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요리사에서 이비자로: 봉주부가 그려가는 세계 한식의 새로운 결

서현민 기자

cnc02@hnf.or.kr | 2025-12-05 23:39:59

파주와 통영에서 다져온 한식의 뿌리, 지중해에서 다시 피어나는 봉주부의 이야기 간장·참기름으로 간을 한 김밥에 김치를 감싸 넣고, 신선한 육회와 금박을 올린 깊은 풍미의 충무김밥의 재해석 [사진=김봉수쉐프]

[Cook&Chef = 서현민 기자] 한국의 정식당, 뉴욕 정식당, 그리고 용산 경리단의 한국술집 안씨막걸리와 신사동의 와인바 블그레까지. 다양한 공간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한식을 만들어온 김봉수 셰프는 한국에서부터 ‘봉주부’라는 이름으로 활동해 왔다. 현재 그는 스페인 이비자에서 새로운 형태의 한식을 선보이며, 낯선 땅에 한국의 맛과 기억을 심고 있다.

이비자로 향하기 전까지 그는 파주와 통영을 오가며 장, 발효, 제철 식재료를 몸으로 배우며 본질을 찾아갔다. 그 과정은 단순한 기술 습득이 아닌, 한식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의 여정이었다. 그런 김봉수 셰프에게 직접 그의 이야기와 한식에 대한 철학,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을 들었다.

Q. 요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A. 사실 큰 목표가 있었던 건 아니에요. 부모님이 분식집과 고깃집, 슈퍼마켓 등을 하셔서 자연스럽게 주방에서 시간을 많이 보냈지만, 그때까진 요리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죠.
어릴 때 좋아하던 만화 ‘요리왕 비룡’이 제 요리의 첫 불씨였어요. 처음엔 이탈리안 요리를 했지만, 군대에서 공관병으로 일하면서 한식의 매력에 빠졌습니다. 그러다 정식당에서 한식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죠.

Q. ‘봉주부’라는 이름은 어떻게 생기게 되었나요?
A. 한국에 돌아와 안씨막걸리에서 일할 때 생긴 별명이에요. 주막의 ‘주모’를 남성형으로 바꾼 것에 제 이름 ‘봉수’의 ‘봉’을 넣어 자연스럽게 ‘봉주부’가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사용하는 이름이에요.

스페인의 재료로 한국의 대표 발효식품  김치를 만드는 김봉수 쉐프

Q. 한식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무엇인가요?
A. 정직함입니다. 한식은 재료, 손질, 불, 발효—어느 하나도 속일 수 없어요. 시간을 줄이려고 억지로 빠르게 해도 금방 티가 납니다. 저는 그 정직한 리듬을 지키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셰프님의 요리는 감각적이라는 평가가 많습니다. 스스로 생각하는 스타일은 어떤가요?
A. 저는 한식이 결국 ‘에너지’를 주고받는 요리라고 생각해요. 음식이 완성되기까지의 모든 순간—손질하는 리듬, 불의 속도, 향, 소리—이 한 그릇의 기운을 만듭니다. 또 제 요리는 늘 누군가의 기억에서 출발해요. 어떤 사람의 고향, 엄마, 잊고 있던 향… 그걸 건드리는 게 요리의 힘이라고 믿습니다. 

Q. 변화하는 현대 한식을 어떻게 바라보고 계신가요?
A.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기후 변화로 한국의 식문화가 많이 달라지고 있고, 사람들의 입맛도 바뀌었죠. 하지만 변화 속에서도 발효, 장, 24절기 같은 뿌리를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Q. <흑백요리사 시즌1> 출연은 어떤 경험이었나요?
A. 슬럼프가 많던 시기였어요. 본질을 공부하기 위해 파주와 통영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죠.
촬영은 힘들었지만, 돌아보면 정말 큰 성장의 계기였어요. 멘탈 싸움이었지만 그만큼 배운 게 많습니다.

Q. 방송 후 달라진 점이 있었다면요?
A. 전 세계에서 손님들이 찾아오고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주셨어요. 요리는 고독한 직업인데, 사람들의 응원은 마치 뒤에서 등을 밀어주는 것처럼 큰 힘이 되었습니다. 더 정직하고 깊은 요리를 해야겠다는 책임감도 생겼습니다. 

코리안 바비큐 팀(shingon experience)

Q. 이비자로 가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A. 조금 더 극적으로 살고 싶었고, 한식을 세계의 중심에서 제대로 해보고 싶다는 갈망이 있었어요. 이비자는 세계적인 휴양지인데 한식이 없었어요. 그게 오히려 매력으로 다가왔죠.

오래 알고 지내던 형이 코리안 바비큐 팀(shingon experience)을 이끌고 있었고, 저는 그 팀에 합류했습니다. 이비자의 에너지와 한식의 퍼포먼스가 잘 맞을 것 같았어요.

Q. 현지인들이 한식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요?
A. 반응이 엄청나요.여름 시즌엔 하루도 쉬지 못할 만큼 바빴습니다. 직접 쌈을 싸먹고, 김치도 즐기고, 특히 쌈장을 아주 좋아해요. “에너지가 있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Q. 가장 큰 도전은 무엇인가요?
A. 식재료 수급입니다. 섬이다 보니 구하기 어려운 재료가 많아요. 그래서 현지 재료를 연구하거나, 가까운 도시에서 공수해 오기도 합니다. 김치는 현지 취향에 맞게 겉절이와 잘 익은 김치 사이 정도로 조절해 만들고 있어요.

Q. 이비자에서 선보이는 한식은 어떤 스타일인가요?
A. 이비자의 여름은 정말 덥습니다. 그래서 라이트하고 프레시한 맛의 균형이 중요합니다. 이곳에서 먹고 싶어하는 맛의 감각을 찾아 터치하는 것, 그 밸런스가 가장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Q. 앞으로의 목표를 듣고 싶습니다.
A. 이비자에서 한국식 바비큐뿐 아니라 다양한 한식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요. 장도 직접 담그고, 현지 스타일 김치도 연구하면서 ‘이비자 스타일 한식’을 만들고 싶습니다. 한국에서도 계속 활동하며 셰프들과 교류하고 싶고요.

Q. 마지막으로 후배 셰프들에게 한마디 해주신다면요?
A. 요리는 실력보다 버티는 힘이 더 중요합니다. 정직하게 하면 길은 반드시 열립니다. 본질에 가까워지기 위한 공부를 계속해야 합니다.

이비자는 김봉수 셰프에게 한식의 또 다른 장면을 펼칠 수 있는 새로운 무대이자, 사람 김봉수로 다시 서는 두 번째 시작점이었다. 한국에서 쌓아온 정직한 리듬과 누군가의 기억을 건드리는 한식은
지중해의 바람 속에서 새로운 결을 만들어가고 있다.

앞으로 그가 이비자에서,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 펼쳐갈 한식의 이야기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따뜻한 울림과 영감을 전하길 바란다.

Cook&Chef / 서현민 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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