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영의 한식탐구] “바다는 무섭지만, 결국 다시 살아가게 해주는 존재입니다”

서진영 전문기자

cnc02@hnf.or.kr | 2026-05-08 16:43:45

거제 여차 바다를 삶으로 살아가는 해녀 배해림의 물질 이야기 [사진-본인제공 / 여차바다에서 프리다이빙 중인 해녀 배해림 ]

[Cook&Chef = 서진영 전문기자] 경남 거제시 남부면 여차리.
맑은 바다와 거센 조류가 공존하는 이곳은 계절마다 다른 해산물을 품어내는 바다이자, 해녀들에게는 삶의 현장이다.

해녀 배해림 씨는 부산에서 거제로 인연을 이어와 지금은 여차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다. 해녀 경력 6년, 여차에서 물질한 시간은 4년.
그녀에게 바다는 단순한 노동의 공간이 아니다. 먹고 살게 해준 곳이자, 힘든 순간에도 다시 살아가게 해준 삶의 기반이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해녀가 되기까지의 과정과 변화하는 바다 환경, 여차 바다가 품은 제철 해산물, 그리고 앞으로 이어가고 싶은 해녀의 삶에 대해 들어보았다.

Q. 먼저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거제도에서 해녀 일을 하고 있는 배해림입니다. 해녀가 된 지는 6년 정도 되었고, 여차에서 본격적으로 물질을 한 지는 4년 정도 됐습니다. 아직 긴 시간이라고 말하기엔 부족할 수 있지만, 저에게는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게 해준 시간이었습니다.

[사진=대한민국 구석구석 /  경남 거제시 여차 해안가]

Q. 여차와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셨나요?


A. 제 집은 부산입니다. 여차는 지인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이곳 바다에서 물질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인연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이곳이 제 삶의 중심이 됐다고 할 만큼 깊은 의미를 가진 곳이 되었습니다.

Q. 여차 바다는 어떤 의미인가요?
A. 제가 조업하고 있는 거제시 남부면 여차리는 이제 단순한 일터가 아닙니다. 지금은 저의 삶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큰 의미를 가진 곳입니다. 먹고 살게 해준 곳이기도 하고, 힘들고 지칠 때 결국 다시 살아가게 해주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바다를 통해 버텨왔고, 또 바다를 통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Q. 처음 해녀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A. 처음 시작하게 된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바다가 너무 좋았기 때문입니다. 원래 물을 좋아했고, 바닷속에 들어가는 걸 좋아했습니다. 물질은 따로 전문적으로 배운 것이 아니라 주변 지인들을 따라다니면서 직접 보고 몸으로 익혔습니다. 그렇게 하나씩 경험하면서 자연스럽게 해녀의 길로 들어오게 됐습니다.

Q. 처음 바다를 깊이 경험했던 순간은 어땠나요?
A. 처음에는 우연히 스노클링을 하면서 바다를 접했습니다. 맑은 물속에서 여러 바다생물과 물고기들을 보면서 정말 아름답다고 느꼈습니다. 그때부터 바다에 대한 애정이 생겼고, 스노클링으로 시작했던 경험이 결국 해녀가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어졌습니다.

Q. 해녀로서 첫 물질은 어땠습니까?
A. 솔직히 많이 무서웠습니다. 스노클링으로 즐기던 바다와는 전혀 달랐습니다. 시야는 탁하다 못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였고, 해녀 고무옷을 입으니 몸도 무겁고 잠수도 쉽지 않았습니다. 숨도 차고, 생각보다 훨씬 두렵고 힘들었습니다. 그때 처음 해녀의 일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 몸으로 느꼈습니다.

Q.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A. 가장 어려운 건 역시 숨을 참는 일이었습니다. 바닷속에서 물건을 찾는 것도 어렵지만 결국 숨이 길어야 더 오래 머물 수 있고, 그래야 원하는 물건도 찾을 수 있습니다. 해녀에게 호흡은 가장 기본이면서도 가장 어려운 부분인 것 같습니다.

