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가 ‘건강한 식탁’으로 이동 중… 정크푸드 금지, 초가공식품 과세 논의하는 각국

김세온 기자

cnc02@hnf.or.kr | 2025-12-11 23:51:58

아동 비만 급증에 정크푸드세 도입 논의 

[Cook&Chef = 김세온 기자] 전 세계 식문화가 빠르게 건강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사장 홍문표)가 최근 세계 각국의 식품 규제와 소비 변화를 분석한 결과, 주요 국가들이 정크푸드 억제와 초가공식품 관리, 건강식품 소비 촉진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단순한 트렌드를 넘어 국가 차원의 정책 변화로 이어지고 있으며, 외식업계 역시 이러한 흐름을 반영하지 않으면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는 경고와도 같다.

aT 윤미정 미주지역본부장은 지난 10월 코엑스에서 열린 ‘K-푸드 글로벌 수출전략 설명회’에서 “전통적인 삼시세끼 모델은 이미 붕괴했고, 식품 라벨을 꼼꼼히 읽고 칼로리·설탕·첨가물 정보를 확인하는 소비자가 크게 늘었다”며 건강 중심 식문화가 세계적으로 주류를 이루고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해외 정부들은 소비자 선택을 돕고자 식품 환경 자체를 바꾸는 규제 정책을 속속 도입하고 있다.

영국은 가장 강도 높은 조치를 시행한 국가로 꼽힌다. 올해 10월부터 영국 내 모든 소매점에서는 감자칩, 냉동 피자, 아이스크림, 가당 요거트 등 ‘비건강식품’에 대한 1+1이나 다다익선 같은 할인 프로모션이 전면 금지됐다. 여기에 탄산음료 무한 리필 제공도 금지해 사실상 정크푸드 섭취를 줄이고자 한 셈이다. 영국 정부는 이러한 정책이 아동 비만 해결을 위한 핵심 전략이라며 앞으로 더 많은 식품군에 규제를 확대할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은 뉴질랜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뉴질랜드 영양학 전문가들은 비만율 증가와 비건강식품의 과도한 할인 경쟁을 문제 삼으며 “영국처럼 정크푸드 할인 금지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담배세와 유사한 방식으로 정크푸드 가격을 올리고, 반대로 건강식품 가격을 낮추는 세제 정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아직 법제화 단계는 아니지만 뉴질랜드 정부가 관련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에서는 캘리포니아주가 초가공식품 규제를 본격화하며 전국적 이목을 끌고 있다. 캘리포니아는 ‘초가공식품(UPF, Ultra-processed Foods)’을 법적으로 정의한 첫 번째 주로, 향료, 색소, 유화제 등 첨가물이 한 가지 이상 포함되거나 나트륨·당·포화지방 함량이 높은 식품을 모두 해당 범주에 포함시켰다. 새 법안은 2035년까지 모든 공립학교에서 고위험 초가공식품을 전면 퇴출하고, 과일·채소·통곡물 기반의 ‘통식품 중심’ 급식을 의무화하도록 규정한다. 이는 미국 내 아동 칼로리 섭취의 62%가 초가공식품에서 비롯된다는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한 정책으로, 현재 20개 이상 주가 유사한 규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어 앞으로 미국 전역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들은 “초가공식품이 미국 내 만성질환 증가의 큰 원인”이라고 경고하며 이번 흐름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호주 역시 아동 비만 증가로 초가공식품 규제가 뜨거운 화두가 되고 있다. 유엔아동기금(UNICEF) 보고서에 따르면 호주는 전체 식이 에너지의 절반 가까이를 초가공식품에 의존하는 대표적인 국가로 꼽힌다. 영양학자들은 초가공식품이 칼로리는 높지만 비타민·미네랄·섬유질이 부족해 영양실조를 유발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전문가와 농가 단체는 ‘정크푸드세’ 도입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으며, 세금을 통해 초가공식품 가격을 높이고 신선식품 소비를 유도하자는 의견이 확산되고 있다. 아직 정부 차원의 추진은 없지만 건강식품 세제 혜택과 저염·저당 정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논의는 점점 속도를 내고 있다.

대만은 정반대의 접근법을 선택했다. 국민의 건강 음료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무설탕 음료에 부과하던 15% 상품세를 아예 면제하기로 한 것이다. aT 홍콩지사에 따르면, 대만 정부는 이 조치가 건강한 식습관 확산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현지 보건단체들은 “무설탕 음료 상당수가 인공감미료에 의존하고 있다”며 장기적 건강 위험을 경고하고, 감미료 표시 의무 도입 등 후속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국내 상황도 안심할 수 없다. 국민건강보험연구원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청소년 비만율은 16.7%로, 초·중·고 학생 6명 중 1명이 비만이다. 대한비만학회는 2012년 대비 소아·청소년 비만이 남아는 2.5배, 여아는 1.4배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해외처럼 강력한 식품 정책까지는 아니더라도, 국내에서도 소비자의 건강 관심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고 이에 따라 외식업계에도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질 수 있다.

건강은 더 이상 선택적 가치가 아니라 식품·외식 산업의 생존 조건으로 자리잡고 있다. 식당에서 ‘얼마나 맛있는가’뿐 아니라 ‘얼마나 건강한가’를 동시에 판단 기준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9일 배달의민족 배민외식업광장이 발표한 2025년 외식업 트렌드에서도 이 같은 변화를 살펴볼 수 있다. 배민외식업광장은 ‘자기만족 건강식’을 트렌드로 꼽으며, 단백질을 늘리거나 당을 줄이거나 채소를 더하는 등 ‘건강함을 스스로 정의하는 방식’이 대세가 됐다고 설명했다. 

이에 외식업계는 저당·저염 메뉴 개발, 영양 성분 표시 강화, 아동 메뉴의 건강 기준, 조리 과정의 투명성 확보 등 보다 적극적인 대응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건강을 중시하는 변화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지금, 외식업이 이에 어떻게 대응하는지가 앞으로의 경쟁력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Cook&Chef / 김세온 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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