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그릇의 창작, ‘손맛’에서 데이터로… "한식 레시피의 권리화 시대 열려야"

이경엽 기자

cooknchefnews@hnf.or.kr | 2025-11-06 22:49:09

“한식진흥원 11월 콘서트, 김성민·임병웅 ‘레시피 보호와 공유’의 법과 철학을 말하다” 강연 중인 김성민 원장(사진 왼쪽)과 임병웅 변리사  사진 = 이경엽 기자

[Cook&Chef = 이경엽 기자] 6일, 서울 종로구 한식진흥원내 한식문화공간 이음에서 '11월 한식콘서트'가 열렸다. "요리, 창작물, 건축, 레시피의 지적 재산권"이라는 특별한 주제로 마련된 이 자리에는, 『음식 레시피, 보호와 공유에 관한 이야기』의 두 공동 저자가 연단에 섰다.

‘맛’이 아닌 ‘권리’를 이야기하는 이 자리에는 『음식 레시피, 보호와 공유에 관한 이야기』의 두 공동 저자, 김성민 (사)한국농식품융합연구원 원장과 임병웅 특허법인 리담 변리사가 연단에 섰다.

두 사람은 지난 15년간 ‘음식 레시피의 지식재산권화’라는 난제를 함께 연구해왔다. 그 여정의 결과물이 이날 콘서트의 핵심이었다. 모호한 관념으로만 여겨졌던 ‘손맛’이 법과 산업의 언어로 번역되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다.

"반 페이지짜리 레시피, 그것은 악보가 아닌 메모일 뿐"

먼저 강연에 나선 김성민 원장은 "가장 주된 직업은 공무원이었다"고 자신을 소개하며, 어릴 때부터 음식을 좋아했던 그가 어떻게 이 문제에 천착하게 되었는지 설명했다. 그는 농식품부 초대 식품국장으로 재직하며 2008년 11월 한식 세계화 선포식을 주도했다.

"정부가 돈을 들여 한식을 진흥한다는데, 도대체 한식의 실체가 뭘까. 산업인가, 문화인가, 기술인가, 학문인가". 그는 이 근본적인 의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가 이 문제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08년 ‘놀부’ 식당의 김순지 회장을 만나면서였다. 김 회장은 “중국 현지에 이미 ‘놀부’ 상표가 등록돼 있어 식당을 열기 어렵다”고 토로했다고 그는 회상했다. 김 원장은 "그때 우리 한식 상표를 미리 보호해야 한다는 중요성을 절감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곧바로 음식 관련 지식재산권 연구 용역을 알아봤다. “변리사분들이 5억 원을 부르더군요. 당시 농식품부의 사회과학 연구 예산은 많아야 5천만 원 수준이었습니다.” 그는 우여곡절 끝에 2억 원으로 조정해, 임병웅 변리사 등과 함께 국내 최초의 음식 특허 연구를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그가 파고든 '한식의 실체'는 결국 레시피였다. 하지만 이내 더 큰 벽에 부딪혔다.

"과장에게 '한식을 가져오라'고 했더니 '식사하고 가시겠냐'고 묻더군요. 쌀을 지원하면 쌀이 있는데, 한식은 실체가 안 나타나는 거예요. 베토벤의 교향곡을 가져오라면 악보나 음원을 가져오겠죠. 그런데 나는 세상에 그 복잡한 명인의 레시피가 반 페이지를 넘어가는 걸 못 봤어요".

김 원장은 '쌀 120g', '양파 약간', '약불 30분' 같은 현재 레시피의 모호함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쌀 120g이라는데, 인디카인지 자포니카인지, 7분도미인지, 수분 함량은 얼마인지 정보가 없다" 며 "서양 요리는 단맛을 내기 위해 양파를 많이 쓰지만 우리는 설탕을 쓰는데, 기름은 어떤가. 유럽의 올리브, 북쪽의 버터, 아시아의 라드처럼 기름이 그 음식의 풍미를 결정하는데, 왜 레시피에는 그런 정보가 없는가?"  라고 반문했다.

그는 전주의 한 유명 비빔밥 레시피를 포함해 300여 가지의 비빔밥 조리법을 수집했지만, 한 페이지를 넘는 경우는 단 한 건도 없었다고 했다. “‘약불에서 30분’이라는데, 그게 가스레인지 약불인지, 24cm 팬인지 26cm 팬인지에 따라 결과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셰프들은 이를 ‘손맛’이라 부르며 “배추가 해남 배추 다르고 강원도 배추 다르니 그걸 어찌 다 표현하냐”고 하지만, 김 원장은 이렇게 반박했다. “달나라에 로켓을 쏠 때의 변수는 그보다 훨씬 많지만, 우리는 그걸 모두 계산해 쏘아 올리지 않습니까.”