[사진= 본인제공 / 물질 준비 중]

Q. 처음 물질을 시작했을 때와 지금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요?
A. 가장 크게 느끼는 변화는 바다 환경입니다. 특히 고수온의 영향이 큽니다. 예전에는 멍게도 많았는데 지금은 고수온 때문에 많이 죽었고 전체적인 조업량도 많이 줄었습니다. 해녀 일을 하면서 바다 환경 변화가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직접 체감하고 있습니다.

Q. 하루 물질은 어떻게 준비하고 진행되나요?
A. 해녀들은 자가호흡으로 조업하다 보니 몸 상태 관리가 중요합니다. 두통 때문에 조업을 제대로 못할 수 있어서 바다에 나가기 전 진통제와 콧물약을 챙겨 먹고, 테왁이나 망사리 같은 장비를 점검합니다. 성게철에는 보통 2시간에서 2시간 반 정도 조업하고, 평소에는 4시간 이상 바다에 들어가 있습니다. 물 위로 올라와서도 일이 끝나는 건 아닙니다. 성게철에는 채취한 성게를 까는 데만 4~5시간이 걸릴 때도 있습니다. 그 외에도 물건을 선별하고 씻는 작업까지 마쳐야 하루가 끝납니다.

Q. 장비는 예전과 많이 달라졌나요?
A. 제가 시작했을 때와 지금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허리에 무게납을 분산시키는 정도의 차이가 있습니다. 다만 선배 해녀님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예전에는 고무옷도 없이 얇은 옷만 입고 물질을 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지금 장비가 얼마나 발전했는지 느끼게 됩니다.

Q. 여차 바다는 어떻게 변했다고 느끼시나요?
A. 정말 많이 변했습니다. 예전에는 한여름에도 냉수대가 들어와서 조업 내내 몸이 떨릴 정도로 차가웠습니다. 그런데 불과 몇 년 사이 물 온도가 많이 올라갔고, 해산물 종류도 줄고 수확량도 줄어들었습니다. 바다를 오래 볼수록 변화가 더 크게 느껴집니다.

Q. 해녀의 수가 줄고 있다는 이야기에 대해 어떻게 느끼시나요?
A. 사실 타지역은 많이 줄었습니다. 선배 해녀님들은 자식들이 물질을 하고 싶다고 하면 많이 말리십니다. 그만큼 힘들고 위험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숨을 참고 조업하는 일 자체가 위험을 안고 있으니까요. 그래도 아직 바다를 좋아하는 젊은 분들이 있어서 거제에는 조금씩 유입이 되고 있습니다. 해녀 문화가 이어지기 위해서는 그런 젊은 세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인가요?
A. 결국 몸입니다. 추운 것도 힘들고 숨이 차는 것도 힘듭니다. 몸이 버텨야 할 수 있는 일이라서 체력적인 부담이 큽니다. 그래도 제가 좋아하는 일이라는 만족감이 있기 때문에 계속 버티고 있는 것 같습니다.

Q. 힘든데도 계속 바다에 나가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A. 6년 정도 물질을 하다 보니 이제는 바다에 가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할 정도입니다. 바다가 일상이 됐고, 삶의 일부가 됐습니다. 힘들어도 결국 다시 바다로 가게 됩니다.

Q. 여차 바다에서는 주로 어떤 해산물을 채취하시나요?
A. 거제 바다는 계절마다 나오는 해산물이 다릅니다. 봄에는 미역, 톳, 해삼 같은 해조류가 많고, 여름에는 성게가 많이 나옵니다. 가을과 겨울에는 전복이나 뿔소라가 주가 됩니다. 여차 바다에서는 특히 전복과 소라를 가장 많이 채취합니다.

