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합탕의 진실, 외래종이 토종 ‘섭’을 대신했다

서현민 기자

cnc02@hnf.or.kr | 2025-12-12 18:18:43

토종 홍합 ‘섭’에서 지중해담치까지, 이름 뒤에 숨은 종 전쟁과 우리의 선택


겨울 국물 요리의 단골인 홍합탕. 하지만 그 속 홍합은 이미 외래종 지중해담치가 차지하고 있다.

[Cook&Chef = 서현민 기자] 겨울 바다를 닮은 국물.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홍합탕 한 그릇은 한국인의 기억 속에 가장 익숙한 ‘바다의 맛’이다. 하지만 우리가 “홍합”이라 부르며 먹고 있는 그 조개가 사실은, 동해 토종 홍합 ‘섭’이 아니라 외래종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섭, 한때 동해 겨울을 책임지던 홍합

섭은 강원도와 동해안 일대에서 토종 홍합을 부르던 이름이다. ‘섭’, ‘섭조개’, ‘담치’, ‘참담치’ 등 지역마다 불리는 이름은 달랐지만, 겨울철 섭국, 섭찜, 섭젓으로 밥상을 채우던 주인공은 분명 섭이었다.

껍데기는 두껍고 살은 크고 탱탱하다. 국물은 한 번 끓이면 색부터 다르다. 묵직하고 진한 풍미가 특징이라 예전에는 말려서 건어물로, 젓갈로까지 만들어 두고두고 먹던 고단백 식재료였다. 즉, 섭은 ‘지방 바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조개’가 아니라, 동해안을 대표하던 토종 패류였다.

자연산이라 해서 모두 토종은 아니다. 이 홍합 역시 바다에 퍼진 외래종, 지중해담치다.[사진=해녀배해림]

그런데, 우리가 먹는 홍합은 대부분 외래종이다. 문제는 지금이다. 마트와 시장에서 “홍합”이라고 팔리는 대부분은 토종 섭이 아니라, 유럽 지중해가 고향인 외래종 ‘지중해담치’다.

선박 선체와 평형수에 붙어 들어온 이 지중해담치는 우리 연안에 정착해 항만과 양식장 주변을 빠르게 점령했다. 성장과 번식이 빠르고, 양식에 유리한 데다 공급과 가격이 안정적이니 양식업자 입장에서도 선택할 이유가 충분하다.

반면 토종 섭은 파도가 거센 외해 암반에 붙어 자라 연안 오염·서식지 파괴에 훨씬 민감하다. 채취도 쉽지 않고, 회복 속도도 느리다. 결국 식당 주방과 가정의 냄비 속에서, 외래종 지중해담치가 조용히 섭의 자리를 대신하게 된 것이다.

섭 vs 지중해담치, 영양은 비슷하지만 캐릭터는 다르다. 두 종은 모두 ‘조개계의 단백질 폭탄’이라 불릴 만큼 영양이 좋다. 다만 성분 분석 자료를 보면 캐릭터가 조금 다르다.

섭(토종 홍합) 단백질과 미네랄이 상대적으로 높고, 맛이 진하며 감칠맛이 깊다. “바다의 달걀”이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영양 밀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중해담치(외래 홍합) 같은 양을 기준으로 보면 열량과 지방이 더 낮은 편이다. 나이아신, 타우린, 일부 비타민과 미네랄 함량이 두드러져 피로 회복·대사 촉진 등 기능성 측면이 강조된다.

즉, 어느 한쪽이 “좋고 나쁘다”의 문제가 아니라, 섭은 ‘묵직하고 풍부한 토종 보양식’, 지중해담치는는 ‘가볍고 부드러운 글로벌 보양식’에 가깝다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우리가 “홍합탕”이라 부르며 떠먹는 국물 속 조개의 얼굴이, 세대가 바뀌는 사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섭이 사라지는 사이, 바다에선 무슨 일이 벌어졌나. 섭이 자취를 감춘 이유는 단순하지 않다. 여러 가지가 겹쳤다.

