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테이블] '리틀 포레스트' - 사람도 계절을 먹고 자라는 작물이다

조소현 기자

cnc02@hnf.or.kr | 2026-06-25 16:56:56

어린 시절 엄마의 추억이 담긴 음식들
배추 된장국은 힘든 일상의 위안
곶감의 달콤함에서 깨우치는 기다림
사진=영화 '리틀 포레스트' 포스터

[Cook&Chef = 조소현 기자] 냉장고에 음식이 가득한데 손이 가지 않을 때가 있다. 배달 어플에 맛있는 음식이 수백개가 있어도 먹고 싶은게 하나도 없을 때가 있다. 아무리 배불리 먹어도 마음이 좀처럼 채워지지 않는 '허기'를 느끼는 날들이 점점 많아진다. '리틀 포레스트'는 우리가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땅내음 머금은 음식이 사람의 '허기'를 채우는 이야기다.  

'리틀 포레스트'
편의점 알바를 하며 임용고시를 준비하던 혜원(김태리)은 시험에 떨어진 뒤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쳐있다. 푸석한 편의점 도시락은 먹어도 먹어도 마음의 허기를 채워주지 못하고, 결국 혜원은 뭐 하나 뜻대로 풀리지 않는 도시를 도망치듯 떠나 고향으로 돌아온다.  

편지 한 장을 남기고 떠났던 엄마(문소리)의 기억들로 가득한 집에서, 혜원은 직접 밭을 일궈 키운 농작물들로 엄마에게 배운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어린 시절의 기억을 되짚어간다. 예전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엄마의 말들과 선택들을 조금씩 헤아리게 되고, 사계절이 흐르는 동안 자신을 위한 한 끼를 차려내며 삶의 방향을 찾아간다.  

사진=영화 '리틀 포레스트' 스틸컷

온전한 회복, '배추된장국'
혜원의 서울 생활은 도시를 살아가는 청년들의 현실을 보여준다. 꿈을 위해 쉼 없이 달리지만, 사회가 높여 놓은 허들을 넘지 못한 이들은 팍팍한 현실 앞에 주저앉는다. 이처럼 지친 사람들이 쉽게 먼저 포기하는 것이 제대로 된 한 끼이다. 밥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삶의 단위마저 소홀해질 때, 사람은 자신을 돌보는 일에 점차 무감각해지곤 한다.  

고향에 온 혜원은 눈 덮인 밭에서 배추를 캐 된장국을 끓여 먹는다. 따뜻한 국 한 그릇을 허겁지겁 비우곤, 그대로 방바닥에 드러누워 깊은 잠에 빠진다. 실패와 불안으로 제대로 쉬지 못했던 혜원이 처음으로 진짜 허기를 채우는 순간이다.  

사진=영화 '리틀 포레스트' 스틸컷

겨울이 되면 배추는 추위를 견디기 위해 체내의 전분을 당분으로 바꾼다. 일종의 '천연 부동액'을 품게 되는 셈인데 이때 배추는 더욱 달고 단단해진다. 긴 겨울을 견뎌낸 배추로 끓인 된장국 한 그릇은 지친 혜원에게 오랜만의 온전한 휴식과 회복을 안겨준다. 영화는 배추된장국을 통해, 쉼 없이 달리느라 지쳐버린 사람들에게 잠시 멈추는 일이 포기가 아니라 인생의 방향키를 쥐고 스스로 살아갈 힘을 기르는 시간일 수 있다는 위안을 전한다.  

엄마를 이해하게 된다는 것, '크렘 브륄레'
음식은 혜원과 엄마를 이어주는 기억의 매개체다. 혜원이 만드는 음식 대부분은 어린 시절 엄마와 함께 먹었던 음식이거나 엄마에게 배운 조리법에서 시작된다.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엄마와 나눴던 대화를 떠올리고, 그때는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크렘 브륄레. 사진=조소현기자

학교생활의 고민을 털어놓는 혜원에게 엄마는 "속상해하지 않는 게 복수"라고 가볍게 말한다. 자신의 마음을 몰라준다며 서운해하는 혜원에게 엄마는 '크렘 브륄레'를 만들어준다. '크렘 브륄레'는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에서 사랑받는 디저트로, 커스터드 크림 위에 설탕을 뿌리고 그을려 딱딱한 설탕막을 입힌다. 엄마는 이 디저트를 통해 숟가락으로 설탕막을 깨뜨리듯 눈앞의 고민도 톡 깨고 지나갈 수 있으며, 시선을 조금만 바꾸면 그 너머의 달콤함을 만날 수 있다는 위로를 건넨다.

