부터 29일까지는 가스트로 알라냐, 28일부터 31일까지는 가스트로 안탈랴에서 행사들이 모두 성황리에 진행 되었으며, 특히 튀르키예 남부의 아름다운 지중해 연안 도시인 알라냐에서 열린 제9회 '국제 가스트로 알라냐 국제요리대회'는 전 세계의 셰프들과 미식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요리의 예술과 혁신을 선보이는 무대였다. ‘PGCPC지중해유럽세프협회’ 회장인 필자는 알라냐시와 골든래들 관광셰프협회(Mesut Onal 회장)의 공식 초청을 받아 이 대회의 심사위원으로 참여하게 되었고, 그 경험을 쿡앤셰프 독자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한다.
알라냐, 지중해의 보석
알라냐는 튀르키예의 남부에 위치한 도시로, 고대 로마, 비잔틴 제국, 오스만 제국의 영향을 받은 풍부한 역사와 문화를 자랑하는 곳이다. 이 지역은 아름다운 해변으로 여행자들에게 인기 있는 관광지다. 알라냐의 관광 명소 중에서도 알라냐 성과 붉은 탑 그리고 청명한 바다가 펼쳐지는 해변들이 유명하다. 이번 대회의 선수단과 심사위원 숙소도 아름다운 클레오파트라 해변가에 자리잡은 비치 호텔이었다. 계절도 잊게 해주는 1월의 따스한 햇살 아래 끝없이 펼쳐진 백사장과 에메랄드빛 해안에서 나름 워케이션을 만끽했다.
알라냐는 관광지로만 유명한 곳이 아니다. 이곳은 최근 몇 년간 요리와 음식 문화의 중심지로서 그 명성을 높여가고 있다. 거리에는 수 많은 레스토랑과 다양한 맛집들이 즐비하다. 길을 걷다가 '소풍'이라는 한국음식점도 우연히 발견했다. 매일 풍부하게 제공되는 알라냐식 튀르키예 지중해식단은 '저속노화식단'의 표본이라 할 수 있을 만큼 훌륭했고, 알라냐식 생선요리가 매번 다른 종류로 제공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고퀄의 올리브와 다양한 샐러드, 신선한 과일과 견과류는 기본이다.
특히, 알라냐 요리대회(Gastro Alanya)가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미식 행사로 자리잡으면서, 이 도시는 전 세계의 셰프들과 요리 전문가들이 만나는 중요한 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번 대회에도 TAŞFED바이람 오즈렉 회장, WFRS알렉스 라비노비치 회장, MAMC부안델저 도조토브 회장, IMCA발렌타인 라파엘 회장. CTCCA 제키 징커키란 회장 등 평소 한 자리에 모이기 힘든 각국의 유명 협회장들이 일일히 나열하기도 힘들만큼 대거 참석했다. 필자도 이곳에서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수 년만에 반가운 얼굴들과 조우하며 추억을 되새길 수 있었다.
튀르키예 행사의 특징은 그 규모에 있다. 2019년 이즈미르 호레카페어의 심사위원으로 초청받았을 당시, 행사장이었던 푸아르 이즈미르의 규모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 언뜻 보아도 일산 킨텍스보다 서너 배는 더 커 보였다. 그 행사는 코로나 이전에 열렸던 식음료 관련 행사 중 아마 가장 큰 행사였을 것이다. 이번 대회는 심사위원만 백명이 넘을 만큼 참가인원이 역대급으로 많은 행사였다.
이러한 성공의 이면에는 대회의 주최 기관인 골든래들 관광셰프협회(Golden Ladle Chef Association)가 있다. 이 협회는 튀르키예 내에서 요리와 미식 분야의 발전을 위해 힘쓰고 있는 대표적인 단체로, 셰프들의 역량을 강화하고, 요리 예술을 세계적으로 널리 알리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설립자겸 협회장인 메숫 오날(Mesut Onal)회장과는 2023년 튀니지 국제요리대회와 2024년 모로코 국제요리대회에서 2년 연속 함께 심사위원으로 활동했던 인연이 있다. 오날회장은 셰프들이 상호 교류하고, 서로의 경험을 나누는 중요한 가교 역할을 하고 있으며, 식문화 향상을 위한 다양한 교육과 미식세미나도 적극적으로 주관하고 있다.
