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영의 한식탐구] 봄을 국으로 기록하다 — 도다리쑥국의 문헌, 생태, 조리
서진영 전문기자
cnc02@hnf.or.kr | 2026-02-24 23:55:10
[Cook&Chef = 서진영 전문기자] 남해안에서는 봄이 되면 꽃보다 먼저 국을 묻는다. “도다리쑥국 먹었나.” 이 한 문장은 계절의 도래를 확인하는 생활어다. 도다리쑥국은 봄을 장식하는 음식이 아니라, 봄이 실제로 작동하기 시작했음을 증명하는 음식이다.
도다리에 대한 가장 중요한 기록은 1814년 정약전이 흑산도 유배 중 집필한 《자산어보》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어보는 가자미목 저서성 어류의 생태, 서식 환경, 식성, 어획 시기를 세밀하게 기술한다. 오늘날 ‘도다리’로 통칭되는 종과 정확히 일치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봄철 연안 이동과 산란 전 체형의 변화에 대한 관찰은 분명하다. 수온이 오르기 시작하면 얕은 수역으로 이동하고, 산란을 앞두고 살이 오르며 근육이 단단해진다는 기록은 경험의 축적이다. 봄 도다리가 유독 맛있다는 인식은 단순한 미식적 감상이 아니라, 어보가 남긴 생태학적 사실 위에 놓여 있다.
쑥은 조선 후기 조리서와 의서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시의전서》에는 쑥국과 쑥전, 쑥떡이 기록되어 있으며, 《규합총서》는 봄철 나물의 손질과 조리법을 다룬다. 《동의보감》은 쑥의 약성을 설명하며 “온경(溫經)하고 혈을 조화롭게 한다”고 적는다. 봄철 향채가 기혈 순환을 돕는다는 인식은 단순한 민간 신앙이 아니라, 계절 전환기에 신체 상태를 조정하려는 경험적 지혜였다.
도다리쑥국이라는 구체적 명칭이 초기 고조리서에 그대로 기록된 사례는 드물지만, 봄철 생선국과 쑥국이 각각 독립적으로 존재했던 사실은 분명하다. 남해안이라는 지리적 조건 속에서, 봄 어획이 시작되는 시점과 쑥 채취 시기가 겹치며 두 식재료가 자연스럽게 결합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 음식은 궁중에서 창안된 조리라기보다, 어민과 농가의 생활 속에서 형성된 지역 음식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기록은 각각의 재료를 남겼고, 지역은 그것을 하나의 국으로 완성했다.
도다리쑥국이 ‘왜 봄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생태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도다리는 겨울 동안 비교적 깊은 수역에 머물다가 수온이 10℃ 안팎으로 오르면 연안으로 이동한다. 산란을 앞둔 시기에는 체내 에너지 축적이 극대화되어 근섬유 밀도가 높고 조직이 치밀하다. 이 시기의 살은 맑은 국물에서도 쉽게 풀어지지 않고, 단단하면서도 부드러운 식감을 유지한다. 여름이 되면 산란을 마친 개체는 살이 얇아지고 조직이 느슨해진다.
쑥 또한 초봄 가장 향이 강하다. 다년생 식물인 쑥은 겨울 동안 뿌리에 저장한 영양을 이용해 새순을 낸다. 발아 직후의 어린 잎은 정유 성분과 플라보노이드 함량이 높고 섬유질이 연하다. 4월 이후 줄기가 굵어지고 조직이 질겨지면 향은 둔해진다. 도다리와 쑥의 품질 곡선이 동시에 정점에 이르는 시기가 바로 3월이다. 이 짧은 교차점이 도다리쑥국의 시간이다.
조리 방법 역시 계절성을 반영한다. 전통적인 방식은 다음과 같다.
먼저 다시마와 멸치로 맑은 육수를 낸다. 도다리는 비늘과 내장을 제거한 뒤 토막 내어 육수에 넣는다. 센 불에서 끓이기보다 중불에서 천천히 익혀야 단백질 응고가 급격히 일어나지 않는다. 일부 지역에서는 된장을 체에 걸러 소량 풀어 감칠맛을 더한다. 된장은 아미노산을 보강해 국물의 깊이를 만든다.
핵심은 쑥을 마지막에 넣는 것이다. 손질한 쑥은 끓는 국물에 30초에서 1분 이내로만 데치듯 익힌다. 과도한 가열은 정유 성분을 날려버리고 색을 탁하게 만든다. 쑥의 향은 생선 비린내의 주요 성분인 트라이메틸아민과 상호작용해 감각적으로 중화된다. 이는 경험적 조리법이 과학적 타당성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영양학적으로도 이 조합은 계절 전환기의 신체 조건과 맞닿아 있다. 도다리는 고단백·저지방 어종으로 필수 아미노산과 오메가-3 지방산을 포함한다. 산란 전 시기에는 근섬유 밀도가 높아 단백질 공급원으로서의 가치가 크다. 쑥은 플라보노이드, 식이섬유, 미네랄을 함유하며 전통적으로 혈을 맑게 하고 냉증을 완화한다고 인식되었다. 겨울 동안 활동량이 줄고 발효·저장 음식 위주로 식단이 구성되던 시기 이후, 생채 향과 항산화 성분을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도다리쑥국은 단백질 보충과 대사 전환을 동시에 수행하는 구조를 갖는다.
이 음식이 갖는 미식적 의미는 화려함에 있지 않다. 맑은 국물 속에 흰 살과 초록 잎이 어우러질 뿐이다. 그러나 그 단순함 속에는 겨울 바다의 축적과 봄 들의 발아가 함께 들어 있다. 한식은 계절을 장식하지 않는다. 계절이 만들어낸 생리적·생태적 조건을 음식으로 번역한다. 도다리쑥국은 그 번역의 가장 정직한 사례다.
봄은 달력으로 오지 않는다. 수온이 오르고, 땅이 풀리고, 생물이 움직이기 시작할 때 비로소 온다. 도다리쑥국은 그 움직임을 한 그릇에 담는다. 그래서 이 음식은 봄을 알리는 음식이 아니라, 봄이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음식이다.
그리고 우리는 매년 그 국을 통해, 계절이 다시 시작되었음을 확인한다.
Cook&Chef / 서진영 전문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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