사진=영화 '리틀 포레스트' 스틸컷

성장에는 기다림이 필요하다, 곶감
이 영화는 음식이 만들어지는 과정으로 관객과 소통한다. 토마토를 심고 수확하고, 누룩으로 막걸리를 빚고, 곶감이 말라가는 시간을 보여준다. 혜원이 차려내는 한 끼는 단순한 요리가 아니라 기다림과 노동의 결과물이다.  

사진=영화 '리틀 포레스트' 스틸컷

혜원의 회상 속에서 엄마는 가을에 딴 단감을 깎아 매달고, 겉이 마른 후 수시로 손으로 주물러 주면 겨울에는 부드러운 곶감이 된다고 알려준다. 곶감을 주무르는 것은 속살이 고르게 마르도록 하고 당분이 퍼지게 해 더욱 말랑하고 쫀득한 식감을 만들기 위한 과정이다.

단단한 감이 긴 시간을 견뎌야 비로소 말랑하고 달콤한 곶감이 되듯, 사람에게도 긴 시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이해하게 되는 것들이 있다는 뜻이다. 시골 생활이 지겹다고 투덜대던 어린 혜원은 그 의미를 알지 못하지만, 이제 혜원은 직접 곶감을 말리며 엄마의 삶과 선택, 그리고 자신의 삶까지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사진=영화 '리틀 포레스트' 스틸컷

겨울을 견뎌낸 양파처럼 
혜원은 싹을 틔운 양파를 더 잘 자랄 수 있는 땅으로 옮겨 심는 '아주 심기'를 한다. '아주심기'는 모종을 더 이상 옮기지 않을 자리로 옮겨 심어 뿌리를 내리게 하는 과정이다. 그렇게 겨울을 견뎌내고 아주 심은 양파는 더욱 달고 단단해진다. 봄이 되자 혜원은 자신이 키운 양파로 양파 그라탱을 만든다.  

'아주 심기'한 양파가 겨울을 견딘 뒤 더욱 단단한 뿌리를 내리듯, 혜원 역시 고향에서의 시간을 통해 몸과 마음을 충분히 채운다. 도망치듯 서울을 떠났던 그는 흙냄새와 바람, 햇빛을 흠뻑 느끼는 시간을 통해 더 이상 실패를 피해 숨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일어나는 힘을 가지게 되었다.  

사진=영화 '리틀 포레스트' 스틸컷

잠시 멈춰도 괜찮은 시간 
영화에는 수제비, 막걸리, 밤조림, 배추전 같은 평범한 음식들이 등장한다. 혜원이 직접 기르고 만들어 먹는 이 음식들은 도시에서 먹던 공산품들과 대조된다. 돈만 내면 원하는 음식은 뭐든 금방 먹을 수 있는 세상에서, 직접 심은 씨앗 한 톨이 한 끼의 밥이 되기까지는 삶의 주도권을 되찾아 가는 과정과 닮아 있다. 

사진=영화 '리틀 포레스트' 스틸컷

또 영화가 담아낸 사계절의 밥상과 한국 시골의 모습은 잊고 지냈던 추억을 되살려 낸다. 누룩을 띄워 막걸리를 만들고, 개울에서 다슬기를 잡고, 아카시아꽃으로 튀김을 만들어 먹는 소박한 풍경을 기억하는 이들에겐 잊고 지낸 고향을 떠올리게하고, 그런 기억이 없는 젊은 세대에게는 자연 속의 삶에 대한 작은 판타지를 선물한다.

'리틀 포레스트'가 그려낸 사계절의 풍경들은 잠시 멈춰 자신을 돌보고 충분히 쉬어가는 시간 또한 삶의 일부라고 말한다. 혜원이 고향에서 한 끼 한 끼를 만들어 먹으며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듯, 우리 역시 때로는 걸음을 늦추는 용기가 필요하다. 이 영화를 통해 독자들도 잠시 자신의 허기를 들여다보고, 다시 단단한 뿌리를 내릴 수 있는 쉼의 시간을 만나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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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소현 기자는 매주 펜과 수첩을 들고 영화관을 찾는 영화를 사랑하는 기자입니다.
'시네마 테이블'은 영화 속 음식을 따라가며 그 안에 담긴 사람과 삶을 들여다보고, 
스크린 속 음식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함께 나누며 기록할 겁니다.

사진=영화 '리틀 포레스트'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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