그는 조리 전공 학생 30명에게 시중의 레시피와 함께 "코팅 팬, 주물 팬 등 다양한 팬과 굵은 고춧가루, 얇은 고춧가루 등 모든 재료"를 제공하고 음식을 만들게 한 실험을 소개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결과는요. 같은 음식이 아닙니다. 그럼 레시피의 기능이 전혀 의미가 없는 거죠. 그것은 창작자의 참고용 메모일지언정, 제3자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커뮤니케이션 도구의 역할을 못 하고 있습니다".

강연 중인 김성민 원장  사진 = 이경엽 기자

왜 정밀한 레시피가 필요한가: 가치와 AI의 시대

김 원장은 "우리가 하려는 것은 '비빔밥 레시피의 표준화'가 아니다. 그것은 획일성" 이라며 "자동차를 만들 때 볼트 규격은 정해져 있어야 설계가 가능한 것처럼, '레시피 표기의 표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가 정밀한 레시피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명확했다.

첫째는 '레시피의 가치(Value)' 창출이다. 그는 "레시피가 정밀해져야 가치가 생긴다"  며 창작과 실현의 분리를 언급했다.

"젊은 셰프가 가족회관 김현임 할머니의 레시피를 1천만 원을 주고 사서 그대로 재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라흐마니노프는 손이 짧아 자기가 작곡한 피아노협주곡 3번을 초연하지 못했어요. 창작의 세계와 실현의 세계는 다를 수 있습니다. 정밀한 레시피가 있어야 창작자의 권리가 실현자에게 제대로 전달되고, 그 창작물이 가치를 인정받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집니다."

둘째는 'AI·로봇 시대'의 도래다. 그는 10년 전 영국의 로봇 셰프 '몰리(Moley)'를 언급하며, 비정형적인 레시피는 미래 산업의 자산이 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언젠가는 조리가 AI로 바뀔 겁니다. 그때 지금의 레시피로 로봇이 어떻게 알아듣겠습니까? 지금 네이버에 떠 있는 레시피들은 AI 입장에서 다 쓰레기입니다. 우리는 최현석 셰프의 봉골레 파스타 레시피가 있다면 기꺼이 10만 원이든 100만 원이든 지불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최현석 셰프가 예능인이 아니라 창작자로서 가치를 인정받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러한 이론을 바탕으로 김 원장은 2020년 '블루 레시피'라는 벤처회사를 임 변리사 등과 공동 창업했다고 밝혔다. "쌀을 입력하면 '자포니카, 7분도미'처럼 정밀하게 기록하는 시스템" 이며 "10가지 식재료가 10가지 항목만 가져도 100억 개의 조합이 생겨 디지털상에서 표절 여부를 잡아낼 수 있다"  고 설명했다.

강연 중인 임병웅 변리사  사진 = 이경엽 기자

법의 사각지대: "레시피는 왜 보호받기 어려운가?"

그러나 김 원장이 제시한 '정밀한 레시피'가 법적 권리가 되는 길은 험난하다. 바통을 이어받은 임병웅 변리사는 2000년부터 변리사 생활을 하다 김 원장을 만나 이 연구에 동참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그는 "레시피를 더 잘 보호하면 한식 세계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연구를 거듭해 2022년 이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임 변리사는 "패션, 마술, 그리고 요리 업계는 지적 재산권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음에도 혁신이 계속 일어나는 분야" 라며, 이를 '낮은 수준의 지재권 균형' 상태라고 설명했다.

임 변리사는 요리 창작물이 가진 4가지 특성 때문에 현행법으로 보호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첫째, 전통성입니다. 요리는 수천 년의 역사를 가져, '인류의 공동 자산' 또는 '공공 영역(Public Domain)'으로 인식됩니다. 셰프는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선 난쟁이'일 뿐 , 수천 년의 지식 위에 아주 조금 기여하는 것이죠. 그래서 특허를 받기 어렵습니다."

"둘째, 기능성입니다. 레시피는 절차를 따르는 '기능적 창작물'입니다. 법에는 '기능성의 원리'가 있어, 기능적인 것은 오직 '특허'로만 보호합니다. 사상과 감정의 '표현'을 보호하는 '저작권'은 레시피의 기능적 단계(요리법 자체)는 보호하지 못합니다. 다만, 그 레시피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나 철학, 이야기 등은 저작물이 될 수 있습니다".

