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영의 한식탐구] 대두를 잃으면 한식은 남지 않는다
서진영 전문기자
cnc02@hnf.or.kr | 2026-02-03 20:55:11
[Cook&Chef = 서진영 전문기자] 대두는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시아를 기원지로 하는 작물로 알려져 있다. 야생 콩에서 시작된 대두는 이 지역에서 재배와 선별을 거치며 장류와 두부, 콩나물이라는 독자적인 식문화로 발전해 왔다. 인류의 단백질 섭취 구조를 바꾼 작물이지만, 그 활용 방식만큼은 지역마다 달랐다. 서구가 대두를 사료와 식용유, 산업 원료로 소비해 온 반면, 한국은 대두를 발효와 가공을 통해 요리의 중심 기술로 발전시켜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한국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대두 수입국이다. 장류와 두부, 가공식품에 이르기까지 국내에서 소비되는 콩의 상당 부분은 수입산에 의존하고 있다. 대두의 원산지라 불리는 나라가 왜 자국의 식문화에 쓰일 콩을 해외에서 들여와야 하는 구조에 이르렀는지는 단순히 농업 생산성의 문제로 설명되기 어렵다. 산업화 이후 쌀 중심의 식량 정책과 급격한 도시화, 노동력 감소는 콩 재배 면적을 빠르게 축소시켰고, 여기에 가격 경쟁력이 높은 수입 대두가 대량 유입되며 토종 콩은 점차 시장에서 밀려났다. 이 과정에서 대두는 한식의 핵심 재료가 아니라, 대체 가능한 원료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인식의 변화는 단순한 재료 교체로 끝나지 않는다. 토종 대두의 소멸은 곧 한식이라는 요리 체계 자체가 작동 불능 상태로 향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한식은 흔히 ‘콩을 많이 먹는 음식’으로 설명되지만, 보다 정확히 말하면 한식은 콩을 변환하는 기술 위에 세워진 음식 문화다. 한국 요리에서 콩은 삶아 먹는 단백질 식재료로 머물지 않는다. 콩은 발효를 거쳐 장이 되고, 장은 다시 국과 찌개, 무침과 양념의 중심이 된다. 이 과정에서 핵심이 되는 것은 조리법이 아니라 콩의 물성이다. 단백질의 구조, 지방과 수분의 비율, 종피의 강도는 발효 미생물과의 상호작용을 결정짓고, 이는 곧 맛의 깊이와 안정성으로 이어진다.
토종 콩은 수천 년 동안 한반도의 기후와 발효 환경에 적응해온 작물이다. 장기간 숙성 과정에서도 단백질 구조가 쉽게 붕괴되지 않고, 불필요한 잡미 없이 아미노산으로 분해되는 특성은 한국식 장 발효와 높은 적합성을 보인다. 반면 수입산 개량 대두는 수확량과 균일성을 중심으로 개량되었기에 가공 효율은 높지만, 발효 시간이 길어질수록 풍미가 단조로워지는 한계를 지닌다. 같은 메주를 띄우고 같은 방식으로 장을 담가도 결과가 달라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는 장이 단순한 양념이 아니라, 콩의 품질이 곧 맛의 구조를 결정하는 발효 식품이기 때문이다.
이 차이는 장류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두부 역시 마찬가지다. 토종 대두로 만든 두부는 조직이 치밀하고 응고력이 안정적이며, 씹을수록 고소한 단맛이 살아난다. 이는 두부를 단순한 ‘부드러운 단백질 덩어리’가 아니라, 형태와 맛을 동시에 유지하는 조리 재료로 활용할 수 있게 만든다. 궁중과 사대부가에서 두부가 탕과 찜, 선의 재료로 반복적으로 사용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수입 대두 두부로는 구현하기 어려운 조리들이 토종 콩 두부에서는 가능해지는 이유다.
