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하게 먹는데 ‘마음의 병’이 든다? ‘이것’ 의심해봐야
송채연 기자
cnc02@hnf.or.kr | 2025-11-14 18:38:45
웰빙 열풍 속, 음식의 ‘질’에 매달리는 집착이 만든 그림자
이미지 생성: ChatGPT (OpenAI) 제공 / Cook&Chef 제작
[Cook&Chef = 송채연 기자]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진 시대, 몸에 좋은 음식에 관심을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그러나 건강을 지키려는 선택이 지나치게 강화되면서 새로운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바로 오소렉시아 너보사(orthorexia nervosa, 이하 오소렉시아), 일명 건강식품 집착증이다. ‘더 건강하게 먹고 싶은 마음’이 집착으로 변하며 신체적·정신적·사회적 어려움을 초래하는 섭식장애다.
오소렉시아는 1997년 미국 의사 스티븐 브래트맨 박사가 처음 제안한 개념으로, “건강한 음식만 먹으려는 병적 집착”을 의미한다. 전통적인 섭식장애가 음식의 양에 집착한다면, 오소렉시아는 음식의 순도·질·출처에 지나치게 매달리는 것이 특징이다. 방부제·첨가물·정제 설탕·가공식품·도정된 곡류·GMO 등 ‘해롭다’고 여기는 식품을 극단적으로 피하고 유기농·저탄수·글루텐 프리·노슈가 같은 특정 기준에 부합하는 음식만 선택한다. 처음에는 건강을 위한 선택처럼 보이지만, 어느 순간 하루의 많은 시간이 식단 관리에 쓰이고, 기준에서 벗어난 음식을 먹으면 불안과 죄책감이 밀려온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흐름이 소셜미디어의 영향과 맞물리며 더 빠르고 넓게 확산되고 있다고 말한다. ‘클린 이팅(clean eating)’과 ‘건강 레시피’ 콘텐츠가 넘쳐나는 SNS 환경은 비교와 자기 검열을 부추기고, 한층 까다로운 규칙을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헝가리 세멜바이스대 연구에 따르면 패션모델의 35% 이상이 오소렉시아 증상을 보였으며, 일반 대학생도 20%가량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몸매 관리와 건강한 식단을 ‘칭찬받는 행위’로 여기게 되는 직업적 환경도 위험을 키우는 요인이다.
건강을 잃는 역설: 몸·마음·관계가 흔들리다
문제는 이러한 집착이 시간이 지나면서 몸과 마음, 그리고 일상까지 잠식한다는 점이다. 특정 식품군을 지나치게 제한하는 식습관은 단백질·지방·비타민·미네랄 부족으로 이어지며, 탈모·손톱 약화·생리불순·빈혈·체중 감소·지속적 피로·골밀도 저하 같은 신체 증상을 불러올 수 있다. 건강을 위해 선택한 방식이 아이러니하게도 건강을 해치는 방향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여기에 ‘허용된 음식’과 ‘금지된 음식’을 스스로 나누는 이분법적 사고는 심리적 압박을 가중시킨다. 식단 기준이 어긋나는 상황이 벌어지면 죄책감과 불안, 자괴감이 찾아오고, 음식을 둘러싼 스트레스가 하루 전체의 분위기를 좌우하기도 한다.
정서적 부담은 자연스럽게 사회적 고립으로 이어진다. 외식이나 모임에서 어떤 음식이 제공될지 알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참석을 피하게 되고, 가족 행사조차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식단을 지키는 행위가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것보다 우선순위가 되면서 주변과의 연결이 느슨해진다. 이 과정에서 음식 성분표를 강박적으로 확인하거나 조리 과정을 완벽히 통제해야만 마음이 편해지는 등, 일상 전반이 식단 규칙을 중심으로 고착되기 시작한다. ‘깨끗한 식사’라는 기준이 삶의 대부분을 지배하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오소렉시아가 단순한 식습관 문제를 넘어서 “충분히 심각한 섭식장애”라고 경고한다. 특히 완벽주의 성향이 강하거나 운동·피트니스에 집착하는 사람, 고소득층처럼 특수 식품과 웰빙 트렌드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환경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더 자주 나타난다. 남성보다 여성에서 더 흔하다는 연구도 있다.
균형 회복이 핵심… 음식의 ‘좋고 나쁨’을 나누지 않는 연습
그렇다면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가장 중요한 것은 ‘균형’을 회복하는 일이다. 영양 상담을 통해 특정 식품군을 지나치게 제한하지 않아도 건강할 수 있음을 배우고, 필요한 경우 심리치료를 병행해 음식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바로잡는다. 식사 코칭을 통해 규칙적이고 다양한 식품군을 섭취하는 습관을 되찾는 것도 중요하다.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강조한다. “음식을 ‘좋고 나쁨’으로 나누는 관점 자체가 강박을 키운다.” 모든 음식은 일정한 역할을 하며, 건강한 식습관은 제한이 아니라 다양성과 균형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오소렉시아는 겉으로 보기엔 ‘건강을 매우 잘 챙기는 사람’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불안과 완벽주의, 사회적 압박이 자리한다. 건강을 위한 식습관이 오히려 건강을 해치고 삶을 위축시키는 상황에 이르렀다면, 그 식단은 아무리 깨끗하고 순수해 보여도 건강과는 거리가 멀다.
Cook&Chef / 송채연 기자 cnc02@hnf.or.kr
[ⓒ 쿡앤셰프(Cook&Chef).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