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미식해, 함경도 향토 음식에서 강원도 지역 명물로

이지헌 전문기자

cooknchefnews@hnf.or.kr | 2025-09-19 11:25:03

가자미식해  사진 = 이지헌 전문기자

‘가자미식해’는 어떤 음식일까? 

함경도 지방의 향토 음식 ‘가자미식해’는 겨울철 별미로 꼽힌다. 

가자미식해는 가자미에 곡물로 지은 밥, 엿기름, 무채, 고춧가루 등의 양념을 섞어 발효시킨 음식으로, 냉장고 이전엔 겨울철 식량 보존을 위해 저온 발효 방식을 활용했다. 

식해(食醢)는 어패류를 쌀로 만든 밥과 소금을 넣어 발효시키는 음식을 뜻하는데, 밥을 사용하기 때문에 함경도에서는 ‘밥식혜’라고도 한다. 대개는 조밥을 사용하지만 강원도에서는 쌀밥을 사용하기도 한다. 밥식혜는 동태나 도루묵으로도 만들지만, 함경도에서는 참가자미로 만든 것을 최고로 쳤다. 

가자미식해가 내는 맵고 얼큰하면서도 달착지근하고 산뜻한 맛은, 생선에 최소한의 소금과 쌀밥을 섞어 숙성시키는 과정에서 전분의 당화와 젖산 발효가 이루어져 pH가 낮아지고 부패가 억제되면서 생긴다.

식해의 계보

식해의 뿌리는 중국 고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3세기 편찬된 문헌들엔 소금과 곡물로 생선을 숙성해 보존하는 기술이 이미 기록되어 있고, 송나라에 이르러서는 은어, 잉어, 거위, 참새로도 만들정도로 성행했다. 

조선시대 문헌에서도 식해를 찾아볼 수 있는데, 이규경(李圭景: 1788-1863)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가자미를 포함한 ‘생선식해’ 만드는 법을 소개하고 있다.

내용을 살펴보면, 식해는 바닷가 사람들이 많이 만들어 먹는데, 먼저 흰 멥쌀밥에 엿기름과 누룩가루를 넣고 잘 섞은 후 물도 몇 종지 넣어 발효시킨다. 그런 다음 가자미를 꺼내 물기를 제거하고 햇볕과 바람에 잘 말렸다가 잘게 썰어서 다시 소금과 버무려 두었다가 익은 다음 먹으라고 하였다. 

실향의 아픔이 담긴 음식 ‘가자미식해’

6·25 전쟁 이후 함경도 실향민이 대거 남하하면서 많은 이들이 속초 청호동 모래사주에 정착해 아바이마을을 이루었고 이곳은 함경도 출신 실향민 집단 거주지가 되었다. 

실향민들이 가지고 내려온 함경도식 가자미식해 레시피는 그대로 속초 일대에서 자리 잡게 되었고, 현재는 속초 관광 안내에서도 아바이마을을 소개할 때 가자미식해를 대표 메뉴로 언급하곤 한다. 남하 과정에서 지역 여건과 식습관에 따라 변화도 생겼다. 전통 함경도식은 좁쌀을 정체성으로 삼지만, 속초를 비롯한 강원권에선 쌀·보리밥을 쓰는 방식이 널리 퍼졌다.

가자미식해의 ‘사촌 나레즈시

일본 전통 스시의 원형인 나레즈시(후나즈시 등)는 곡물을 탄수화물 원으로 사용해 젖산발효로 생선을 익힌다는 점에서 가자미식해와 유사하다. 다만 차이가 뚜렷하다.

가자미식해는 가자미에 밥·엿기름·무·고춧가루 등을 섞어 만들며 담금부터 완성까지 열흘에서 보름 내에 끝내며, 새콤·매콤·달콤해 밥과 양념, 생선을 버무린 그대로 반찬이나 안주로 푸짐히 곁들인다.

이와 달리 나레즈시는 소금에 절인 생선을 밥과 함께 수개월에서 1년 이상까지도 발효한다. 또한 발효 매개인 밥은 버리고 생선만 먹는 경우가 많으며, 강한 산미와 치즈와 같이 숙성 향이 매우 또렷해 얇게 썰어 안주나 의식용 음식으로 소량 곁들여 먹는다.

가자미식해 만드는 방법

1. 가자미의 내장과 머리를 떼고 진한 소금물에 넣어 48시간 정도 절인다.

2. 보자기에 싼 큰 돌로 눌러놓은 다음 먹기 좋은 크기로 토막 낸다.

3. 메조밥을 되직하게 지어 소금, 마늘·생강·고춧가루·엿기름 가루를 섞는다.

4. 항아리에 가자미 한 겹을 깔고 양념한 조밥을 담은 후 사나흘간 숙성한다.

5. 굵게 채 썬 무를 소금에 심심하게 절였다가 물기를 꼭 짜낸다. 

6. 무채와 가자미를 함께 버무린 후 다시 항아리에 담아 익힌다.

7. 밥알이 삭아 물이 올라오면 다 익은 것으로 먹을 때는 물을 따라 버리고 먹는다. 

실향민을 통해 지역 명물이 된 가자미식해. 생존의 지혜로 빚어졌고, 생존의 전략으로 이어진 역사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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