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슐랭 스토리] 미쉐린 서울과 역사를 나란히 한 중식당 ‘진진’

김성은 전문기자

cnc02@hnf.or.kr | 2025-12-24 19:49:16

40년 이상의 중식의 장인 왕육성 셰프와 흑백요리사로 더욱 유명해진 황진선 셰프
멘보샤와 대게살볶음은 그야말로 '극락의 맛'

[Cook&Chef = 김성은 전문기자] 합정역 인근, 마포구 월드컵북로 골목에 자리한 중식당 진진은 한국 미쉐린 가이드와 함께해온 곳이다. 미쉐린 가이드 2017 서울 편이 처음 발간됐을 당시 별을 받은 단 두 곳의 중식당 가운데 하나였으며, 이후 2019년까지 3년 연속 1스타를 유지했다. 2020년부터 2025년까지는 ‘합리적인 가격에 훌륭한 음식을 제공하는 레스토랑’에 수여되는 빕 구르망에 이름을 올리며 대중성과 완성도를 동시에 인정받고 있다.

‘진진’이라는 이름에는 중국 톈진(天津)의 ‘진’과 마포 일대의 옛 지명 양화진(楊花津)의 ‘진’을 함께 담았다. 중국 요리의 뿌리와 한국의 지역성을 잇겠다는 의미다. 푸짐한 음식과 이야기가 오가는 공간이라는 설명도 이 이름에 담겨 있다.

진진은 40년 넘게 중식의 현장을 지켜온 왕육성 셰프가 이끈다. 대관원, 홍보석, 플라자호텔 도원, 코리아나호텔 대상해 등 국내 주요 중식당 주방을 거친 인물로, 업계에서는 중식의 장인으로 불린다. 현재는 황진선 셰프와 함께 10여년간 호흡을 맞추며 진진을 운영하고 있다. 황 셰프는 요리 예능 프로그램 ‘흑백요리사 시즌1’에 출연하며 대중적인 인지도도 높아졌다.

진진의 가장 큰 특징은 메뉴 구성이다. 대부분 중식당이 수십 가지 메뉴를 내놓는 것과 달리, 진진은 10여 가지 핵심 메뉴에 집중한다. 탕수육, 짜장면, 우동 같은 대중적인 메뉴는 제외했다. 흔히 떠올리는 ‘중국집’이 아닌, 중식 요리에 집중하겠다는 선택이다. 메뉴를 줄임으로써 맛과 품질의 편차를 줄이고, 원자재 관리와 제철 식재료 활용이 용이해진다는 점도 이유로 꼽힌다.

‘진진’의 대표 메뉴 멘보샤 

멘보샤

진진을 대표하는 메뉴는 멘보샤다. 다진 새우를 식빵 사이에 넣어 튀겨낸 요리로,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다. 많은 중식당에서 접할 수 있지만, 튀김 온도와 시간, 식빵의 당도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진다. 기름 온도가 낮으면 빵이 기름을 흡수하고, 시간이 조금만 길어져도 쉽게 타기 때문이다. 왕육성 셰프는 호텔 주방 시절 이 메뉴를 배웠으며, 이연복 셰프와 함께 멘보샤를 국내에 널리 알린 인물로 꼽힌다.

대게살볶음은 단골들이 자주 언급하는 메뉴다. 죽과 스프의 중간 정도 농도의 소스에 대게살을 넉넉히 넣고, 고추기름을 더해 향을 살렸다. 맵지 않지만 대게 특유의 단맛과 감칠맛이 입맛을 당긴다. 해삼, 새우, 죽순, 표고버섯 등이 더해져 다양한 식감을 즐길 수 있다. 다른 메뉴 대비 일찌감치 제공돼 애피타이저처럼 맛볼 수 있다. 

깐풍기

어향가지는 충분히 익힌 가지에 어향 소스를 입힌 메뉴로, 숟가락으로 떠먹을 수 있을 만큼 부드럽다. 고수를 곁들이면 향이 더욱 뚜렷하다. 전복과 가리비, 새우가 들어간 팔보채는 해산물의 식감을 살린 메뉴로, 소스가 과하지 않아 각각의 식재료를 충분히 음미할 수 있다. 야들야들한 양상추에 소고기볶음과 바삭한 튀김을 같이 떠서 싸먹는 요리인 소고기양상추쌈도 인기다. 하얀 국물의 해물짬뽕은 각종 해산물과 채소가 넉넉히 들어가 국물이 맑고 깔끔하다. 요리를 충분히 즐긴 뒤에도 부담 없이 먹기 좋다. 

동네에서 즐기는 호텔 중식

소고기양상추쌈

미쉐린 가이드에 오래 이름을 올렸지만, 매장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다. 입장부터 긴장감을 주는 화려한 분위기도 아니다. 여기서 진진이 추구하는 방향을 짐작할 수 있다. 왕육성 셰프는 진진을 ‘동네에서 즐기는 호텔 중식’으로 나아가겠다고 말한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호텔 중식당 수준의 요리를 제공하겠다는 의미다.

진진의 요리는 좋아하지만 짜장면을 포기하기 어려운 손님들을 위해 인근에 ‘서교동 진향’도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진진의 방식으로 재해석한 짜장면과 일부 요리를 맛볼 수 있다.

운영 방식 역시 독특하다. 진진은 회원제를 도입해 평생 회원에게 주류를 제외한 모든 메뉴를 20% 할인된 가격으로 제공한다. 회원 예약 시에는 메뉴판에 없는 요리를 선보이기도 한다. 가입비가 있지만, 1번만 내면 평생 회원인데다 워낙 할인되는 금액이 커서 중식을 좋아하는 이라면 가입하는 편이 더 유리하다는 이야기가 많다. 멘보샤를 한 입 먹고 바로 회원가입을 하는 경우도 많다. 

진진은 기름기를 줄이고 소스의 강한 맛은 절제해 쉽게 물리지 않는 맛을 지향한다. 다양한 메뉴를 화려하게 내놓기보다 언제 어느 때 방문해도 만족할 수 있도록 완성도를 높이는 데 치중한다. 미쉐린 가이드가 한국에 상륙한 첫 해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이곳을 거론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진진은 오전 11시 30분부터 오후 9시 30분까지, 일요일은 오후 12시부터 오후 9시 30분까지 영업하며, 오후 3~5시는 브레이크타임이다. Cook&Chef / 김성은 전문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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