Q. 가장 손이 많이 가는 해산물은 무엇인가요?
A. 봄에는 우뭇가사리가 손이 많이 갑니다. 채취 자체는 어렵지 않지만, 말리고 뒤집고 다 마르면 잘라서 보관하는 과정까지 손이 많이 갑니다. 그리고 성게도 정말 손이 많이 갑니다. 채취 이후 손질하는 시간이 길기 때문입니다.

Q. 여차 해산물만의 특징이 있다면요?
A. 여차 바다는 물이 깨끗하고 조류가 빠릅니다. 그래서 해산물들이 전체적으로 단단하고 향이 좋습니다. 그런 점이 여차 해산물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생각합니다.

Q. 가장 맛있는 제철 해산물은 무엇인가요?
A. 여름에는 성게가 가장 맛있고, 봄에는 전복이 좋습니다. 제철에 먹는 맛은 확실히 다릅니다.

[사진=본인제공 / 물질로 조업한 자연산 전복]

Q. 가장 기억에 남는 조업 순간은 무엇인가요?
A. 500g이 넘는 큰 전복을 잡았을 때입니다. 그렇게 큰 전복은 흔하지 않습니다. 자연산으로 그 정도 크기가 되려면 적어도 10년 이상은 자라야 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만큼 귀하고 기억에 오래 남는 순간이었습니다.

Q. 해녀 공동체 안에서 지켜지는 규칙이 있나요?
A. 해녀들 사이에는 암묵적인 규칙이 있습니다. 아무리 넓은 바다라도 소속 어촌계 계원이 아니면 다른 바다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리고 다이버처럼 공기통을 메지 않고 오직 자신의 호흡만으로 조업하는 것이 해녀의 기본 원칙입니다.

Q. 바다에 들어가기 전 서로 나누는 말이 있나요?
A. 특별한 건 없습니다. 늘 하는 말은 같습니다. 욕심 부리지 말고 바다가 주는 만큼만, 그리고 본인 숨만큼만 잡아오라고 합니다. 그게 가장 중요합니다.

Q. 가장 보람 있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A. 아이들과 가족들이 방송에 나온 저를 보고 자랑스러워할 때였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내가 하고 있는 일이 가족들에게도 의미 있는 일이라는 걸 느꼈습니다.

Q. 가장 위험했던 순간은 무엇이었나요?
A. 아무것도 잘 모르고 조업에 나갔을 때 집채만 한 파도가 배를 집어삼킬 듯 올라왔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때 바다의 무서움을 제대로 느꼈습니다.

Q. 앞으로 어떤 삶을 이어가고 싶으신가요?
A. 제가 좋아하는 바다에서,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가고 싶습니다. 그게 가장 바라는 삶입니다.

Q. 해녀 문화는 앞으로 어떻게 이어졌으면 좋겠습니까?
A.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저 역시 지금 해녀 문화를 이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Q. 젊은 세대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A. 힘들지만 3개월을 버티면 1년을 버틸 수 있고, 1년을 버티면 3년도 버틸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결국 버티는 시간이 경험이 되고 힘이 됩니다.

Q. 바다는 앞으로도 어떤 존재일까요?
A. 무섭지만 아름답고, 아름다우면서도 저를 살게 해주는 존재입니다.

Q. 어떤 해녀로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A. 바다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끝까지 사랑했던 해녀 중 한 사람으로 기억되면 좋겠습니다.

해녀 배해림 씨의 이야기는 바다를 직업으로 삼은 사람의 기록이면서, 동시에 바다를 삶으로 받아들인 사람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거제 여차 바다는 여전히 계절마다 다른 해산물을 품어내고 있지만, 기후 변화와 환경 변화는 그 바다의 결을 조금씩 바꾸고 있다. 그 변화 속에서도 바다를 지키고, 해녀 문화를 이어가려는 사람들의 존재는 여전히 단단하다.

“욕심 부리지 말고, 바다가 주는 만큼만.”

그 말처럼, 해녀의 삶은 자연과 싸우기보다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몸으로 익혀가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Cook&Chef / 서진영 전문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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