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f Column / 최인 셰프의 스시(すし)이야기> ‘니기리스시’의 전국적 전개
최인
chi33jj@naver.com | 2021-11-30 22:27:32
- 니기리스시는 원래 에도의 향토음식
- 고급화한 ‘니기시스시’를 고도성장기의 접대용 등으로 명맥을 유지해
그 하나는 메이지유신정부가 서구 문명에의 추종을 서두른 나머지 전통문화와 지방의 토착문화에 대해 부정적이었다는 것이다. 유신정부는 ‘동경어’를 표준말로 설정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도쿄(東京)의 문화를 표준으로 삼았다. 스시라고 하면 ‘니기리스시’가 표준이 되었다. 이러한 가치관은 근대화의 물결과 더불어 점차로 전 국민들에게 스며들어갔다. 그리고 1922년의 관동대지진은 도쿄(東京)을 허허벌판으로 만들었고 이재민의 수십 퍼센트를 지방으로 이주하게 했다. 그 중에 ‘니기리스시’ 조리사도 섞여 있어 ‘니리기스시’의 조리기술의 지방 진출을 촉진하게 되었다.
2차 대전 후 식량사정이 호전되어 ‘니기리스시’ 이외의 스시도 자유롭게 만들 수 있는 시대가 되어 고도 성장기의 도래로 각지의 전통문화는 급속하게 쇠퇴했다. 여성의 사회진출과 핵가족화 생활파탄의 변화들이 사회변화와 더불어 가정에서 스시를 만드는 기회도 적어지고 스시는 더욱더 구입품 일변도로 기울어졌다. 그 받침대가 된 것이 각지에 뿌리 내렸던 ‘니기리스시’였다. 석유파동 이후의 저성장기가 되자 지방문화의 재발견을 부르는 계기가 되었으나 ‘니기리스시’의 인기는 여전할 뿐 아니라 오히려 값싼 회전스시가 급성장하여 테이크아웃 해가는 등 시민들의 생활에 깊이 파고드는 결과를 초래했다.
- 고급화한 ‘니기시스시’를 고도성장기의 접대용 등으로 명맥을 유지해
그 하나는 메이지유신정부가 서구 문명에의 추종을 서두른 나머지 전통문화와 지방의 토착문화에 대해 부정적이었다는 것이다. 유신정부는 ‘동경어’를 표준말로 설정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도쿄(東京)의 문화를 표준으로 삼았다. 스시라고 하면 ‘니기리스시’가 표준이 되었다. 이러한 가치관은 근대화의 물결과 더불어 점차로 전 국민들에게 스며들어갔다. 그리고 1922년의 관동대지진은 도쿄(東京)을 허허벌판으로 만들었고 이재민의 수십 퍼센트를 지방으로 이주하게 했다. 그 중에 ‘니기리스시’ 조리사도 섞여 있어 ‘니리기스시’의 조리기술의 지방 진출을 촉진하게 되었다.
2차 대전 후 식량사정이 호전되어 ‘니기리스시’ 이외의 스시도 자유롭게 만들 수 있는 시대가 되어 고도 성장기의 도래로 각지의 전통문화는 급속하게 쇠퇴했다. 여성의 사회진출과 핵가족화 생활파탄의 변화들이 사회변화와 더불어 가정에서 스시를 만드는 기회도 적어지고 스시는 더욱더 구입품 일변도로 기울어졌다. 그 받침대가 된 것이 각지에 뿌리 내렸던 ‘니기리스시’였다. 석유파동 이후의 저성장기가 되자 지방문화의 재발견을 부르는 계기가 되었으나 ‘니기리스시’의 인기는 여전할 뿐 아니라 오히려 값싼 회전스시가 급성장하여 테이크아웃 해가는 등 시민들의 생활에 깊이 파고드는 결과를 초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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