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ok&Chef = 이경엽 기자] 김장김치에 숨은 단맛도, 된장찌개의 깊은 맛도, 삼겹살의 느끼함을 잡는 절임도 결국 ‘양파’에서 시작된다.
양파는 한식의 뿌리이자, 맛의 줄기를 지탱하는 기본 식재료다. 설탕 대신 단맛을 내고, 조미료 없이도 감칠맛을 보태며, 고기의 잡내를 없애고 채소의 텁텁함을 정리한다. 한식의 맛을 아는 사람일수록, 양파를 단순한 채소가 아닌 ‘조미료 이상의 조미료’로 여긴다.
그러나 지금, 그 양파가 흔들리고 있다.
28일 농림축산식품부(장관 송미령)는 올해 양파 생산 증가로 인한 가격 하락에 대응해 선제적인 수급안정 대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기상 여건이 양호하고 병해충도 줄면서 조생종과 중만생종 양파의 생산량이 모두 증가한 가운데, 소비 정체로 도매시장 반입량이 늘며 가격은 급락했다.
실제로 조생종 양파 생산량은 전년 대비 9.2% 증가했고, 중만생종 역시 재배면적은 줄었지만 단수가 늘면서 전년 대비 3.2% 증가한 109만 톤 생산이 전망된다. 5월 하순 기준 도매가격은 kg당 619원으로, 이는 전년 대비 46%, 평년 대비 28% 하락한 수치다.
가격 하락은 겉으로 보기엔 소비자에게 좋은 소식 같지만, 생산자 입장에선 큰 위기다. 재배 농가의 수익이 줄어들면 내년도 재배 의욕이 떨어지고, 이는 다시 공급 불균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지금 정부가 개입하지 않으면 ‘풍년 속 가격폭락 – 생산 감소 – 공급불안’의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는 것이다.
양파는 단순히 밥상에 오르는 채소가 아니다. 된장국에 풍미를, 불고기에 단맛을, 김장에 감칠맛을 더하는 한식의 핵심 요소다. 특히 설탕이나 조미료 없이도 맛의 균형을 잡아주는 식재료로, 최근 건강식·비건식 트렌드 속에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국물 요리의 감칠맛은 물론이고, 양념의 짠맛을 중화하는 데에도 꼭 필요한 이 식재료는 한식의 기본 맛을 설계하는 감춰진 설계자다. 이런 양파가 제값을 받지 못하고 외면당한다면, 한식의 정체성도 조금씩 무너질 수밖에 없다.
이를 막기 위해 농식품부는 비축수매 물량을 전년 대비 3배 이상 늘린 3만 톤 규모로 확대하고, 기존의 수매비축 방식 외에도 정부가 출하 시기와 장소를 지정하는 ‘지정출하제’를 새롭게 도입한다. 또, 일부 물량은 농협을 통해 수매 후 출하 시점을 조정하고, 품위저하 양파는 시장에 출하하지 않도록 자조금 단체와 협력할 계획이다.
한편, 생산자만을 위한 대응에 그치지 않고 소비자 측면에서도 양파 소비를 늘리기 위한 노력이 함께 진행된다. 전국 대형마트와 전통시장에서 양파를 최대 40%까지 할인하는 소비촉진 행사를 6월 초까지 이어가며, 학교급식·외식업체·식자재 유통망 등 대량소비처를 대상으로 국산 양파 사용을 권장하는 업계 간담회도 병행되고 있다.
농식품부 유통소비정책관 홍인기 국장은 “본격적인 수확기 이전에 수급 불안을 차단하고, 필요시 추가 대책을 발동하겠다”며,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를 위한 균형 있는 대응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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