연안 오염과 서식지 파괴...외래종 지중해담치의 ‘자리 차지’

산업화 이후 생활하수와 공장 폐수가 바다로 흘러들면서, 섭이 붙어 사는 외해 암반 환경이 급격히 나빠졌다.  섭 같은 여과식자는 물속의 유기물과 함께 오염물질도 걸러 몸에 쌓기 때문에, 수질 악화에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다.

한때 섭은 말려서 전국으로 유통되던 인기 건어물이었다. 체계적인 자원 관리 없이 채취가 계속되면서, 자연이 회복할 수 있는 속도보다 사람이 가져가는 속도가 더 빨라졌다. 지중해담치는 성장·번식이 빠르고, 양식장 줄과 부잔교, 방파제 등 인공 구조물에 대량으로 붙어 자란다.

토종 섭이 밀려난 자리에, 환경 변화에 더 강한 외래종이 들어와 버린 셈이다.결국 섭의 쇠퇴는 “맛있어서 많이 잡았고, 연안은 더럽혀졌고, 그 사이 외래종이 자리를 차지한” 결과라고 요약할 수 있다.

껍데기 가득 따개비와 해조류가 붙은 토종 홍합 ‘섭’. 한때 겨울 밥상을 책임졌지만, 이제는 쉽게 만나기 어려운 재료다. [사진=해녀 배해림]

종을 구분해 표기하자                                                                                                                                    토종 Mytilus coruscus는 ‘홍합(섭, 참담치)’
외래 Mytilus galloprovincialis는 ‘지중해담치’
최소한 이 정도 구분 표기가 이뤄져야 한다.
소비자가 “지금 내 그릇에 담긴 홍합이 어떤 종인지” 알고 선택할 수 있어야, 토종 보존 논의도 가능해진다.


제철 섭을 찾는 소비자의 선택
강원 동해안 일부 시장과 직거래장에서는 겨울철에 여전히 토종 섭을 따로 파는 곳이 있다.
물량도, 가격도 불안정하지만 “섭을 찾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신호 자체가 어민과 지자체에 토종 자원 관리의 명분을 만들어 준다.


연안 생태 보전 정책에 관심 갖기
섭은 깨끗한 바다와 거친 파도를 좋아한다. 연안 매립, 난개발, 오염을 줄이는 정책은 섭만이 아니라 전체 해양 생태의 기본이다.
수산자원 회복 사업이 단순 방류를 넘어, 토종 패류 서식지 회복까지 이어지도록 감시하고 제안하는 일도 결국 소비자의 몫이다.


셰프와 외식업의 역할 – 메뉴 안에서 섭을 다시 부르기
강원 섭국과 섭찜 같은 전통 요리를 복원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섭을 활용한 파스타, 리소토, 모던 한식 주안상 등 새로운 레시피가 개발된다면 섭의 쓰임새와 가치도 함께 확장된다.
메뉴판에 ‘홍합탕’ 한 줄만 적는 대신, 종을 구분해 표기하는 작은 변화만으로도 섭의 존재감은 다시 살아날 수 있다.

홍합탕 한 그릇이 바꿀 수 있는 것
섭은 사라져 가는 옛말이 아니라, 여전히 동해 어민의 기억 속에 살아 있는 토종 홍합의 이름이다.
짬뽕과 홍합탕, 찌개와 국물 요리 속에서 우리는 이미 다른 종을 먹고 있지만, 그 사실을 알고 선택하는 것과 모른 채 넘기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국물 맛은 그대로일지 몰라도, 바다는 이미 달라졌다.
이름을 제대로 부르는 것, 제철에 섭을 찾아 먹어 보는 것, 메뉴 안에서 종을 구분해 적어 보는 것.
토종 ‘섭’을 다시 불러내는 작은 실천은 어쩌면 홍합탕 한 그릇에서부터 시작될지 모른다.Cook&Chef / 서현민 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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