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프와 미식가가 돌아봐야 할 식재료의 첫 번째 원천, ‘흙’과 ‘농민’
이미지 생성: ChatGPT (OpenAI) 제공 / Cook&Chef 제작
[Cook&Chef = 이경엽 기자] 11월 11일, 달력이 이 날에 가까워질수록 유통업계의 움직임은 분주해진다. 편의점과 마트의 가장 눈에 띄는 매대는 형형색색의 막대과자 상자로 가득 채워진다. 제과업체는 물론, 베이커리, 카페, 심지어 주얼리 업계까지 이 날을 겨냥한 기획 상품을 쏟아낸다.
‘빼빼로데이’는 1990년대 초·중반 부산·경남 지역의 여학생들 사이에서 ‘날씬해지라’는 의미로 과자를 주고받던 것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1996년 한 제과기업이 이를 본격적인 마케팅 캠페인으로 활용하면서, ‘빼빼로데이’는 전국적인 문화 현상으로 확산했다.
그 상업적 파급력은 압도적이다. 한 유통업체 매출 집계에 따르면, ‘밀레니엄 빼빼로데이’로 불렸던 2011년 11월 한 달간 막대과자 매출이 연간 총매출의 50.1%에 달했다. 단 하루의 비공식 기념일이 시장 전체의 흐름을 바꾸는 상징적 사례가 된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11월 11일이 가진 또 다른, 묵직한 의미를 기억해야 한다. 이날은 1996년 정부가 공식 지정한 법정기념일, ‘농업인의 날’이다.
‘농업인의 날’은 농업의 근간인 ‘흙(土)’을 파자(破字)하면 십(十)과 일(一)이 된다는 점에서 착안했다. 1년 내내 흙과 함께 살아가는 농민들의 노고를 기리고, 한 해의 수확을 마무리하며 기쁨을 나누는 시기라는 상징성을 담고 있다. 이에 정부와 농업 관련 단체는 쌀 소비를 촉진하고 농업의 소중함을 되새기자는 취지로 ‘가래떡데이’ 캠페인을 함께 전개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의 온도 차는 명확하다. 대중의 관심과 시장의 자본은 압도적으로 ‘빼빼로데이’로 쏠려있다. ‘가래떡데이’는 존재하지만, 그 의미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매년 이맘때면 상술에 대한 비판과 ‘데이 마케팅’에 대한 피로감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높다. “어차피 상술일 뿐이다”, “불필요한 소비를 조장한다”는 소비자들의 냉소적인 반응이 뒤따른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상업적 논란이 매년 반복되면서 오히려 ‘농업인의 날’이 재조명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셰프가 기억해야 할 첫 번째 주방, 흙
요리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리는 셰프에게 주방은 단순한 작업 공간이 아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 모든 식재료가 태어나는 첫 번째 주방, ‘흙’이 있다.
‘요리하는 농부’로 불리는 강레오 셰프는 “좋은 재료에는 생산자의 철학이 녹아 있다”고 말한다. 그는 농부를 단순한 공급자가 아닌 요리의 출발점으로 본다. “건강한 식재료에는 건강한 스토리가 있다”는 그의 신념은 셰프의 창의력과 농업의 경쟁력이 맞닿아 있음을 보여준다. 요리의 뿌리는 흙에 있다는 것이다.
송훈 셰프 역시 “진심을 담는 것이 중요하다”며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먹을 음식을 만든다는 마음으로 요리한다”고 말한다. 그에게 있어 ‘좋은 요리’는 좋은 재료를 고르는 일에서 출발하며, 이는 곧 농민의 정성과 직결된다. 셰프는 농민의 진심을 접시에 옮기는 메신저이자 동반자인 셈이다.
이들의 발언은 결국 하나의 명확한 사실로 귀결된다. 셰프의 칼날은 농부의 손끝에서 완성된다.
데이 마케팅을 넘어, 음식의 근원으로
‘빼빼로데이’의 가벼운 즐거움도, ‘가래떡데이’의 전통적 의미도 오늘날에는 모두 하나의 ‘소비 이벤트’로 치부되기 쉽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우리가 외면해서는 안 될 묵직한 질문이 남아 있다.
우리가 매일 요리하고, 먹고, 평가하는 그 수많은 식재료는 과연 누구의 노동과 어떤 시간 위에서 태어나는가?
11월 11일, 막대과자를 나누며 웃을 수 있다. 그것은 이미 우리 사회의 자연스러운 문화 현상이다. 그러나 그 손에 들린 과자 한 줄기의 원료인 밀과 설탕, 초콜릿(카카오)의 출발점이 결국 ‘흙’과 ‘농민의 땀’이라면, 그날의 의미는 완전히 달라진다.
오늘, 셰프의 손끝에서 빛나는 창의적인 요리 한 접시마다, 그 재료를 길러낸 농부의 이름이 함께 기억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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