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ok&Chef = 이경엽 기자] 최근 성황리에 막을 내린 한식 컨퍼런스는 국내외 전문가들이 모여 한식의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모색한 뜻깊은 자리였다. 특히 세계 미식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는 페란 아드리아 셰프의 강연은 행사 전부터 업계의 뜨거운 기대를 모았다. 분자 요리를 개척하고 '창의성'을 미식의 핵심 화두로 끌어올린 그가 한식에 대해 어떤 통찰을 제시할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그러나 행사가 끝난 지금, 업계의 반응은 기대와 달리 냉담하다. 컨퍼런스 자체는 성공적이었다는 평가 속에서도, 핵심 연사였던 페란 아드리아의 강연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혹평이 지배적이다. 강연 내용이 컨퍼런스 주제와 겉돌았다는 지적부터, 한식에 대한 피상적인 이해를 드러냈다는 비판, 심지어 ‘자기 홍보’에 불과했다는 날 선 목소리까지 터져 나왔다.
본지는 컨퍼런스에 참석했던 복수의 한식 전문가 및 업계 관계자들을 인터뷰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페란 아드리아의 강연 내용과 태도에 실망감을 표하며, 이번 방한이 '세계적 거장'과 '한식'의 진정한 만남이 아닌, '미식 권력'의 일방적인 선언에 그쳤다고 입을 모았다.
주제와 겉돈 강연, “자기 홍보하러 온 것 아닌가”
이번 컨퍼런스의 주요 주제 중 하나는 '채소와 발효'였다. 하지만 다수의 참석자들은 페란 아드리아의 강연이 이 흐름에서 벗어나 있었다고 지적했다.
행사에 참석한 한 업계 관계자는 "이번 한식 컨퍼런스의 주제는 채소의 발효에 대한 강연이었는데, (페란 아드리아의 강연은) 주제에서 조금 벗어난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는 "최소한 외국인의 관점에서 야채나 발효를 보여주거나, 김치에 대한 시각을 제시하는 편이 컨퍼런스 주제에 더 맞았을 것이다"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페란 아드리아는 1부 강연에서 주로 자신이 진행하는 교육 사업과 본인의 가치관을 설명하는 데 시간을 할애했다. 이 관계자는 "본인이 하고 있는 일을 보여주는 것 자체는 맞았다"면서도, "1부만 본 사람은 컨퍼런스 주제에 맞지 않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본지 취재 결과, 2부 토론 역시 실질적인 토론이라기보다는 강연의 연장에 가까웠다.
‘자기 홍보성 강연’이었다는 더 직접적인 비판도 나왔다. 한 음식 관련 전문가는 "한식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자기 홍보를 하고 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생각만큼 감흥이 있거나 인상적인 부분은 없었다"고 토로했다.
현장에 있던 또 다른 참석자 역시 "페란의 강의를 듣고 나서 딱히 떠오르거나 기억에 남는 내용이 없다"며 강연 내용 자체를 평가절하했다.
한식 철학에 대한 피상적 접근… ‘발효’에서 드러난 시각차
전문가들의 비판은 단순한 내용 수준을 넘어, 한식을 바라보는 페란 아드리아의 관점 자체에 향했다. 특히 한식의 핵심 철학인 '발효'를 두고 그의 접근이 한식의 철학과 충돌했다는 지적이다.
이번 컨퍼런스에 참석한 한 셰프는 그가 "음식을 먹을 손님들의 수준을 키워야 한다"고 말한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깊이 공감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발효'에 대한 논의가 나오자, 그와 페란 아드리아의 시각은 정면으로 충돌했다.
그에 따르면, 페란 아드리아는 ‘통제 가능한 발효’를 언급하며 "페란은 '자신이 아는 발효는 통제가 가능한데 왜 한국은 (발효를) 통제하지 않느냐'는 식의 태도를 보였다"고 전해졌다.