"셋째, 정형성의 부족입니다. 보호 대상은 객관적으로 '측정 가능'해야 합니다. 하지만 조리 식품은 만들 때마다 형태가 달라지므로 '정형성'이 부족합니다. 이 때문에 과자 같은 '가공식품'은 디자인권 보호가 되지만, 셰프의 '조리 식품'은 보호 대상이 아닙니다".

"넷째, 재현성의 문제입니다. 김 원장님이 지적했듯, 현재의 레시피는 창작자와 실현자를 연결하는 '매개체'로서의 역할을 못 하고 있습니다".

그는 대부분 셰프가 의존하는 '영업 비밀' 역시 허점이 많다고 지적했다. "노하우가 다 영업 비밀이 아닙니다. 법적인 영업 비밀은 1. 비공지성(알려지지 않음), 2. 경제적 유용성(가치 있음) 그리고 3. '비밀 관리성'(비밀로 관리하려는 노력) 이 세 가지를 충족해야 합니다 . 대부분의 식당이 3번, 비밀 관리성을 만족시키지 못해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합니다". 또한 "직원에 의한 유출이나 , 음식을 사서 분석하는 합법적인 '역설계(Reverse Engineering)'에는 속수무책"이라고 덧붙였다.

임 변리사는 "법이 약하니 '춘천 감자빵', '로제떡볶이' 사태처럼 온라인 여론에 호소하는 '공중 재판'이 벌어지지만, 이는 매우 위험하다"  고 경고했다. "과거 맹기용 셰프가 표절로 매도되었지만 나중에 아닌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한번 실추된 이미지는 회복되지 않습니다".

사진 = 이경엽 기자

법 이전에 '인정의 문화'를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일까? 임 변리사는 법 제도 이전에 '공동체 규범'의 확립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프랑스 미쉐린 스타 셰프들의 사례를 들었다.

"프랑스 셰프들은 법적 보호가 미흡함에도 자체적인 '공동체 규범'을 통해 혁신을 유지해 왔습니다. 그 규범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다른 요리사의 레시피를 정확하게 모방하지 않는다. 둘째, 비밀을 공유하되 허락 없이 제3자에게 전달하지 않는다. 셋째,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요리의 창작자를 반드시 인정하고 그 출처를 밝힌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숙한 규범이 있었기에 프랑스에서는 현재 '요리 창작물 보호법'이 국회 논의 단계에 이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은 이러한 공동체 규범이 약하다" 며 "시기상조인 법 제정보다는  '인정 문화'부터 정착시켜야 한다. 남의 것을 썼다면 당당히 이름을 적어주는 것, 그것이 우리가 만들어야 할 새로운 사회적 규범"  이라고 제안했다.

또한 "보호가 산업을 위축시킨다는 오해"를 반박하며 "수천 년간 쌓인 공공 영역은 여전히 자유롭게 쓸 수 있다. 우리가 보호하자는 것은 셰프의 독창적인 '혁신' 부분이며, 이것이 보호되어야 산업이 발전한다"  고 말했다.

강연은 '손맛'의 시대를 넘어 '데이터'와 '권리'의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는 제안으로 마무리됐다. 김성민 원장은 자신의 BBQ 총괄사장 시절 경험을 예로 들며, 대기업 프랜차이즈가 맛집 메뉴를 모방하는 5단계(수집, 재현, 원가 절감, 단순화) 시스템을 설명했다. 

그가 제시한 핵심은 이것이다. 설령 "법적으로는 보호가 안 돼요" 라고 할지라도, 만약 원 창작자가 "내가 몇 년도에 인터넷에 이렇게 정밀하게 기록해 둔 레시피가 있다"고 증명할 수 있다면 , 그것은 "돈의 문제가 아니고 이 회사의 브랜드에 문제가"  되는 강력한 사회적·경제적 무기가 된다는 것이다.

결국 이날 콘서트가 제시한 분석은 명확했다. 임병웅 변리사가 지적한 '법의 사각지대'와 '약한 공동체 규범'이라는 현실 속에서, 김성민 원장이 제안한 '정밀한 데이터 기록'은 법적 공방 이전에 창작자의 권리를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방패가 될 수 있다. 

한식의 미래가 '손맛'이라는 추상적 영역을 벗어나, 창작자의 아이디어를 '정밀한 데이터'로 번역하고, 이를 '사회적 규범'으로 존중하는 문화가  정착될 때, 비로소 한식은 세계 무대에서 통용될 수 있는 '지식의 문법'과 산업적 권리를 획득하게 될 것이다. 이번 한식콘서트는 그 문법의 필요성을 절감케 한 의미 있는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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