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ok&Chef = 이경엽 기자] “식습관만 바꿔도 병원비가 줄어든다”는 과학적 증거가 나왔다.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박민선 교수 연구팀은 건강한 식생활을 실천하는 사람이 입원과 외래를 포함한 연간 총 의료비를 유의미하게 덜 지출한다는 사실을 국민 단위 자료 분석을 통해 입증했다. 이 연구는 2025년 7월 국제학술지 『Nutrients』에 게재됐다.
연구팀은 국민건강영양조사(KNHANES)와 국민건강보험 자료를 연계하여 2016~2021년 사이 조사에 참여한 성인 25,194명 중 의료비 자료가 확보된 1,144명의 데이터를 분석했다.
건강한 식단의 정도는 ‘한국인 건강 식생활 지수(Korean Healthy Eating Index; 이하 KHEI)’로 측정했으며, 점수에 따라 대상자를 네 개 그룹(Q1~Q4)으로 나누고 의료비 지출 간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그 결과는 명확했다. 가장 건강한 식단군(Q4)은 가장 낮은 그룹(Q1)보다 연간 총 의료비가 8.6% 적었다. 외래 진료비는 12.1%, 입원 진료비는 8.0% 각각 감소했다. 박 교수는 “건강한 식습관은 질병 예방을 넘어서 실질적인 의료비 절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연구는 정책적·사회적 의미가 크다”고 밝혔다.
건강한 식사, 젊을수록 ‘의료비 절감 효과’ 뚜렷
연령에 따라 건강한 식단의 효과는 달랐다. 전체 연구대상자의 중위연령인 57세를 기준으로 나누어 분석한 결과, 청·중년층(57세 미만)에서 절감 효과가 더욱 뚜렷했다. 이 그룹의 Q4 식단군은 Q1 대비 의료비를 11.5% 덜 지출했다.
박 교수는 “청년층은 가공식품 섭취, 불규칙한 식사 등 건강하지 못한 식습관에 더 많이 노출되어 있다”며 “간단한 식사 패턴 개선만으로도 병원비 절감 효과가 상대적으로 크게 나타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병원 방문은 더 많지만, 지출은 더 적다
건강한 식습관은 병원 이용률을 낮추지는 않았다. 연구팀은 의료비 지출이 없는 사람까지 포함한 24,050명을 추가 분석했으며, 이 결과에서도 KHEI 점수가 높은 사람일수록 병원을 방문할 가능성은 오히려 9% 더 높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실제로 지출한 의료비는 약 16% 더 낮았다.
박 교수는 “건강한 식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정기 건강검진과 같은 예방적 진료에 더 적극적이지만, 고비용의 치료나 입원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다”며 “결국 건강한 식생활은 개인 건강뿐 아니라 재정적으로도 가계에 이득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미지 생성: ChatGPT (OpenAI) 제공 / Cook&Chef 제작
2단계 통계모형으로 신뢰도 확보… 한국식 식단의 과학적 근거
연구팀은 의료비의 분포가 비대칭적이라는 점을 고려해 ‘2단계 통계 모형(two-part model)’을 도입했다. 이 방법은 첫 단계에서 의료비 지출 여부를, 두 번째 단계에서 지출액 수준을 각각 따로 분석하는 방식이다. 이 분석에서도 KHEI 점수가 높을수록 의료비 지출 확률은 약간 높지만, 실제 지출 금액은 유의하게 낮았다.
특히 이 연구는 한식 기반의 건강한 식습관이 경제적 이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실증적 근거를 제시했다는 데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KHEI는 곡류, 채소, 과일, 유제품, 단백질 식품, 포화지방, 나트륨, 당류, 에너지 균형 등 14개 항목을 기반으로 0~100점 사이로 산출되는 지표로, 기존에 개발된 서구형 식생활지수보다 한국인의 식습관을 더 잘 반영한다.
저소득층·1인 가구일수록 식생활 질 낮아
KHEI 점수는 지역, 소득, 가족 형태에 따라 차이를 보였다. 수도권 거주자에서 상대적으로 높았으며, 반대로 중장년층·저소득층·1인 가구에서 점수가 낮게 나타났다. 이는 식생활 불균형이 단순한 개인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생활 환경과도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박 교수는 “지역사회와 일차의료 현장에서 실천할 수 있는 식생활 개선 프로그램이 절실하다”며 “건강식생활 교육과 환경 개선을 통해 지역 간, 계층 간 격차를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정책적 시사점: 건강보험 재정 안정까지 기대
이번 연구는 개별 건강 수준 개선을 넘어 국가 건강보험 재정에도 긍정적인 파급 효과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박 교수는 “건강한 식생활은 단순한 권고사항이 아니라 국가와 지자체 차원에서 제도적으로 장려하고 지원해야 할 핵심 보건전략”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간단한 잡곡밥, 채소 섭취, 가공식 줄이기 등만 실천해도 실질적인 병원비 절감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이번 연구는 매우 현실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며 “앞으로 건강정책과 교육 프로그램의 방향성 수립에 기초자료로 활용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먹는 것이 곧 건강이다”는 과학적 사실
박 교수는 연구를 마무리하며 “건강한 식단은 단지 오래 사는 비결이 아니라, 덜 아프게 사는 방식이며, 동시에 지갑을 지키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가 주도하고, 국민건강영양조사(KNHANES)의 원시 자료와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진료비 기준단가를 활용해 분석됐으며, 모든 비용은 2016~2021년 평균 환율 기준으로 미화(USD)로 환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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