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영의 한식탐구]깎아 먹는 과일은 잊어라, 2026 미식 트렌드가 된 'K-참외'
서진영 기자
cnc02@hnf.or.kr | 2026-06-19 16:33:11
[Cook&Chef = 서진영 기자]뜨거운 여름날, 우물물이나 냉장고 깊숙한 곳에서 차게 식힌 참외를 꺼내 한 입 베어 문다. 노란 껍질 아래 드러나는 하얀 과육의 단맛, 그리고 입안 가득 퍼지는 청량한 수분감. 은은한 향과 아삭한 식감 뒤로 씨 주변의 달큰한 과즙이 목을 타고 넘어가면, 잠시나마 계절의 열기가 저만치 물러선다.
참외는 농업 분류상 밭에서 나는 박과 식물인 '과채류'에 속한다. 하지만 한국인의 밥상에서 참외는 아주 오래전부터 당연하게 '여름 과일'의 자리를 지켜왔다. 껍질만 슥슥 깎아 그대로 먹는 이 단순한 방식 속에, 한국인이 여름을 나던 오랜 시간이 담겨 있다.
참외는 삼국시대부터 재배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고려와 조선 시대의 다양한 문헌과 실록에도 여름철 제례의 제물이나 귀한 먹거리로 쓰인 기록이 꾸준히 등장한다. 우리 선조들은 참외를 단순히 날로만 먹지 않고 떡을 찌거나 장아찌 등 다양한 조리법으로 활용하며 여름 입맛을 돋우는 식재료로 지혜롭게 사용해 왔다.
과거에는 녹색 바탕에 얼룩무늬가 있는 '개구리참외'를 비롯해 꾀꼬리참외, 먹통참외 등 다양한 재래종들이 전국 각지에서 자랐으나, 근현대 농업의 발전과 시장의 선택을 거치면서 오늘날 우리가 아는 노란 껍질에 흰 골이 선명하게 파인 참외가 대표적인 이미지로 정착하게 되었다.
오늘날 참외 생산지는 단연 경북 성주다. 성주에서 참외가 소득 작물로 본격 재배되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 이후로 알려져 있다. 가야산 자락에 위치해 강풍이나 폭설 등 자연재해 피해가 비교적 적고, 낙동강 유역을 끼고 있어 물이 풍부하면서도 배수가 잘되는 사질토양 덕분에 박과 작물이 자라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 1980년대 중반 이후 많은 농가들이 대거 참외로 품목을 전환하고, 현대적인 시설재배 기술과 엄격한 선별·유통 체계가 더해지면서 성주참외는 '농산물 지리적표시 제10호'로 당당히 등록되며 전국적인 명성을 굳건히 유지하고 있다.
2026 미식계를 강타한 가장 주목받는 조리 트렌드는 단연 '업사이클링 드레싱'과 '과감한 이색 페어링'이다. 참외는 당도에 비해 열량이 낮고 수분이 많아 웰빙 디저트의 단골 소재가 되는데, 특히 향이 과하게 짙지 않고 씹는 식감이 선명해 부재료가 가진 짠맛, 산미, 지방 성분을 극대화해 주는 훌륭한 도화지 역할을 한다.
영양과 식감을 모두 잡은 '껍질째 슬라이스': 참외의 핵심 영양소인 베타카로틴이 몰려 있는 노란 껍질을 다 벗기지 않고 줄무늬처럼 드문드문 남겨 얇게 저미듯 썰어내는 방식이 유행이다. 시각적인 아름다움은 물론 아삭한 식감까지 극대화할 수 있어 파인다이닝의 애피타이저로 단골 출명 중이다.
허브와 스파이스의 입체적 조화: 은은한 단맛을 품은 참외 위에 향긋한 '딜(Dill)'을 얹거나, 씹을 때마다 화한 입촉감을 주는 '핑크 페퍼(Pink Pepper)'를 톡톡 부숴 올리는 조합은 맛의 입체감을 불어넣으며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mable)한 메뉴로 대유행하고 있다.
브런치로 확장된 참외 토스트: 양식 브런치 업계에서는 부드럽고 담백한 그릭 요거트를 도톰하게 바른 치아바타 빵 위에 얇게 썬 참외와 쌉싸름한 향의 전통 나물인 '참나물'을 함께 버무려 올린 독창적인 웰빙 토스트를 선보이며 미식가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중이다.
레스토랑 부럽지 않은 '참외 딜 샐러드' RECIPE
참외 드레싱의 핵심은 '씨앗 주변의 달콤한 과즙'을 버리지 않고 소스로 환원하는 데 있다.
재료: 참외 1개, 올리브오일 2큰술, 레몬즙 1큰술, 식초 1큰술, 소금 두 꼬집, 후추 약간, 신선한 딜(허브) 취향껏
만드는 법:
1. 참외는 깨끗이 씻어 껍질을 줄무늬 모양으로 드문드문 깎아 노란색과 흰색의 대비를 살린다.
