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국수는 특이한 음식이다. 지금은 동네 어디에서나 쉽게 찾을 수 있는, 가장 평범한 한 끼 식사지만, 이 음식이 지나온 시간을 따라가다 보면 결코 단순하게 볼 수 없는 층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칼국수를 값싸고 배부른 ‘서민 음식’으로 인식한다. 그러나 이 인식은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았다. 오히려 칼국수의 출발점은 지금과 정반대에 가까웠다.
밀가루가 아닌, 메밀에서 시작된 음식
초기 칼국수는 지금처럼 밀가루 중심 음식이 아니었다. 조선시대에는 밀이 귀해 대부분 외부에서 들여와야 했고, 가격도 비쌌다. 반면 메밀은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는 작물이었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었다. 그래서 당시 국수는 메밀가루를 중심으로 만들고, 밀가루는 반죽을 이어주는 보조 역할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재료 구조는 음식의 사회적 위치를 결정짓는 요소로 작용했다. 밀가루가 귀했다는 것은 국수 자체가 귀한 음식이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조선 시대에 국수는 잔칫날이나 제사, 혹은 손님 접대와 같은 특별한 상황에서 주로 등장했다. 길게 이어지는 면은 장수를 상징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고, 그 자체로 의례적 성격을 띄는 음식이었다. 지금처럼 일상적으로 소비되는 음식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흥미로운 점은, 칼국수가 계절성과도 깊이 연결된 음식이었다는 사실이다. 조선시대는 음력 6월 전후로 밀을 수확했기 때문에, 칼국수는 사실상 여름에나 맛 볼 수 있는 별미였다. 감자와 애호박을 고명으로 올리는 것도 두 식재료 모두 여름철에 가장 쉽게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칼’로 썰어 만든 국수
조선 시대에 이르면 칼국수의 형태를 짐작할 수 있는 기록들이 등장한다. 반죽을 얇게 밀어 칼로 썰어 만든 국수, 즉 ‘절면’과 같은 형태가 조리서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칼국수가 특정 시점에 새롭게 발명된 음식이 아니라, 기존 국수 조리 방식이 점차 굳어지며 하나의 형태로 정착되었다는 점이다.
『음식디미방』의 ‘차면법着麵法 맛질 방문’에는 “메밀 껍질을 벗기고 속가루를 비단체에 다시 곱게 쳐라. 고운 밀가루나 세면 가루를 섞어 면을 가늘게 썬다.” 라는 내용이 나온다. ‘가늘게 썬다’는 내용에서 칼국수의 원형으로 볼 수도 있으나 명칭도 다르고, 현재의 조리법과도 달라 절면의 원형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주식시의』 난면 조리법의 “밀가루를 깁체로 두어 번 쳐서 계란 흰자 위는 쏟아버리고 노른자위만 반죽하여 오래오래 쳐서 백지장같이 얇게 밀어 가늘게 썬다. 꾸미를 맛있게 끓여서 표고버섯과 석이를 채로 쳐 갖은 양념하여 잠깐 볶아 국수 위에 가득 뿌려도 쓴다.”라는 내용을 통해 ‘난면’ 조리법이 지금의 칼국수 조리법과 상당히 유사한 것을 알 수 있다.
이후 근대기 고조리서인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 『간편조선요리제법簡便朝鮮料理製法』 등에서 밀가루를 반죽해서 방망이로 얇게 민 다음 칼로 가늘게 썰어 장국에 넣고 끓여 먹는 현대의 칼국수와 유사한 조리법을 찾아볼 수 있다.
계급이 뒤바뀐 음식, 전쟁 이후의 변화
칼국수의 의미가 가장 극적으로 바뀌는 시점은 한국전쟁 이후다. 전쟁 이후 미국의 원조를 통해 밀가루가 대량으로 유입되며, 한국의 식문화는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쌀이 부족했던 시기 정부는 밀가루 소비를 장려했고, 이에 따라 밀을 기반으로 한 음식들이 빠르게 확산되었다.
이 변화 속에서 칼국수는 완전히 다른 위치로 이동한다. 한때는 귀한 재료로 만들어지던 음식이, 이제는 값싸고 배부른 한 끼를 대표하는 서민 음식이 된 것이다. 음식의 조리 방식이나 형태는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그것을 둘러싼 사회적 의미는 완전 뒤집혔다. 칼국수는 음식 자체보다도 시대의 흐름을 더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사례가 되었다.
지역의 색을 담은 칼국수
이후 칼국수는 지역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분화되었다. 면의 구조는 크게 변하지 않은 채, 국물과 재료가 지역의 특색에 맞게 달라졌다.
서해안에서는 바지락을 넣은 칼국수가, 내륙에서는 닭을 활용한 진한 육수의 칼국수가 발달했다. 전라도 지역에서는 팥을 삶아 거른 국물로 팥칼국수를 즐겨 먹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들깨를 넣어 걸쭉하게 만드는 방식도 등장했다.
이처럼 칼국수는 하나의 음식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지역 식재료와 환경이 반영된 여러 개의 음식이 공존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칼국수 만드는 법
- 바지락, 닭, 채소 등을 이용해 육수를 만든다.
- 밀가루, 물, 소금, 식용유를 넣고 섞은 후 치대 30-60분 간 냉장 숙성한다.
- 애호박, 감자, 버섯 등을 채 썬 후 양념한다.
(애호박: 소금에 살짝 절이기, 버섯: 간장·설탕·참기름으로 양념하기) - 고명용 채소는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른 후 살짝 볶는다.
- 숙성한 칼국수 반죽은 얇게 민 후 접어 일정하게 썰고 밀가루를 묻혀 붙지 않게 한다.
- 냄비에 육수를 넣고 끓인다.
- 육수가 끓어 오르면 칼국수 면을 넣고 면이 익을 때까지 가열한다.
- 칼국수를 그릇에 담고 고명을 올린다.
우리는 칼국수를 쉽게 소비하고 있지만, 한 그릇의 칼국수에는 여러 겹의 시간이 겹쳐 있다. 그래서 어쩌면 칼국수는 가장 평범한 음식이 아니라, 가장 복잡한 음식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는 그 복잡한 시간을, 너무 아무렇지 않게 한 끼로 소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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