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영의 한식탐구]편지에 남은 밥상, 현풍 곽씨 언간으로 읽는 조선의 식탁

서진영 전문기자

cnc02@hnf.or.kr | 2026-05-10 11:00:56

‘차담상을 가장 좋게 차려 두소’ 한 문장에 담긴 집안 음식의 풍경 [사진=KBS역사스페셜 / 1700년대 현풍 곽씨 언간 중 3.치"딤싱을 가장 좋게 차려 두소" _곽주가 하씨에게

[Cook&Chef = 서진영 전문기자] 1989년 경북 달성군 현풍면 소례마을에서 진주 하씨의 묘를 이장하던 과정에서 다량의 편지가 발견됐다. 관 속 유품과 함께 나온 이 편지들은 이후 ‘현풍 곽씨 언간’으로 불리게 됐다. 모두 172점에 달하는 자료 가운데 167점은 한글, 5점은 한문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작성 시기는 대체로 17세기 전반으로 추정된다. 이 편지들은 현풍 곽씨 집안의 일상과 가족 관계를 담고 있는 생활 기록으로 평가받아 왔지만, 음식의 관점에서 들여다보면 또 다른 의미를 품고 있다. 조리서가 음식의 방법을 기록한 책이라면, 언간은 음식이 놓였던 실제 삶의 자리와 그 쓰임을 보여주는 자료이기 때문이다.

현풍 곽씨 언간의 중심에는 곽주(1569~1617)와 그의 둘째 부인 진주 하씨가 있다. 발견된 편지 가운데 남편 곽주가 아내에게 보낸 편지가 105매로 가장 많고, 출가한 딸이 보낸 편지가 42매, 그 외 친족과 집안사람들이 주고받은 편지가 25매에 이른다. 편지 안에는 집안의 안부와 경제 사정, 병환, 계절의 변화와 함께 음식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스며 있다. 그중에서도 눈길을 붙드는 문장이 있다. 곽주가 아내에게 보낸 편지 속 “차담상을 가장 좋게 차려 두소”라는 구절이다. 짧고 간결한 이 말은 조선시대 한 집안의 식탁이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오늘날 ‘차담상’이라는 말을 들으면 차와 간단한 다과를 곁들이는 자리를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차담상은 지금의 티타임 개념으로 환원하기 어렵다. 조선은 유교적 질서를 중심으로 가례와 손님맞이의 문화가 정착된 사회였고, 특히 사대부가에서는 집에서 빚은 가양주 문화가 생활 깊숙이 자리하고 있었다. 음식은 단순히 허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예를 갖추고 정성을 드러내는 방식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차담상은 술과 병과, 탕과 구이, 계절 음식까지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생활의 상차림이었다. 곽주가 “가장 좋게”라고 당부한 것은 결국 가장 정성스럽고 가장 알맞은 음식으로 상을 준비하라는 뜻에 가깝다.

[사진=KBS역사스페셜/ 다담상과 곁상의 식재료 설명]

조선시대 한 집안의 좋은 상을 떠올릴 때 먼저 생각할 수 있는 음식 가운데 하나가 율무죽이다. 율무는 예로부터 몸을 보하는 곡물로 여겨졌으며, 조선시대 의서에서도 비위를 편안하게 하고 기운을 보하는 재료로 기록된다. 죽은 가장 기본적인 음식이면서도 가장 섬세한 음식이었다. 몸이 약할 때 먹는 음식이자, 먼 길을 다녀와 지친 몸을 달래는 음식으로 자주 쓰였다. 율무죽은 오래 끓일수록 점성이 살아나고 구수한 맛이 깊어진다. 쌀죽보다 담백하면서도 묵직한 포만감을 주기 때문에 속을 먼저 안정시키는 음식으로 적합했다. 손님이나 가족을 맞이하는 상에서 죽을 먼저 올리는 것은 속을 편안하게 풀어주려는 배려이자 식사의 시작을 부드럽게 여는 방식이었다.

상 위의 중심을 이루는 음식으로는 꿩구이를 떠올릴 수 있다. 꿩은 조선시대 귀한 육류 가운데 하나였다. 산에서 얻는 대표적인 야생 조류였으며, 궁중은 물론 사대부가에서도 귀하게 다뤄졌다. 『음식디미방』과 『주방문』 같은 고조리서에서도 꿩을 활용한 탕과 구이, 찜의 기록이 남아 있다. 꿩고기는 닭보다 육질이 치밀하고 향이 깊다. 간장과 참기름, 파와 마늘로 밑간해 숯불에 구우면 특유의 풍미가 살아나는데, 이는 단순한 육류 요리가 아니라 집안의 정성과 경제적 여유를 드러내는 음식이기도 했다. 좋은 상에 좋은 고기가 오른다는 것은 조선시대 상차림의 기본 원리 가운데 하나였다. 곽주가 말한 ‘가장 좋게’라는 말 속에는 이런 귀한 음식이 자연스럽게 포함되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상의 균형을 맞추는 음식으로 자잡채를 더하면 조선의 식탁 구조가 보다 선명해진다. 오늘날 잡채를

[사진=서진영기자 / 궁중음식연구원_녹두죽, 자잡채, 꿩구이]

떠올리면 당면이 중심이지만, 조선시대의 잡채는 지금과 구성이 달랐다. 초기 잡채에는 당면이 들어가지 않았고, 여러 채소와 버섯, 고기 등을 각각 익혀 간장과 기름으로 무쳐내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자잡채는 말 그대로 여러 재료를 삶고 익혀 조화롭게 섞은 음식이다. 도라지, 오이, 숙주, 버섯, 고기 같은 재료들이 각각의 식감을 유지한 채 한 접시에 어우러지며, 색과 향, 맛의 균형을 이루었다. 각각 따로 익히고 다시 맞추는 조리 방식은 손이 많이 가는 만큼 정성을 보여주는 음식이었다. 상차림의 중심에 놓인 고기와 죽 사이에서 자잡채는 계절 채소의 맛을 살리고 식탁 전체의 흐름을 정리하는 역할을 했다.

이렇게 보면 현풍 곽씨 언간 속 “차담상을 가장 좋게 차려 두소”라는 문장은 단순한 식사 준비의 지시가 아니다. 그것은 한 집안의 생활 방식과 음식 문화의 압축된 표현이다. 율무죽으로 속을 달래고, 꿩구이로 기운을 보하며, 자잡채로 계절의 맛을 더하는 구성은 조선 사대부가 음식의 균형감을 잘 보여준다. 곡물과 육류, 채소가 한 상 안에서 조화를 이루고, 따뜻한 음식과 향이 있는 음식, 부드러운 음식과 씹는 맛이 있는 음식이 함께 놓이는 방식은 오늘날 한식 상차림의 원형과도 맞닿아 있다.

현풍 곽씨 언간이 음식사 연구에서 중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조리서는 만드는 방법을 남기지만, 편지는 왜 그 음식을 만들었는지를 알려준다. 누구를 기다리며 준비했는지, 어떤 음식을 가장 좋은 음식으로 여겼는지, 어떤 순간에 어떤 상이 차려졌는지가 생활의 언어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조선의 식탁은 기술보다 관계에 가까웠다. 음식을 준비하는 손길에는 기다림이 있었고, 상을 마주하는 자리에는 정성과 예가 있었다. 400여 년 전 곽주가 남긴 “차담상을 가장 좋게 차려 두소”라는 한 문장은 결국 조선의 식탁이 무엇이었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한 상의 음식은 한 집안의 마음이었고, 그 마음은 편지 속에 남아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Cook&Chef / 서진영 전문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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