이번 대회에서 각국 셰프들은 독창적이고 혁신적인 요리 기술을 선보였다. 다양한 카테고리에서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고 각국의 전통 음식부터 현대적인 해석을 더한 창의적인 요리까지 참관인들의 감탄을 자아낼 만한 대전이었다. 특기할 만한 것은 평소 타 대회에서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던 백수저 셰프들이 대거 흑수저 명함을 달고 선수로 출전했다는 점이다. 그만큼 대회의 공신력이나 인지도가 높은 행사였다. 심지어 필자와 같은 협회의 영국지부 회장도 이 대회에 수 백명의 선수들 중 한 명으로 출전했다. 아시아 지역에선 몽고 국가대표팀의 활약이 컸다. 30여 명의 선수단 대부분이 우수성적을 내는 장면도 놀라웠다. 다만 한국 출신의 대회 참가자가 없었다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었다. 규모가 큰 행사인 만큼 대회는 행사기간 내내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매 시간 45분 단위로 진행되었고 대회가 끝날 때마다 별도로 마련된 시상식장에서는 매 시간 해당 대회의 시상식이 진행되었기에 심사위원들도 팀을 이루어 실시간 집중하여 채점평가하고 그 자리에서 바로 심사평균점수를 산출하는 방식이었다.
제9회 국제 가스트로 알라냐 요리대회는 단순한 요리대회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요리의 미래를 함께 설계해 가는 책임감 있는 공간이었고, 세계 각국의 셰프들이 한 자리에 모여 유형 무형의 노하우를 나누고, 글로벌 요리 트렌드를 선도하는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이번 대회가 알라냐라는 지중해 도시에서 열린 점과 젊은 셰프들과 Z세대 요리 꿈나무들이 대거 참가한 점은 고무적이었다. 알라냐의 풍부한 문화와 전통이 대회에 담겨 참가자들 뿐만 아니라 관람객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으며 참가자들의 가족과 친지들로 구성된 응원단의 높은 관심과 응원은 이 업계의 미래를 밝게 보여주는 것 같았다.
골든래들 관광셰프협회의 노력에 힘입어 알라냐는 요리와 문화가 만나는 특별한 도시로 자리매김해 가고 있다. 이 대회는 그 변화의 문을 열었고 앞으로 더 많은 셰프들이 이곳에서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요리로 재능을 펼칠 날을 기대한다. 필자 역시 이번 대회를 통해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더 넓은 시각에서 요리와 미식의 미래를 고민하고 더 많은 사람들과 이 멋진 여정을 함께 만들어 가고 싶다. 알라냐와 골든래들 관광셰프협회가 이끌어가는 미래의 미식 문화를 기대하고 응원한다.
마지막으로, 큰 행사를 치르는 도중에 공항까지 직접 의전을 나와 주신 오날 회장님과 이스탄불 공항의 환승게이트부터 주위가 들썩이게 큰 소리로 환영해 주시고 일정을 쪼개어 스파에 데려가 함맘(터키식 세신)을 소개해 주신 세이다 셰프님, 그리고 6년 전 스치듯 지나간 튀르키예 에서의 짧은 인연을 잊지 않고 이번에도 여전한 따뜻함으로 맞아 주셨던 현지 셰프님들과 정신없는 일정 속에서도 서로 격려해 주며 수고해 주신 심사워원들께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요크대학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30년 이상 5대양 6대주를 수시로 넘나들며 수 없이 많은 지역을 여행했다. 국내외 유명 식음료 기업을 비롯해 카페, 베이커리, 레스토랑 등 식음료 전반에 다양한 경력을 보유하고 있다. 현재 식음료 관련 교육 컨설팅 회사인 ‘슈발리에’ 아카데미와 예약제 레스토랑 ‘빠라달’을 운영하고 있다. 2019년 지중해를 중심으로 한 셰프단체 ‘Professonal Group of Chefs & Pastry Chefs’(PGCPC)로부터 올해의 여성 셰프상을 수상했고, Cavaliere della Cucina 기사 훈장을 받았다. PGCPC 이탈리아 지부와 몰타 지부의 콘실리에리(Consigliere) 상임고문으로 임명되었으며, 현재 PGCPC 지중해 셰프협회 국제본부 총괄 부회장 겸 한국지부 회장직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셰프, 달의 배꼽 멕시코를 가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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