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영의 한식탐구] 궁중음식, 시작과 지금을 잇는 언어 (1) 기준의 시작
서진영 전문기자
cnc02@hnf.or.kr | 2026-03-30 11:34:03
[Cook&Chef = 서진영 전문기자] 궁중음식은 종종 ‘어렵고 먼 음식’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그 안에는 단순한 조리법을 넘어, 우리 음식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이어져 왔는지를 설명하는 구조와 기록이 담겨 있다.
궁중음식연구원에서 한식의 근간과 기본을 배우고 있는 필자에게 한복려 선생은 그 구조를 가장 가까이에서 체화해 온 존재다. 동시에 한식을 기록하고 이야기로 풀어내고자 하는 입장에서, 선생이 평생 지켜온 궁중음식은 단순한 전통이 아니라 한국 음식의 기준에 가깝다.
이번 인터뷰는 새로운 답을 찾기 위한 자리가 아니라, 이미 오랜 시간 축적된 생각을 다시 확인하는 시간에 가까웠다. 선생의 말, 그 안에는 궁중음식을 바라보는 태도와 한식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분명하게 담겨 있었다.
Q. 선생님께 생각하시는 궁중음식은 어떤 의미인가요?
우선 음식은 상대방을 향한 ‘배려’ 와 ‘정성’ 궁중음식을 비롯한 음식의 가장 본질적인 의미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이자 정성입니다. 음식을 만드는 사람의 마음을 전하는 매개체로서, 식사하는 사람이 그 자리에 맞게 잘 먹을 수 있도록 진심을 다해 차려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궁중음식은 500년 역사가 집약된 ‘최고의 종합 문화’로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라 그 시대 최고의 문화이자 예술이 종합된 결정체 입니다. 예로부터 문화는 궁중에서 시작되어 민간으로 퍼져 나갔으며, 궁중의 잔치에는 음식 뿐만 아니라 춤과 노래 등 모든 기예가 어우러졌습니다. 따라서 궁중음식을 보전하고 연구하는 것은 조선 500년의 생활사를 복원하는 일이며, 우리가 세계적으로 훌륭한 음식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자부신의 원천이 됩니다.
임금 한 사람만을 위한 식사가 아니었습니다. 수많은 사람을 거두어먹이던 ‘체계와 나눔’ 으로 국가의 큰 잔치나 의례가 있을 때, 왕과 귀빈의 상차림부터 신분이 낮은 궁녀나 밖을 지키는 군인들에게 내려주는 떡과 국밥에 이르기까지 수천명의 사람들은 신분과 상황에 맞게 배려하여 먹이기 위한 거대한 제도이자 시스템이었습니다.
즉, 궁중음식은 눈에 보이는 화려함을 넘어, 음식을 드시는 분을 향한 깊은 정성, 엄격하고 체계적인 예법, 그리고 전통 사회의 나눔과 배려가 모두 녹아 있는 살아있는 문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Q. 어머니이신 황혜성 선생님께 궁중음식을 배우셨다고 들었습니다. 처음 배우시던 시절의 기억이 있으신가요?
어머니이신 황혜성 선생은 본래 대학에서 식품영양학과 가정학을 가르치던 교수였습니다. 학생들에게 조선 요리를 가르쳐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지만 정작 본인은 우리 음식을 제대로 배울 기회가 없었기에 무작정 창덕궁 낙선재로 찾아가 조선의 마지막 상궁인 1대 고(故) 한희순 상궁에게 어깨너머로 음식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한희순 상궁이 문화재 지정 1년 만에 타계하시면서, 어머니께서 그 뒤를 이어 제 2대 기능보유자가 되었고, 궁중음식 문헌이 많지 않아 복원 사업에 어머니께서 참여하실 때 마다 참여해 복원과 기록 그리고 고증을 위해 많은 노력들을 해오셨고, 본인께서 뛰어 배운 궁중음식을 후대에 온전히 전수하기 위해 어머니와 제가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을 구축해 냈습니다.
아직도 어머니와 함께 전국을 다니며 고조리서, 고문헌들을 찾아 다닌 기억이 선합니다.
Q. 궁중음식을 연구하시면서 가장 중요하게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신 가치는 무엇인가요?
궁중음식이 우리 음식의 전부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반가와 가문에서 내려오는 음식, 그리고 지역에 따라 이어져 온 다양한 생활 음식들이 함께 존재해 왔기 때문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실제로 먹어온 음식의 흐름은 훨씬 넓고 입체적이며, 궁중음식은 그 가운데 하나의 축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이러한 전체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개별 음식이 아닌, 기록을 함께 살펴보는 과정에서 음식고전을 공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음식은 시간이 지나면서 형태가 변하고 해석이 달라지기 때문에, 그 근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문헌을 통해 맥락을 짚어야 합니다.
궁중음식연구원에서는 이러한 필요성을 바탕으로 『음식고전 – 옛 책에서 한국 음식의 뿌리를 찾다』는 고조리서를 중심으로 반가 음식과 지역 음식,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식재료와 조리 방식까지 함께 살펴보며, 한국 음식이 어떤 흐름 속에서 형성되고 발전해 왔는지를 보여줍니다. 단순한 레시피의 집합이 아니라, 음식의 기원과 구조, 그리고 문화적 맥락을 함께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된 책입니다.
결국 한식을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특정 음식이나 기술을 익히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음식이 어디에서 시작되었고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는지를 함께 고민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한식 셰프들이 궁중음식연구원의 관심과 음식고전을 배우고, 한식의 전체 흐름 속에서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고민하는 과정을 거쳤으면 합니다. 그 과정이 쌓일 때 비로소 한식에 대한 기준이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궁중음식은 그 가운데 하나의 축입니다.
궁중음식은 특정 시대에 머물러 있는 유산이 아니다.
그 안에 담긴 기준과 태도는 오늘의 한식을 이해하는 출발점이 된다.
우리가 지금 마주하는 한식의 다양성과 변화 역시, 이 축적된 시간 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결국 한식을 세계로 확장시키는 힘 또한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구조와 가치에 있다.
다음 이야기는, 이 한식이 어떻게 세계 속으로 번져가고 있는지에 대해 이어가려 한다.
Cook&Chef / 서진영 전문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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