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영의 한식탐구] 시대의 화합을 비추는 거울, 도미면

서진영 전문기자

cnc02@hnf.or.kr | 2026-01-30 23:59:18

추울수록 깊어지는 담백함, 제철 도미 한 그릇에 담긴 선조들의 영양 설계와 화합의 지혜 [사진=궁중음식재단, 도미면]

[Cook&Chef = 서진영 전문기자] 도미면은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넘어 한국 전통 요리의 미학적 정점과 영양학적 지혜가 응축된 하나의 작품이다. 고조리서 속에 기록된 도미면의 위상과 그 안에 담긴 영양의 조화를 분석해 본다.

도미는 예로부터 '백어(百魚)의 왕'이라 불리며 생선 중에서도 으뜸가는 고급 식재료로 취급받았다. 수명이 길어 장수의 상징으로 여겨졌으며, 분홍빛 자태와 단단한 살점 덕분에 왕실과 사대부의 잔칫상에는 빠지지 않고 올랐다. 특히 도미는 늦가을부터 겨울을 지나 이른 봄까지가 가장 맛이 좋은 제철이다. 찬바람이 부는 1월의 도미는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몸속에 영양분을 충분히 가둬두기 때문에 살이 가장 차지고 단맛이 깊다.

조선 시대 왕실의 잔치를 기록한 의궤는 이러한 도미면의 위상을 구체적으로 증명한다. 1902년 고종 임금의 즉위 40주년을 기념한 진연의궤를 살펴보면, 도미면은 대궐 잔칫상의 핵심 요리로 기록되어 있다. 의궤에 묘사된 구성을 보면 도미 한 마리를 중심으로 소고기 등심, 소골, 천엽 등의 육류와 표고버섯, 석이버섯, 그리고 마른 해삼과 전복 같은 해산물이 한데 어우러진다. 이는 당시 누릴 수 있었던 산해진미가 도미라는 매개체를 통해 한 그릇에 집결되었음을 의미한다.

고조리서가 전하는 도미면의 또 다른 이름은 승기악탕이다. 그 맛이 기생의 노래와 춤보다 낫다는 뜻으로, 조선 시대 문신 허균의 성소부부고에서도 도미의 뛰어난 맛을 극찬하는 대목을 찾아볼 수 있다. 조리법 또한 매우 정교하다. 도미 살을 발라 전을 부치고 머리와 뼈로는 깊고 맑은 국물을 내며 마지막에 국수를 곁들이는 과정은 한 가지 식재료를 입체적으로 활용하는 정성의 정수를 보여준다.

영양학적 가치 또한 훌륭하다. 도미는 고단백 저지방 식품으로 소화 흡수율이 매우 높아 환자나 노약자의 보양식으로 제격이다. 도미의 눈 주변과 껍질에 풍부한 비타민 B1은 피로 회복을 돕고 신경계를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다. 여기에 소고기의 철분, 버섯의 식이섬유, 채소의 비타민이 어우러져 현대 영양학적 관점에서도 완벽한 균형을 이룬다.

효율과 속도를 중시하는 현대 사회에서 도미면은 점차 잊혀가는 음식이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여러 재료가 각자의 맛을 유지하면서도 하나의 육수 안에서 깊은 조화를 이루는 도미면의 모습은 우리에게 중요한 화두를 던진다. 정성 없이는 완성될 수 없는 이 요리는 단순히 배를 채우는 식사를 넘어, 서로를 보듬고 아우르는 상생의 가치를 미각적으로 구현하고 있다. 1월의 추위 속에서 마주하는 도미면 한 그릇은 잊고 지낸 전통의 지혜와 진정한 화합의 의미를 다시금 되짚게 한다.

Cook&Chef / 서진영 전문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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