2. 반으로 갈라 숟가락으로 태좌(씨가 붙은 속)를 긁어내 따로 그릇에 모아둔다.
3. 단단한 과육은 먹기 좋은 크기로 0.5cm 이하로 얇게 슬라이스한다.
4. 모아둔 참외 속을 촘촘한 체에 걸러 스푼으로 꾹 눌러 달콤한 즙만 짜낸다. 이 즙에 올리브오일, 레몬즙, 식초, 소금을 섞어 상큼한 ' 참외 드레싱' 을 완성한다.
6. 접시에 과육을 둥글게 펼쳐 담고 드레싱을 쪼르르 끼얹은 뒤, 후추를 치고 딜을 찢어 올려 마무리한다. 알싸한 풍미를 원한다면 핑크 페퍼를 곁들여도 훌륭하다.
국경을 넘어, 세계로 뻗어 나가는 'K-참외'의 영토
국내에서 미식으로 진화한 참외는 이제 국경을 넘어 글로벌 시장에서 확실한 주력 품목으로 체급을 키우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참외의 세계화가 '우리 땅에서 자란 생과의 수출'과 '우리 종자가 퍼져나간 식문화의 확장' 해 나가고 있다.
가장 눈부신 생과 수출 성과를 보이는 곳은 한국산 참외의 최대 소비국인 일본이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는 참외를 파프리카의 뒤를 이을 대일 주력 전략 품목으로 선정해 육성하고 있다. 일본의 급증하는 1인 가구 트렌드를 겨냥해, 기존의 비싸고 껍질 처리가 부담스러운 대형 서양 멜론 대신 크기가 작아 보관이 쉽고 아삭한 식감을 가진 한국 참외를 매력적인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다.
특히 의미 있는 성과는 한국 참외가 일본 소비자청에 '기능성표시식품'으로 정식 등록되었다는 점이다. 참외에 풍부하게 함유된 'GABA(가바)' 성분이 일시적인 정신적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점을 과학적으로 인정받았다. 이로 인해 일본 현지 유통 매장에서는 참외를 단순한 신선 과일이 아닌 '건강 기능을 갖춘 프리미엄 신선식품'으로 당당히 마케팅하며 주류 시장으로의 진입 장벽을 낮추고 있다.
베트남 역시 성공적인 생과 수출 영토다. 무려 17년이라는 기나긴 정부 간 검역 협상 끝에 정식 수출길이 열린 이후, 망고와 리치 같은 부드러운 현지 열대 과일과는 완전히 차별화되는 '노란색과 흰색의 대비가 주는 독특한 외형', 그리고 무르지 않고 배처럼 아삭하게 씹히는 청량한 식감을 강력한 무기로 삼아 고소득층을 겨냥한 프리미엄 마켓을 성공적으로 공략하고 있다.
반면, 까다로운 신선 과일 검역 장벽에 가로막힌 미국 시장에서는 대안으로 'K-농업 품종의 세계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 참외의 우수한 종자를 가져다 미국 캘리포니아나 멕시코 등 현지에서 직접 재배해 판매하는 방식으로 시장이 급성장한 것이다.
현지인들은 이를 '한국의 참외(Korean Melon)'라 이름으로 부르며 소비한다. 대형 주류 온라인 장보기 플랫폼과 아시안 식료품 체인을 중심으로 확산된 한국의 참외는 현지 비한인 소비자들 사이에서 "오이보다 달콤하고 배처럼 아삭하며 서양 멜론보다 산뜻하다"는 호평을 얻으며 아시아를 대표하는 이색 과일로 확고히 안착했다.
우리가 동남아 여행지에서 맛본 망고스틴의 달콤함으로 그 나라의 계절을 기억하듯, 그것이 바다를 건너간 생과이든 현지에서 피어난 우리 종자이든, 이제 세계인들에게 아삭하고 노란 참외는 '한국의 여름'이라는 고유한 식문화를 각인시키는 강렬한 매개체가 되었다.
열대 과일의 수입이 늘어나면서 우리 식탁 위에 오르는 과일의 선택지는 그 어느 때보다 풍성해졌지만, 익숙하고 새로운 것들이 넘쳐나는 시대일수록 우리 땅에서 오랜 시간을 묵묵히 버텨온 제철 식재료의 가치를 다시 들여다보는 일은 무척이나 의미 있다.
참외는 오래된 여름 과일이지만, 껍질째 깎아 먹고, 새콤하게 절이고, 매력적인 소스를 곁들여 우리의 식탁 위에 오르는 참외는 여전히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진 가장 트렌디한 현재진행형 식재료다.Cook&Chef / 서진영 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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