이 지점에서 토종 대두의 가치는 영양학적 의미로도 확장된다. 토종 콩은 유전자 변형을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품종 고유의 특성을 유지해 왔으며, 이소플라본과 사포닌, 폴리페놀 등 생리활성 물질의 구성과 비율이 다양하다. 서리태의 안토시아닌, 쥐눈이콩의 혈당·혈압 조절 관련 성분은 단순한 기능성 식품을 넘어, 한식이 전통적으로 수행해 온 약식동원(藥食同源)의 개념을 과학적으로 뒷받침한다. 이는 단백질 섭취를 넘어, 음식으로 몸의 균형을 조절해 온 한식의 식단 설계 방식과 직결된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영양적 특성이 ‘대체 가능’하지 않다는 데 있다. 현대 개량종 콩은 단백질 함량을 표준화할 수는 있지만, 한식이 지향해 온 체질과 계절, 조리 방식에 따른 미세한 영양 조절까지 재현하기는 어렵다. 이는 결국 한식이 지닌 식단 설계의 정밀성이 점차 사라지는 방향으로 이어진다. 콩이 균질화될수록, 한식이 지닌 다양성과 조절 능력은 함께 축소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농업·연구·조리 현장에서는 토종 대두를 다시 식탁으로 복원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국립종자원과 지역 농업기술원을 중심으로 토종 대두의 수집과 증식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일부 생산자들은 토종 콩을 계약 재배해 장류나 두부로 가공하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주목할 점은 이 움직임이 단순한 ‘보존’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이다. 토종 종자는 보관되는 순간이 아니라, 재배되고 소비될 때 비로소 생존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결국 이 논의는 한 가지 질문으로 귀결된다. 대두의 기원지로 알려진 한국이 왜 자국 식문화에 쓰일 콩을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게 되었는가 하는 문제다. 이에 대해 농업 구조 변화와 가격 경쟁력, 유통 시스템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왔다는 분석이 제기되어 왔다. 다만 그 과정에서 대두가 한식에서 수행해 온 역할, 즉 발효와 가공을 통해 요리의 구조를 형성해 온 재료라는 인식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았다는 점은 분명하다.
최근 나타나는 토종 대두 복원과 활용에 대한 움직임은 이러한 인식을 다시 점검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이는 과거를 그대로 재현하려는 시도라기보다, 한식 조리 체계가 어떤 재료 위에서 성립해 왔는지를 다시 확인하는 과정에 가깝다. 어떤 콩을 선택할 것인가는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한식이 앞으로도 동일한 조리 논리와 맛의 구조를 유지할 수 있는가에 대한 실무적 질문으로 이어진다.
대두를 둘러싼 선택은 결국 식탁 위에서 이루어진다. 종자는 보관만으로는 유지되지 않으며, 재배되고 가공되고 소비되는 과정 속에서만 생존한다. 토종 대두에 대한 관심과 사용이 이어질수록, 한식이 의존해 온 재료와 조리 기술 역시 함께 검토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조리 현장에서도 감지된다. 일부 한식 셰프와 연구자들은 메뉴 개발 이전에 ‘어떤 콩을 쓸 것인가’부터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는 새로운 요리를 창작하기보다, 요리가 성립하는 조건을 복원하려는 접근에 가깝다. 레시피는 언제든 복제할 수 있지만, 그 레시피가 작동하는 재료의 기반은 쉽게 대체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이미 한 차례 현실이 된 바 있다. 1929년 미국 식물 수집단이 한반도에서 반출한 4,500여 점의 대두 종자는 이후 미국 대두 산업의 표준 유전자 개발에 활용되었다. 오늘날 글로벌 종자 시장에서 한국은 자국에서 기원한 유전자에 대해 오히려 로열티를 지불해야 하는 구조에 놓여 있다. 토종 대두 재배가 계속 축소될 경우, 한식의 핵심 재료마저 외부 공급망에 종속될 가능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대두를 둘러싼 논의는 특정 재료의 우수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한식이 어떤 재료 위에서 형성되어 왔고, 앞으로 어떤 조건에서 재현될 수 있는지를 다시 묻는 과정에 가깝다. 토종 대두를 둘러싼 보존과 활용의 문제는 농업이나 식품 산업의 영역을 넘어, 조리 기술과 식문화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질문으로 확장되고 있다. 결국 한식의 미래는 새로운 레시피보다, 그 레시피를 가능하게 해온 재료를 어떻게 이해하고 선택할 것인가에 달려 있을지도 모른다.Cook&Chef / 서진영 전문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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