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료를 넘어 빵·소스까지 확산된 '제로' 바람, 식문화의 새로운 기본값으로

[Cook&Chef = 이경엽 기자] 건강을 챙기면서도 입맛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소비자들이 '제로 슈거' 제품에 열광하고 있다. 과거 음료 중심이던 슈거제로 제품이 이제는 빵, 소스 등 가공식품 전반으로 확산되며 식문화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29일 발표한 『2024년 식품산업 생산실적』에 따르면, 지난해 슈거제로 제품의 전체 생산액은 5,726억 원으로 전년 대비 20.1% 증가했다. 특히 음료 외 품목의 성장세가 눈에 띄었는데, 빵류·소스류 등에서도 슈거제로 제품 생산액이 592억 원으로 전년 대비 109.7% 늘었다. ‘제로(Zero)’ 라는 단어가 포함된 제품 수는 590개로, 전년도 261개에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이는 제로 제품이 단순 유행을 넘어 새로운 식문화로 자리 잡았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건강과 맛을 동시에 추구하는 ‘헬시플레저(Healthy-Pleasure)’ 소비 트렌드가 있다. 이는 단순히 당분 섭취를 줄이려는 회피형 선택이 아닌, 즐거운 식사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건강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제로 슈거 제품은 이제 더 이상 ‘특수식품’이 아니라, 일상적인 선택지가 되고 있다.
가공식품 시장 전반에서 제로화가 진행 중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알룰로오스, 당알코올류 등 설탕 대체감미료의 기술 발전과 맛 구현력 향상은 제과·제빵, 소스류, 간편식 등에 제로 제품을 안정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이는 제품 다양화뿐 아니라, 건강과 관련된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려는 기업들의 전략과도 맞물려 있다.
SNS 등 온라인 채널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제로 슈거 식단', '저당 베이킹', '헬시 디저트' 등 다양한 해시태그가 확산되면서 소비자들은 제로 제품에 대한 정보와 레시피를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있다. 이는 곧 구매 행동으로 이어지고, 제품 개발의 피드백 루프로 작동하는 선순환을 낳고 있다.
한편, 슈거제로 제품의 성장 외에도 이번 생산실적 발표에서 드러난 또 하나의 주목할 흐름은 식물성 원료 및 고단백 제품의 급성장이다. 땅콩버터, 레몬즙, 애플사이다비니거 등 식물성 원료 기반 제품은 총 691억 원 규모로 전년 대비 약 5배나 증가했으며, 단백질 강화 제품은 5,688억 원 규모로 전년 대비 24% 증가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맛을 포기하지 않고 건강을 챙기려는" 소비자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제품군이라는 점에서, 제로 제품과도 철학적으로 맞닿아 있다.
식품산업 전반에서 건강 중심 소비는 일시적 유행이 아닌 구조적 변화로 자리 잡고 있다. 축산물 부문에서도 저염·저당·저지방 제품의 생산량이 전년 대비 21.3% 증가했으며, 건강기능식품에서는 비타민 및 무기질 제품이 홍삼을 제치고 생산액 1위를 기록했다. 이러한 흐름은 식품 제조사의 R&D 전략뿐 아니라 유통, 마케팅, 패키징 전반에 영향을 미치며 시장을 재편하고 있다.
이제 '달지 않음'은 불편함이 아니라 선택이다. '제로'는 더 이상 부족함의 언어가 아니라, 새로운 만족의 문법이 되고 있다. 건강을 향한 식문화의 진화는 계속되고 있으며, 슈거제로는 그 선봉에서 새로운 식탁을 열어가고 있다.
[저작권자ⓒ 쿡앤셰프(Cook&Chef).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