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F STORY
'이 또한 지나가리라'
워커힐 호텔 중식당 金龍 이문정 셰프
다윗의 반지에 새겨진 -이 또한 지나가리라-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지나간다, 좌절하지도 우쭐대지도 말고 당당히 앞을 향해 전진하는 그의 당참에 한국 조리계의 여성 셰프의 미래가 밝다
[Cook&Chef 조용수 기자] 단아한 한복이 어울릴 것 같은 한 여성 셰프가 금룡의 문 앞에 서 있었다. 흰색 가운을 걸친 작고 예쁜 얼굴,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 호텔’ 금룡(金龍) 중식당의 이문정 셰프이다.
여성 셰프를 찾아보기 힘든 호텔 셰프중 특급호텔 중식당에서 여성 셰프를 보기는 더 어렵다. 처음 입사했을 때는 너무 생소하고 엄격했다고 한다. 그리고 아무래도 중식이다 보니 한국 셰프와 화교 국적의 셰프분들이 섞여 있어서 문화적으로 적응하기가 조금 어려웠다고 한다. 그러나 마력처럼 끌린 것 그것은 불(火)에 대한 매력이었다.
우연한 기회에 중식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이문정 셰프는, 하지만 고단한 가운데 불에 이끌렸다고 한다. 대부분의 요리가 화덕에서 만들어지는 중식은 불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분야이기에 오히려 자연스러운 만남일 것이다. 모든 것을 빨아들여 녹여버릴 것만 같은 불은 위험하지만 인간의 역사를 뒤바꿔 놓은 대발견이다. 부연설명을 좀 하자면 생식을 하던 인간은 불을 발견한 후 엄청난 변화를 겪게 된다. 음식을 불에 익혀 먹는 화식에 눈을 뜬 것이다. 화식은 음식물의 영양분을 더욱 잘 흡수하게 했고, 뇌의 크기도 전에 비해 크게 만들었다. 그만큼 뇌의 주름이 많아지면서 지능이 발달하고, 골반이 작아지면서 현생인류로 진화하게 되었다. 이문정 셰프가 불의 매력에 빠져든 것도 어쩌면 몸속 유전자의 명령에 따른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려나 그녀는 불이 얼마나 비밀스럽고 마술적인지 선배 셰프들의 조리를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운명처럼 불과 함께 평생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감히 제가 불을 논할 수는 없어요. 굳이 말하자면 불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맛이나 식감, 시각적인 부분까지 달라져요. 그래서 경험과 시간이 필요한 겁니다. 재료의 준비도 중요하지만 마지막 완성이 불판인 건 그래서예요. 이렇게 말하면 어떨까요. 불은 마치 살아 있는 생물 같아서 함부로 다루면 음식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녀는 그래서 중식의 레시피를 만들기 어려운 게 불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아무래도 그녀의 팔목에 자리 잡은 불의 흔적이 신경 쓰였다. 마음을 읽었는지 이문정 셰프가 먼저 입을 열었다.
“섣불리 불을 다뤘다간 낭패를 보기 십상이에요. 겁이 나고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어요. 제 팔에 남은 불에 덴 흔적들이 어쩌면 잘 하라는 불의 채찍질일지도 몰라요.”
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일을 시작하면서 힘이 들었다 고한다. 하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어떻게든 견뎌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주방에 들어서기 전 ‘난 여자가 아니다. 여자가 아니다.’라는 생각을 무슨 주문처럼 스스로에게 되뇌곤 했다. 직장생활에 있어서 힘들고 해결되지 않는 고민이 생길 때는 조리장님과의 많은 대화를 통하여 그 해답을 풀어가고 있다고. 조리장님은 직장 상사이기 전에 조리인생에 있어 대 선배이기 때문이다. 30년이 넘는 경륜 속에서 많은 지혜와 노하우, 시행착오에 대한 경험을 바탕으로 많은 조언을 받고 있다. 또한 그녀가 지금 이렇게 성장 할 수 있는 배경과 기회를 만들어 주신 분들이 바로 조리 팀장님과 조리장님은 물론 주방 선후배님들이 있기에 가능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단다. 받은 사랑만큼 또한 후배양성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도 한다. 자신을 여자라고 인식하는 순간부터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자각이 들었다고 그녀는 고백한다. 아무래도 남성이 대부분인 곳에서 그녀가 택한 생존전략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였는지 이문정 셰프의 몸동작과 말투는 어딘지 모르게 남성적인 분위기였다. 하지만 그것이 오늘의 그녀를 있게 한 원동력일 거란 판단이 섰다.
“본래 남성적인 면이 없지 않았지만 이 일을 하면서 성격도 더 남성적으로 변한 것 같아요. 그렇다고 그게 불편하거나 하지는 않아요.” “바꿀 수 없다면 남에게는 없는 나만의 경쟁력을 갖자는 게 시작이었어요. 그래서 시간을 쪼개어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죠.”
남성이 대부분인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공부는 그녀로서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남성과 다르다는 물리적 차이, 그리고 오래된 문화는 개인적인 측면에서 어쩔 수 없는 한계이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 조리업계에서 여성의 비율은 25~30% 정도라고 한다. 과거에 비해 결코 적지 않은 비율이다. 물론 이문정 셰프의 선배 세대 중 여성은 극히 일부라는 사실을 감안해야 한다. 그녀에게 셰프를 꿈꾸는 후배 여성들에게 할 말은 없는지 물었다. 자신의 위치에서 적어도 10년을 버티라고 말하고 있다. 역경이 없는 사람이 없겠으나 그녀는 후배들에게 말한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 다윗의 반지에 새겨진 문구인데, 좋은 일이든 나쁜일이든 지나간다 좌절하지도 우쭐대지도 말라고 선배로서 당당히 말하고 있다. 그리고 학교공부만이 아니라 인간관계도 공부라는걸 않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한다. 그 모든 게 10년 뒤 자신을 만드는 경험이 될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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