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 책만 읽는 곳이 아니었다

서현민 기자

cnc02@hnf.or.kr | 2026-01-09 14:35:46

조선의 제사와 도살 제도가 만든 ‘고기 동네’의 뿌리 [사진=KBS1역사저널그날, 현방은 조선 시대 성균관에 소속되어 소의 도살과 쇠고기의 독점 판매를 담당하던 시전]

[Cook&Chef = 서현민 기자] 성균관은 조선의 최고 교육기관이자 국가 의례가 이루어지던 공간이었다. 이곳에서는 문묘 제례가 정기적으로 거행됐고, 제사에는 소가 제물로 사용됐다. 제례가 반복되기 위해서는 도살과 해체, 보관이 안정적으로 이루어져야 했다. 이 과정에서 성균관 일대에는 제사용 소고기를 담당하는 시설과 인력이 상시 배치됐고, 자연스럽게 고기 유통이 집중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조선 사회에서 소는 농경을 지탱하는 중요한 노동력이었다. 그래서 사적인 도살은 엄격히 금지됐고, 허가 없이 소를 잡는 행위는 중죄로 취급됐다. 육류는 국가가 허용한 특정 공간에서만 제한적으로 도살되고 분배됐다. 성균관은 이러한 제도 아래에서 합법적인 도살이 가능한 대표적인 장소였고, 고기가 모일 수밖에 없는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성균관 주변에는 현방과 다림방이라는 관영 시설이 설치돼 육류 유통을 담당했다. 현방은 소를 잡아 부위를 나누어 판매하는 곳이었고, 다림방은 고기를 삶고 끓이는 조리를 맡았다. 제사에 사용하고 남은 고기와 부산물은 이 과정을 거쳐 시장으로 흘러들었다. 유생과 관료, 인근 주민들은 이 유통망을 통해 비교적 안정적으로 고기를 접할 수 있었다.

[사진=김홍도의 「설후야연」은 눈이 그친 겨울, 사람들이 둘러앉아 고기를 구워 먹으며 웃고 이야기를 나누는 조선 시대 연회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은 풍속화다.]

성균관을 보조하던 반인들이 거주하던 반촌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반촌은 행정 기능을 담당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숙박과 음식, 술과 생필품을 파는 상업 공간으로 변화했다. 제사 이후 유통된 고기를 활용한 국과 수육, 안주류가 판매되면서 반촌은 고기와 음식 문화가 모이는 생활 상권으로 성장했다. 학문과 행정, 제사와 상업이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진 공간이었다.

이러한 형성 과정은 오늘날의 마장동과 뚜렷이 구분된다. 마장동이 도축과 도매, 냉장 유통망을 기반으로 한 현대적 육류 산업 단지라면, 성균관 일대는 국가 의례가 출발점이었다. 제사를 위해 허용된 도살과 분배가 먼저 있었고, 이후 고기 소비와 상업 활동이 뒤따랐다. 시장 논리보다 제도가 먼저 작동한 사례였다.

조선 후기로 갈수록 한양의 육류 소비는 점차 늘어났고 외식 문화도 확산됐다. 그 가운데 성균관 일대는 허가된 도살, 관영 유통, 고정된 소비층을 동시에 갖춘 지역으로 기능했다. 사람들이 고기를 찾아 모였다기보다, 제도적으로 고기가 집중되면서 사람과 상업이 함께 모였다는 점이 특징이다.

성균관 주변의 고기집 밀집은 단순한 식당 거리의 형성이 아니었다. 제사 제도와 도살 규제, 관영 유통망, 반촌 상권이 겹쳐 만들어진 결과였다. 이곳은 조선 사회에서 고기가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 그리고 제도가 일상 식문화를 어떻게 규정했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현장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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