이는 한식의 발효 철학을 이해하지 못한 접근이라는 것이 이 셰프의 설명이다. 그는 "우리는 지방마다 다른 양념과 재료의 다양성을 수용하고, 그 자연스러운 발효의 맛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입장이다"라며, "우리는 (통제하지 않는) 그 자체를 선호하기 때문에" 페란 아드리아가 "그러한 한식의 철학을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다"고 전했다. 한식에서 발효는 통제와 제어의 대상이 아니라, 자연의 다양성을 수용하고 기다리는 과정 그 자체라는 의미다.
앞서의 음식 관련 전문가는 "페란 아드리아는 한식에 대한 이해도가 높지 않을 것"이라며, "수박 겉핥기 수준에 불과할 것이다"라고 꼬집었다. 그는 "그런 인물에게 한식의 미래를 논의해 달라고 요청한 것 자체가 무리였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심지어 일부 참석자들은 그가 자국의 사례를 중심으로 한식을 비교 평가하는 태도를 보였다고 지적했다. 한 셰프는 "애국심이 참 강하다고 느꼈다"며, "자국(스페인)의 사례와 비교하며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말해, 그가 한식을 고유의 철학으로 존중하기보다 자신의 기준에 맞춰 평가하려는 태도를 보였음을 시사했다.
“따뜻함 없는 과학적 접근”… ‘미식 권력’의 일방통행
페란 아드리아의 접근 방식은 한식의 정서와도 충돌했다. 한 셰프는 그에 대해 "요리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접근하는 방식을 취한다"며, "요리를 따뜻한 마음으로 대하는 입장과 달리, 그는 요리를 과학적으로 접근하고 풀려고 해 따뜻함이 느껴지지 않는 아쉬움이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현장에서 '불통' 논란으로 이어졌다. 한 참석자는 "(페란 아드리아가) 백양사에서 열린 행사에서도 조희숙 셰프님의 말씀을 끊고 이야기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본지 기자 역시 다른 채널을 통해 동일한 증언을 확인했다.) 일부는 이를 "한마디라도 더 해주려는 열정으로 볼 수도 있다"고 해석했지만, 국내 예절과는 어긋난 행동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이러한 ‘일방통행’은 본지 기자의 질문 차단 사건에서도 드러났다. 본지 기자는 지난 10월 29일 자 [기자수첩] 「그는 한국에 와서 한식을 듣지 않았다 – 질문을 차단한 ‘미식 권력’의 민낯」에서 페란 아드리아 측이 한식 전문 매체의 질문을 두 차례 거부한 사실을 밝힌 바 있다.
그는 점심시간에는 특정 대형 매체와 긴 인터뷰를 진행했지만, 본지 기자의 질문 시도에는 “지금은 쉬셔야 합니다. 나중에”라며 응답을 피했다. 이후 다시 시도했을 때는 “셰프님이 화가 나셨습니다. 더는 질문을 받지 않겠다고 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자리를 떴다.
이는 단순히 한 기자의 질문이 아니라, ‘한식의 목소리’ 자체를 차단한 행위였다. 그가 강조해 온 ‘창의성’의 본질은 대화와 질문에서 비롯되지만, 정작 그는 한식의 질문에는 귀를 닫았다. 한식을 말했다. 그러나 한식을 듣지 않았다.
기대감은 실망감으로… ‘진정한 교류’는 없었다
세계적인 셰프의 방한은 분명 주목할 만한 이벤트였다. 하지만 정작 필요한 것은 ‘교류’와 ‘이해’였다.
국내 전문가들은 이번 강연이 "자기 홍보에 그쳤고", "컨퍼펀스 주제와 겉돌았으며", "한식의 핵심 철학인 발효에 대한 이해가 피상적"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일부 참석자들은 "타국에 와서 열정적으로 강연하는 모습 자체는 인상적이었다"고 했지만, 행사 후 업계에 남은 것은 '거장의 열정'이 아닌 '소통의 부재'에서 오는 공허함과 실망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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